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19
한자 金範禹 墓所
이칭/별칭 김범우 순교자 성지,김범우 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사기점길 50-100[용전리 205-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흥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751년연표보기 - 김범우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787년연표보기 - 김범우 사망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9년 5월연표보기 - 김범우 묘소 발견
보수|복원 시기/일시 2005년연표보기 - 김범우 묘역 정비 사업 준공
소재지 김범우 묘소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사기점길 50-100[용전리 산102-1]지도보기
성격 묘소
관련 인물 김범우
관리자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한국 천주교의 최초 순교자 김범우의 묘.

[개설]

김범우[1751~1787]의 집안은 증조(曾祖)인 김익한(金翊漢)이 통역관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대대로 통역관을 배출한 중인(中人) 집안이다. 김범우 역시 1773년(영조 49) 역과(譯科)에 합격한 중국어 통역관이며, 동생인 김적우(金積禹) 또한 통역관이다. 김범우는 남인계 실학자들과 교분이 두터웠고, 서학과 천주교를 수용하였다.

김범우의 집은 천주교도가 모이는 교회로 사용되다가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 즉 추조[형조]의 수사에 의하여 적발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범우의 집이 있었던 명례동(明禮洞)[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의 집터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라는 표석이 서 있다. 을사추조적발사건에 연루된 양반들이 많았으나 모두 석방되었다. 김범우는 모진 고문을 받은 후 일정한 시기 동안 일정한 곳에서 강제 노역에 종사하는 형벌인 도배(徒配)에 처해졌고, 고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치]

김범우 묘소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산102-1번지 일대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김범우 묘소는 한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가 후손과 천주교 부산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의 노력으로 1989년 5월에 발견되었다.

[형태]

김범우 묘소 앞에는 김범우의 약력을 소개하는 커다란 비석이 있다. 김범우 묘소 앞의 비석은 2003년 9월 천주교 부산교구에서 세웠다. 여기에는 김범우가 “1784년 가을 이벽의 집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겨울부터는 자신의 집이 교회가 되어 명례방공동체가 생겨났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1785년 봄 ‘을사추조적발사건’이 일어났을 때 모진 고문을 받은 후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으로 유배를 왔고, 1787년 고문의 여독으로 사망하여 한국 천주교회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현황]

김범우의 사망 시기는 가족의 심문 기록, 문헌 기록에 따라 1786년설과 1787년설로 크게 나뉜다. 그리고 도배형을 받은 유배지에 관한 의견 또한 충청북도 단양군과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으로 나뉘어져 있다.

1990년 천주교 부산교구에서 김범우 묘소 부지를 매입하면서 김범우 순교자 성지를 조성하기 시작하였고, 2005년 김범우 묘역 정비 사업을 준공하였다. 현재 김범우 묘소 주변에는 묵상의 길, 성모동산, 성령칠은길, 교육관 및 피정의 집, 성모동굴성당, 사제관 등이 들어서 있다.

[의의와 평가]

김범우 묘소는 한국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으며, 김범우김범우 후손들의 경상남도 밀양시 정착과 천주교 확산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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