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36
한자 唐誠
영어공식명칭 Dang S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37년연표보기 - 당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01년 - 당성 개성부유후 제수
몰년 시기/일시 1413년연표보기 - 당성 사망
출생지 닝보 - 중국 저장성 닝보시
거주|이주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사당|배향지 죽원재사 -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원2리2길 39[다죽리 200]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본관 밀양(密陽)
대표 관직 공안부윤

[정의]

조선 전기 밀양을 본관으로 삼은 문신.

[가계]

당성(唐誠)[1337~1413]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중국 송(宋)나라 승상을 지낸 당각(唐恪)의 6세손이다. 태종 때 밀양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밀양당씨(密陽當氏)의 시조가 되었다.

[활동 사항]

당성은 중국 강절(江浙)의 명주(明州)[현 저장성 닝보시] 출신이다. 원나라 말에 병란을 피하여 고려로 귀화하였다. 정동행성의 하급 관리로 근무하다가 정동행성(征東行省)이 혁파된 이후 고려에서 사평순위부(司平巡衛府)의 평사(評事)를 맡았다. 벼슬이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에 이르렀고, 조선 건국에 공을 세워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이후 호조·예조·형조·공조의 전서(典書)를 역임하였다. 1401년(태종 1) 태종이 명(明)으로부터 조선 국왕으로 책봉을 받은 뒤 개성부유후(開城副留後)를 거쳐 공안부윤(恭安府尹)이 되었다. 당성은 1409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지내다가 1413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당성의 후손들이 죽원재사(竹院齋舍)를 건립하여 제사를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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