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도호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72
한자 密陽都護府
영어공식명칭 Miryang Dohobu
이칭/별칭 추화(推火),밀성(密城),밀주(密州),귀화(歸化),밀산(密山),수산(守山),풍각(豐角)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변광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415년연표보기 - 밀양도호부 설치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 설치된 도호부.

[개설]

밀양 지명은 신라 추화군(推火郡)[미리벌]에서 비롯되어 밀성군(密城郡)으로 고친 후, 고려 성종 대 밀주자사(密州刺史), 현종 대 지밀성군사(知密城郡事)를 두었다. 공양왕 대 공양왕의 증조 익양후(益陽侯)의 부인 박씨의 고향인 연고로 밀양부로 삼았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도로 밀성군으로 하였다가, 밀양부(密陽府)로 승격되었다. 곧이어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밀양 관할에 수산(守山)과 풍각(豐角)을 속현으로 삼았다. 도호부사는 종3품의 품계를 지닌 관료가 부임하였으며, 하급 속료로는 좌수 1인, 별감 3인, 군관 10인, 향리 25인, 가리 54인 등이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394년 밀양 출신 관리 김인보(金仁甫)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공로로 밀성군이 밀양부로 승격되었으며, 1415년 1,000호(戶) 이상 되는 고을을 도호부로 승격시키는 제도에 따라 도호부가 되었다.

[관련 기록]

밀양도호부는 『세종실록(世宗實錄)』 권150 지리지, 경상도 경주부 밀양도호부와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밀양부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내용]

조선 전기 밀양도호부의 호수는 1,612호, 인구가 5,522명이며, 수산의 호수는 93호, 인구가 356명이요, 풍각의 호수는 294호, 인구가 907명이다.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120명, 진군(鎭軍)이 233명, 선군(船軍)이 542명이다. 밀양부의 토성(土姓)이 손(孫)·박(朴)·변(卞)·김(金)·조(趙)·변(邊)·양(楊)이며, 내성(來姓)이 윤(尹)·이(李)·최(崔)·조(曺)이요, 사성(賜姓)이 당(唐)이다.

[변천]

조선 전기 밀양도호부의 호수는 1,999호, 인구는 6,785명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호수는 8,303호, 인구는 3만 3142명으로 크게 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밀양도호부는 호수, 인구수가 많았으며, 전세, 대동세, 균세 및 군액이 타 고을에 비하여 많은 편이라 큰 고을[大邑]에 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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