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85
한자 朴壽春
영어공식명칭 Park Soochun
이칭/별칭 경로(景老),국담(菊潭),숭정처사(崇禎處士)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병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2년연표보기 - 박수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7년 - 박수춘 의병 봉기
활동 시기/일시 1636년 - 박수춘 의병 봉기
몰년 시기/일시 1652년연표보기 - 박수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94년 - 박수춘 대구 남강서원에 배향
출생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묘소|단소 박수춘 묘소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지도보기
성격 학자|의병장
성별 남성
본관 밀성(密城)

[정의]

조선 후기 밀양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가계]

박수춘(朴壽春)[1572~1652]의 본관은 밀성(密城)이며, 자는 경로(景老), 호는 국담(菊潭)·숭정처사(崇禎處士)이다. 할아버지는 박대성(朴大成)이고, 아버지는 동몽교관 박신(朴愼), 어머니는 참봉 손취(孫鷲)의 딸 밀양손씨(密陽孫氏)이다. 부인은 김우용(金遇鎔)의 딸 경주김씨(慶州金氏)이고, 아들은 박유(朴瑠)·박뇌(朴瓃)·박임(朴琳)이다. 사위는 성창원(成昌遠)·신시망(辛時望)·안통한(安通漢)·이장윤(李長胤)·이이정(李而楨)이다.

[활동 사항]

박수춘은 1572년(선조 5) 밀양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오한(聱漢) 손기양(孫起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성주의 한강(寒岡) 정구(鄭逑) 문하에도 왕래하며 배웠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격문을 돌리고 의병을 모집하여 곽재우(郭再祐)가 지키고 있던 화왕산성으로 달려갔다. 전란이 끝난 후에는 혼란해진 향촌 질서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였다. 1618년(광해군 10)에는 인목대비(仁穆大妃) 폐위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박수춘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도 창의 격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켰으나,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산중에 들어가 학문에 매진하였다. 이후 향촌의 풍속을 순화하는 데 앞장섰으며, 향소(鄕所)가 점차 관에 종속되어 부역을 징발하는 기구로 변화하자 원래 기능을 회복하고자 애썼다. 박수춘은 1652년(효종 3)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박수춘의 저서로는 『국담박선생문집(菊潭朴先生文集)』·『독서지남(讀書指南)』·『학문유해(學問類解)』·『도통연원록(道統淵源錄)』·『동방학문연원록(東方學問淵源錄)』·『의례견문해(疑禮見問解)』 등이 있다.

[묘소]

박수춘의 묘소는 밀양시 부북면의 봉천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박수춘은 1672년 통정대부 호조참의에 추증되었고, 1694년(숙종 20) 대구의 남강서원(南岡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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