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579
한자 李元輔
영어공식명칭 Lee Won-bo
이칭/별칭 영모당(永慕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은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97년연표보기 - 이원보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77년연표보기 - 이원보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94년연표보기 - 이원보 정문 수여
추모 시기/일시 1918년 - 이원보 효자각 중건
추모 시기/일시 1978년 - 이원보 효자각 중수
출생지 도산북리 -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도산북리
사당|배향지 효자각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무연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남성
본관 합천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밀양에 거주한 효자.

[가계]

이원보(李元輔)[1697~1777]의 본관은 합천(陜川)이고, 호는 영모당(永慕堂)이다. 1697년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도산북리에서 태어났다. 8세에 어머니 상을 당한 이후 평생 동안 정성껏 아버지를 모셨다. 이원보의 아버지는 동추(同樞) 이광일(李光逸)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정려되었고,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되었다.

[활동 사항]

이원보는 8세에 어머니 상을 당하였는데, 밤낮으로 상여를 부여잡고 가슴을 치며 시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장삿날이 되어서는 무덤으로 판 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바람에 여러 사람이 끌어내어 겨우 장사를 마쳤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도 슬퍼함이 지극하여 사람들이 모두 ‘어린 증자[童曾子]’라 불렀다.

이원보는 장성한 후에도, 집은 몹시 가난하였으나 맛있는 음식으로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병에 걸렸을 때에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연명하게 하였다. 병든 아버지가 생선을 먹고 싶어 하자 나루터로 나갔는데 잉어가 갑자기 배 위로 올라온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서는 마음과 예제를 다하였고, 묘소에 여막을 치고 3년을 살았는데도 남은 슬픔이 다하지 않아 상(喪)을 1년 더 하였다. 이원보가 시묘할 때에는 호랑이가 지켜 주었다 하고, 대설(大雪)이 녹는가 하면 큰비도 그쳤다고 한다.

이원보는 1777년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관찰사 정존중(鄭存中)이 포계(襃啓)하여 1794년(정조 18)에 나라에서 정문을 내렸으며, 1809년(순조 9)에는 효행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직하였다. 밀양시 부북면 무연리이원보의 효성을 기린 효자각이 있는데, 1918년 6세손 이영업이 중건한 것을 1978년 후손들이 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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