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봉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673
한자 潘鳳出
영어공식명칭 Ban Bong-chu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1년 2월 8일연표보기 - 반봉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4일 - 반봉출 밀양 태룡리 장터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11월 20일 - 반봉출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태 90대 언도
몰년 시기/일시 1950년 10월 28일연표보기 - 반봉출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5년 3월 1일연표보기 - 반봉출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미촌리 -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미촌리 715 지도보기
활동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반봉출(潘鳳出)[1901~1950]은 1901년 2월 8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에서 반규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반봉출은 1919년 4월 4일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丹場面) 태룡리(台龍里)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태룡리의 만세 시위는 민족 대표 중의 한 사람인 한용운(韓龍雲)의 지시를 받은 양산 통도사(通度寺) 승려들의 영향 하에 계획되었다. 통도사 승려 5명은 3월 20일 밀양 표충사(表忠寺)를 방문하여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였다. 승려들은 태룡리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태룡리단장면의 면소재지로, 4일과 9일 5일마다 장이 열리고 있었다. 이어 「선서」라는 제목의 취지문과 「독립선언서」, 태극기 등을 만들며 시위를 준비하였고, 인근 사찰과 단장면, 산내면(山內面), 산외면(山外面) 등으로 소식을 전하며 지역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태룡리 장날인 4월 4일, 장터에는 아침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정오 무렵 5,000여 명의 군중들이 모이자 승려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선창하였고, 그 자리에 있던 군중들이 이에 호응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열을 지어 행진하던 군중들이 단장면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건물을 부수고 헌병들을 공격하였다. 반봉출은 군중의 일원으로서 시위에 참여하여 만세를 외치며 시장 곳곳을 행진하였다. 밀양군 읍내에 있던 밀양헌병분견대에서 헌병들이 급파되었고,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는 등 무력을 행사하자 군중들은 오후 1시 30분경 해산하였다.

반봉출은 1919년 4월 4일의 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1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요죄로 태 90대를 언도받았다. 반봉출은 1950년 10월 2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반봉출에게는 2015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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