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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가구(可久). 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지년(鄭知年)이다. 동생 정효종(鄭孝終)은 21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좌승지,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51년(문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54년(단종 2)에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집현전 부수찬이 되었다. 경연사경(經筵司經)으로 있으면서 단종 복위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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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태고종 소속의 불교 사찰. 가덕사가 위치해 있는 가마봉은 마을 남쪽을 둘러싸고 있으며, 가마봉과 마을 사이에 개천이 흐른다. 풍수 지리적으로 가마봉은 남근의 모양을 띠고 있고, 마을은 여근 형국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마을 앞 개천에 버드나무를 심어 음기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다고 전한다. 마을 가운데에 봉황의 알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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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내면 송내리의 가덕사 내부에 있는 석조 보살상. 가덕사 석조여래입상은 1999년 11월 19일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가덕사 대웅전의 내부 한쪽에 서남향으로 세워져 있다. 얼굴은 신체에 비해 작고 풍만한데, 광배(光背) 상단부의 결손을 제외하고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광배와 불신(佛身)이 한 돌로 조각되었다. 방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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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소재지로부터 국도 24호선에서 군도 8호선 2㎞ 지점 고남산 기슭에 위치하고, 산동면 부절리와 인접한 마을이다. 법정리로서의 권포리는 행정리인 권포리와 가동리로 나뉘어 있다. 가동리라 하여 ‘더할 가(加)’ 자를 쓰게 된 것은 권포리와 장교리(연동) 두 마을 사이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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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공적으로 불교 신행을 행사는 장소. 9세기 초 남원시 산내면에 지리산 실상사실상사(實相寺)가 구산선문 최초의 가람으로 창건된 후 남원 지역은 선종의 주요 기반이 된다. 도선국사는 동리산문 혜철국사의 제자로 풍수지리와 도참설에 능하였으며 남원 지역에 선원사, 대복사, 만복사, 용담사 등 많은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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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신재효가 판소리 열두 마당 중 하나로 연행되던 「변강쇠가」를 판소리 사설로 정착한 작품. 유랑민들의 비극적 생활상을 희극적으로 형상화한 「변강쇠가」는 「변강쇠타령」이나 「가루지기타령」, 「송장가」, 「횡부가(橫負歌)」라고 불리기도 한다. 「변강쇠가」는 원래 조선 후기에 연행되던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한 곡으로,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에 있는 백장암 계곡이 주요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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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소년·소녀 두 사람이 한 사람을 태워 가마를 탄 시늉을 하면서 노는 놀이. ‘시집 간다’, 또는 ‘장가 간다’고 하면서 하는 놀이로서 혼인 때 가마꾼들이 신부를 가마 태우는 모습을 흉내 내면서 노는 것이다. 특별한 도구 없이 맨 손으로 할 수 있는 놀이다. 공터가 있으면 장소에 구애 없이 할 수 있는 놀이다.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자기의 바른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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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던 터. 도요지(陶窯址)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 유적으로, 우리말로는 가마터라고 한다. 광의적 정의로 가마터란 각종 토기, 도기, 자기, 벽돌, 기와 등을 고온에서 소성하던 구조물을 말한다. 또 목탄을 만들기 위한 시설물도 목탄가마, 또는 탄요(炭窯)라 하여 같은 범주에 넣는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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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 가산이란 아름다운 산이라는 이름이며, 방현은 방을 붙인 고개라는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옛날부터 운봉 관아가 있는 운봉읍과 권농병마사가 있던 아영 지역의 중간 통로였기 때문에 이 고개에 운봉현 유생들이 과거시험 결과를 알리는 방이 붙었는데, 이곳에 합격여부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방을 기다렸다는 데서 유래한다. 1479년(성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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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가산리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운봉면 가산리에 있다. 합미성(合米城)이라 칭한다. 석축(石築)이며 둘레는 200간(間)이고 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운봉읍 가산리와 아영면 봉대리 그리고 장수군 번암면 유정리의 경계 지역에 있는 해발 550m 지점 산 정상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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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지역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가야 지역에서 제작되거나 가야 양식으로 제작된 토기. 가야계 토기는 일반적으로 4세기 이후에 새로운 제도술(製陶術)에 의해 1,000℃ 이상의 온도에서 구워낸 단단한 질의 도질토기(陶質土器)를 말한다. 주로 낙동강 서쪽인 옛 가야 지역과 남원을 중심으로 하는 호남 동부 지역에서 출토된다. 가야 토기는 3세기 중엽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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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판소리 명창. 19세기 판소리 전기 8명창 중의 한 사람이며 판소리의 중시조로서 가왕(歌王)으로 일컬어졌으며, 동편제 판소리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송흥록이 판소리사에 공헌한 것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진양조 장단을 완성한 것이며, 두 번째는 산유화조를 도입한 것이다. 산유화조는 경상도 민요의 선율형이다. 송흥록은 진양조의 완성을 통해 양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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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승려. 호는 구곡 또는 소은. 속명은 유씨이다.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는 이색의 「승련사기」에 따르면, 각운은 태고 보우의 법맥을 계승했다. 학덕이 높고 필법이 뛰어났다고 한다. 공민왕으로부터 그의 도행이 숭상을 받았다. 이로 말미암아 공민왕이 「달마절로도강도(達磨折蘆渡江圖)」와 「보현육아백상도(普賢六牙白象圖)」를 직접 그려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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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회가(晦可), 호는 간송(澗松). 도제조 무안군 정남만의 후손이며, 정산택(丁山澤)의 아들이다. 정사달은 효성이 지극하고 문행이 세상에 알려졌으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정사진과 함께 조경남과 김완을 따라 궁장동으로 들어가서 많은 왜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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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간숙(幹叔), 호는 농암(聾庵). 병부낭중 양능양(梁能讓)의 후손이다. 양진번은 남원 괴정에서 출생하여 김화(金樺)의 문하에서 배우고 정온(鄭蘊)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운암 이흥발 등 여러 선비들과 함께 창의하여 과천에 이르러서 적병을 많이 죽였다. 얼마 후 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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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천년 묵은 칡덩굴이 우거지고 마을 앞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어 갈계(葛溪)라 하였다. 조선 초기 함양박씨(咸陽朴氏)가 들어와 번창하였으며 박씨들의 집성촌이 되어 지서, 학교, 보건소 등을 유치하는 데 힘써 큰 마을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갈계리라 하여 남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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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 동계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아영면 소재지에서 인월 방면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계마을의 북쪽에 자리한다. 동계 마을 입구를 지나 좌측에 있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동계마을 북쪽의 낮은 구릉이 남쪽과 동쪽으로 완만하게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 하단부에는 풍천이 남북 방향으로 흐른다. 주변은 대부분 논과 밭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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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 동계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아영면 소재지에서 인월 방면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계마을의 북쪽에 자리한다. 동계 마을 입구를 지나 좌측에 있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동계마을 북쪽의 낮은 구릉이 남쪽과 동쪽으로 완만하게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 하단부에는 풍천이 남북 방향으로 흐른다. 주변은 대부분 논과 밭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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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 갈계 마을에서 음력 1월 2일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갈계 마을은 창원정씨가 들어와 이주할 당시 마을자리에 천년 묵은 칡덩굴이 무성하게 자라고 마을 앞쪽으로 냇물이 동맥처럼 흐르고 있어서 갈계(葛溪)라고 이름지었다. 당산제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외부에서 마을이 보이면 재앙이 따른다고 하여 조탑도 세웠는데, 마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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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며, 참판 김성진(金聲振)의 둘째 아들이다. 김원립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준수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1613년(광해군 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 때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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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속하는 법정동. 칡이 많이 나는 언덕이라 하여 칡고개라 하였다. 또한 갈치재 밑이 되므로 갈치라 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피난을 온 함양오씨(咸陽吳氏)가 처음 정착하였으나, 그 뒤 천안전씨(天安全氏)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남원군 갈치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치리라 하여 왕치면에 편입되었다가 1956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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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시의 군(郡)·현(縣)에 파견되었던 지방 관리. 감무는 고려 중엽인 1106년(예종 원년)부터 정부가 서해도(西海道)를 비롯하여 각 지방에 파견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방 군·현의 백성들을 위로하여 유민(流民)의 발생을 방지함으로써 조세와 역(役)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특히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과 속현 지역에 감무관을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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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시의 군(郡)·현(縣)에 파견되었던 지방 관리. 감무는 고려 중엽인 1106년(예종 원년)부터 정부가 서해도(西海道)를 비롯하여 각 지방에 파견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방 군·현의 백성들을 위로하여 유민(流民)의 발생을 방지함으로써 조세와 역(役)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특히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과 속현 지역에 감무관을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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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동호재는 시문에 능한 조문형이 사재를 털어 만든 서당으로서, 그의 아호인 ‘동호(東湖)’를 칭하여 동호재라는 이름을 지었다. 시문에 능하였던 훈장 조문형은 20세에 마을 훈장이 되어 자신이 거주하는 집에 ‘동호재’를 마련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혹독하였던 일제강점기를 거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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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양주익이 지은 한시 및 한역가. 양주익(梁周翊)[1722~1802]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사마시와 문과에 급제하여 문신으로서 활약한 인물이다. 「감성은가(感聖恩歌)」는 작자의 문집인 『무극집(无極集)』 권1에 전하는 작품으로, 먼저 한시로 짓고 국문으로 번역하여 뒤쪽에 싣고 있다. 『무극집』에는 「감성은가」 5첩과 「우감은곡(又感恩曲)」 5첩이 있는데, 하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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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부녀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큰 원을 이루어 빙글빙글 돌면서 노는 놀이.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오후 늦게나 달 밝은 저녁에 부녀자와 아이들이 함께 손을 잡고 돌면서 노는 놀이다. 처음에는 노동요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민속놀이로 인식되고 있다. 마을에서 하던 놀이였으나 요즘은 하는 마을이 거의 없어졌으며 초등학교 등에서 운동회를 하거나 학예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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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강기리는 내기마을과 강촌마을이 동에서 서로 길게 뻗어 있는 지리적 특징을 보인다. 중산간부의 약간 경사진 마을로 쌀과 보리 위주의 농업이 주종을 이룬다. 내기리와 강촌리의 이름을 따서 강기리라 하였다. 내기리는 시루봉과 방학산 같은 산악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의 안쪽에 위치하여 안터 또는 내기라 불린다. 강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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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고려 전기의 행정 구역. 고려 전기인 995년(성종 14) 9월에 전국을 10도로 분류, 개편하였다. 10도는 관내도, 중원도, 하남도, 강남도, 영남도, 영동도, 산남도, 해양도, 삭방도, 패서도이다. 강남도는 전주(全州), 영주(瀛州)[현 정읍 지방], 순주(舜州)[현 순창 지방], 마주(馬州)[현 익산 지방] 등을 포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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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신흥 종교 창시자. 본관은 진주. 수은공(睡隱公) 강항(姜沆)의 후손이다. ‘유도갱정’이라는 유도 계통의 신흥 종교를 창시한 강대성은 오낙중에게 받은 『음부경(陰符經)』을 읽으며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갔다. 그는 아들, 부인과 함께 회문산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 그러나 얼마 후 부인이 죽자 강대성은 남원, 구례 등지를 배회하다가 지리산으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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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양필(良弼), 호는 송계(松溪). 순창군 팔덕면 사정리 출신으로, 문양공 강희맹(姜希孟)의 7대손이며,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강창국(姜昌國)의 아들이다. 강대한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용모가 준수하며 기개가 강개하였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종묘사직이 위기에 처하자, 부친의 명에 따라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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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양(晉陽). 은렬공 강민첨(姜民瞻)의 후손이다. 강덕복은 임진왜란 당시 조정에서 뜻이 견고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발탁할 때 남원부에서 추천하여 감정(監正)에 임명되었다. 정유재란에 수백 명을 거느리고 수성령(宿星嶺)에서 왜적 60여 명을 사살하였으나, 뒤에 화살도 떨어지고 힘이 다하여 순절하였다. 아내 양씨(梁氏)가 진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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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판소리 명창. 강도근의 호적명은 강맹근(姜孟根)이며, 아버지 강원종과 어머니 이판녀 사이의 9남매 중 넷째로, 1918년 지금의 남원시 향교동에서 태어났다. 강도근은 동편제 판소리 「흥보가」의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지킨 판소리 소리꾼이었다. 통성 위주의 목으로 소리 끝을 짧게 끊어내며, 대마디대장단을 충실하게 구사하는 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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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판소리 명창. 강도근의 호적명은 강맹근(姜孟根)이며, 아버지 강원종과 어머니 이판녀 사이의 9남매 중 넷째로, 1918년 지금의 남원시 향교동에서 태어났다. 강도근은 동편제 판소리 「흥보가」의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지킨 판소리 소리꾼이었다. 통성 위주의 목으로 소리 끝을 짧게 끊어내며, 대마디대장단을 충실하게 구사하는 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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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대금의 명인. 강백천은 1898년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에서 출생하였다. 강백천은 17살 때부터 박준필, 전추산, 박종기 등에게 배운 뒤, 시나위 더늠 대금산조를 개척하였다. 따라서 강백천의 대금산조에는 「육자배기」나 「흥타령」과 같은 계면조 가락이 많다. 강백천의 대금산조는 박종기 계통의 판소리 더늠 대금산조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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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이천(利川). 호는 강석(江石). 서택인(徐擇仁)의 아들이다. 서택인부터 그의 손자 서봉주(徐鳳周)에 이르기까지 3세(三世) 5효열(五孝烈)을 배출한 집안으로 유명하다. 서영측은 형 서영팔(徐永八)과 함께 효성이 지극하여 홀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뒤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두 형제가 함께 시묘살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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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900년경 어느 용한 스님이 마을이 번성하려면 강석골로 불러야 한다고 하여 강석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590년경 임진왜란 때에 난을 피하기 위해 고창군 흥덕면에서 흥덕장씨가 이주하여 왔고, 1594년경에는 양천허씨와 경주김씨, 광산김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은 초목이 무성하고 방(房)처럼 온화한 지형으로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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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강석리에 있는 서당. 1905년에 이태암이 대강면 강석리의 강석굴 마을에 있는 자신의 가숙(家塾)에서 학동을 훈학시키는 형태로 서당을 운영하였다. 강석서당은 이후 1925년까지 운영되면서 70여 명의 제자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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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조림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이다. 은천군(銀川君)에 봉해진 뒤 1386년(우왕 12)에 한양 도원수 겸 한양 부윤이 되었다. 1388년(우왕 14)에 밀직사사로 왕의 조근을 청하러 명나라에 다녀왔다.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에 의하여 최영과 함께 요동을 친 죄로 풍주에 유배되었다가, 1392년 조선이 개국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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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 민주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진 민주 인사 강은기는 1942년 2월 16일 남원시 쌍교동에서 아버지 강용갑과 어머니 진차정 슬하에서 태어났다. 남원초등학교를 거쳐 남원중학교에 진학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3학년 때 중퇴하고 인쇄소에 취직했다. 이것이 출판물을 통해 민주화 운동에 나선 계기가 되었다. 요천변의 노천에서 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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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응지(應趾), 호는 월당(月塘). 은열공 강민첨(姜民瞻)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찰방 강근(姜瑾)이다. 강인상은 어버이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었고, 지조와 절개가 굳세었다. 1576년(선조 9)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효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제수되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두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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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강민첨(姜民瞻)의 23세손이다. 부인은 경주정씨(慶州鄭氏) 노송정(老松亭) 정지년(鄭知年)의 후예이다. 강주택은 뛰어난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타고난 천성이 효심이 깊어서 부모에게 항상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여 드리고 그 뜻을 어긴 적이 없었다. 초상과 장사 및 제사에 관한 예절을 한결같이 가례(家禮)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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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보일(輔日), 호는 삼봉. 순창군 팔덕면 사정리 출신으로, 문량공 강희맹(姜希孟)의 6세손이며, 성균관 생원 와서별좌 강덕인(姜德麟)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인 강대한과 함께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의군진이 있는 금산으로 가서 싸웠으나, 7월 10일 중과부적으로 전세가 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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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좌도 농악의 명인. 1902년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출생하였다. 강태문은 류한준과 함께 진안 출신의 전문 농악인인 전판이에게 농악의 기예를 전수받아 ‘독우물굿’을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1946년에 열린 제1회 전국농악경연대회에 류한준과 함께 전라북도 대표로 참가하여 1등을 할 때 부쇠를 맡았다. 이후 류한준 패의 부쇠로 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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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장경세가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을 본따서 지은 가사 작품. 장경세(張經世)[1547~1615]의 문집인 『사촌집(沙村集)』 권2에 전한다. 장경세는 어려서 퇴계의 「도산십이곡」을 읽고 시가 가지는 효용이 잘 드러났다고 여겼는데, 그 후로 10여 년 뒤 다시 「도산십이곡」을 읽고는 어려서 느낀 벅찬 감정이 떠올라서 곧 「강호연군가」를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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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에서 개미를 소재로 하여 부르는 민요. 「개미타령」이라고도 부르는 「개미 노래」는 동식물 노래로 분류되는 민요이다. 개미라는 곤충의 특징을 소재로 혼자 부르는 구전 민요로서 유희요로 분류할 수 있다. 『남원지』에 수록되어 있으며, 가창자는 보절면 괴양리 양촌마을에 사는 이금연(여, 79세)이다.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불리는 「개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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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발표한 주길순의 단편소설. 주길순은 1933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난 뒤 남원농고를 졸업하였다. 이후 주로 남원에서 활동하며 작품을 집필하였는데, 「개미성의 사자」는 1973년에 간행된 창작집 『탄원』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탄원』에는 표제작 「탄원」 외에 「어느 한 주일」, 「맹인일기」, 「매」, 「개백정 공수」, 「개미성의 사자」 등 6편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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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에서 개미를 소재로 하여 부르는 민요. 「개미타령」이라고도 부르는 「개미 노래」는 동식물 노래로 분류되는 민요이다. 개미라는 곤충의 특징을 소재로 혼자 부르는 구전 민요로서 유희요로 분류할 수 있다. 『남원지』에 수록되어 있으며, 가창자는 보절면 괴양리 양촌마을에 사는 이금연(여, 79세)이다.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불리는 「개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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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 중인 그리스도교의 분파.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특히 1882년 한미통상조약 이후 미국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부를 필두로 하여 캐나다, 호주, 영국 등에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되었다. 선교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선교부 사이에 경쟁과 중복 선교가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교부들 사이에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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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신교 관련 단체. 남원시에 있는 주요 기독교 단체로는 남원YMCA·남원YWCA·와이즈멘 등이 있다. 남원YMCA는 1965년 12월 12일에 30여 명이 남원기독교청년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결성하였고, 초대 이사장에 양용조, 초대 총무에 김봉룡이 취임하였다. 1966년 3월에 회관을 남원읍 쌍교리 3번지 지산향육원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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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돌의 영적 힘을 믿었던 민간 신앙이자 민속놀이. 거석신앙은 들돌신앙이라고도 한다. 돌에 영구불변성과 초자연적인 힘[靈驗]이 있다고 믿었던 무속 신앙이다. 거석은 당집이나 당산나무 밑에 존재했는데, 신의(神意)를 알아보거나 진쇠[成人]가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 돌(들돌)을 들어보는 행사를 했다. 도서나 해안 지방, 특히 전라남도의 도서나 해안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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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성시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꾀 많은 사위를 얻으려는 장인 이야기. 1979년 8월 2일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성시리에서 최래옥이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정강현(남, 36)이다. 김씨라는 부자가 있었는데, 외동딸을 거짓말 잘하는 사람한테 시집보내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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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월락동에 있는 남원 지역 국토의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의 부속 기관. 남원 지역에 위치한 국도 및 국도상의 도로 시설물의 보전과 관리, 시설 개량, 안전시설물 설치 및 개선, 재해 예방 및 복구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남원국토관리사무소는 1975년 6월 18일에 남원시 월락동 620-1번지에 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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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토목·건축 및 기타 이와 관련되는 건설 공사의 도급을 받는 영업. 건설업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각종 인공 시설물들인 토목과 주택, 상가, 공장, 사무실 등의 건축물을 건설하는 공사를 맡아 수행하는 영업으로 공사의 종류에 따라 일반건설업·특수건설업·전문건설업으로 나누기도 한다. 일반건설업 및 특수건설업을 영위하려면 건설교통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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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서리산의 지맥이 서쪽으로 완만히 흘러내려 형성된 마을 터는 말이 누워 있는 와우형에 비유해 마을의 중앙이 배꼽에 해당된다고 한다. 또 제비집 형국인 연소형(燕巢形)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을 감싸고 있는 작은 언덕은 제비집이고 동쪽은 상산으로 그 끝자락에 있으며 제비집 두 개의 형상은 여원치(女院峙) 너머 최고의 명당 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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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건지리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계의 고분군. 유적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를 이루고 있는 연비산에서 상산으로 연결된 능선의 서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고분군은 경사면의 가파른 지역을 제외한 구릉 지대에 밀집되어 있다. 그 범위는 동서 길이 1㎞, 남북 길이 50m 내외를 이루고 있다. 이 고분군의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지점에는 두락리 고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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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음력 정월을 비롯한 농한기에 마을 주민들이 집단으로 풍악을 치면서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그 집의 안녕을 빌어주던 놀이. 마당을 비롯하여 부엌, 창고 등을 다니면서 풍악을 치면 부정한 것들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집 주인은 풍악을 치는 풍악패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쌀이나 돈으로 사례를 하기도 한다. 여기서 거두어진 돈이나 쌀은 마을 공동 사업에 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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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 있는 도로. 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의 옛 지명이기도 하며, 금동 281-6번지에서 금동 174-1번지[검멀길 17-41]까지의 작은 도로를 말한다. 검멀은 큰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금말·금마을, 혹은 검머리로 불렸다. 검멀길은 금동의 옛 마을 이름이다. 금동은 고려시대 남원부의 남쪽 2리에 위치한 남안향(南安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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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 있는 도로. 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의 옛 지명이기도 하며, 금동 281-6번지에서 금동 174-1번지[검멀길 17-41]까지의 작은 도로를 말한다. 검멀은 큰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금말·금마을, 혹은 검머리로 불렸다. 검멀길은 금동의 옛 마을 이름이다. 금동은 고려시대 남원부의 남쪽 2리에 위치한 남안향(南安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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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남원 출신 이웅징의 시문집. 이웅징(李熊徵)[1658~1713]은 자가 성보(聖輔)이고, 호는 검주(黔州)인데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1658년에 전라북도 남원시 주포방에서 이필무(李必茂)의 아들로 태어났다. 『양호당선생유고(養浩堂先生遺稿)』를 남긴 이덕열의 증손이고 『득우정선생실기(得寓亭先生實記)』의 주인공이었던 이용징의 아우로서, 수암(遂菴) 권상하(權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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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고평리 견두산 정상 부근에 있는 마애여래입상. 견두산 마애여래입상은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과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경계에 위치한 견두산 정상 부근에 있다. 고평리 신덕마을 동편에 위치한 견두산 입구에서 약 6㎞ 정도 올라가면 산 정상이 있고, 정상에 있는 묘를 왼쪽으로 끼고 내려서면 높이 5m 내외의 거대한 암벽에 마애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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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남원 출신 김성열의 시문집. 김성열(金成烈)[1846~1906]은 1846년에 전라북도 남원군 송동면 두동에서 김인경(金仁鏡)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자는 원중(源仲), 호는 겸산(兼山)으로 본관이 경주이다. 『겸산집(兼山集)』은 1934년에 저자의 손자인 김종가(金種嘉)가 자신의 발문에 민병승(閔丙承)의 서문을 받아 간행하였다. 6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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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사촌(沙村) 장경세(張經世)[1547~1615]는 선조와 광해군 연간에 주로 활약했던 문신이자 학자이다. 전라도도사, 금구현령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인목대비 유폐, 영창대군 살해 등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사직하였다. 이후 벼슬을 단념하고 시문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는데, 사회 현실과 우국지정을 읊은 문학 작품을 남겨 문명(文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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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경견(景見), 호는 만은(灣隱). 할아버지는 영상 이준경(李浚慶)이고, 아버지는 도승지 이덕열(李德悅)이다. 1633년(인조 11)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였으나 화의가 이루어지자 집으로 돌아와서 학문에 정진했다. 형인 이사성(李士星)과 함께 남원시 주포(周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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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한응성은 장성한 뒤에는 처가인 순창 귀미(龜尾)로 옮겨 살았다. 호가 귀와(龜窩)인 것은 귀미에서 따온 것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기(景期), 호는 귀와. 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의 고손자이고, 대호군(大護軍) 한축(韓軸)의 아들이다. 한응성은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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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문(景文). 남원백 윤위(尹威)의 후손으로, 문효공(文孝公) 윤효손(尹孝孫)의 4대손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봉사로 있던 종질 윤정기(尹廷璣)와 역시 종질인 윤정반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제봉 고경명의 격문을 보고, 그때까지 모았던 장사 3백여 명을 거느리고 고경명 부대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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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경부(敬夫).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9촌 조카인 사간(司諫) 박린(朴璘)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나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고향에 돌아와 벼슬길을 단념하며 살았다. 세상에서는 박유홍과 박린을 ‘일문의 쌍절’이라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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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경선(景善). 영의정 태허정 최항(崔恒)의 후손이며, 이조참판(吏曹參判) 최언수(崔彦粹)의 아들이다. 최적은 지조가 굳고 경학이 높고도 밝아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가 목천현감(木川縣監)을 역임하여 많은 치적을 올렸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니 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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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술(景述), 호는 금헌(禁軒), 또는 만휴당(晩休堂). 효령대군 이보(李補)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승지 이혼(李渾)이다. 지금의 임실군 둔남면 둔덕에서 태어났다. 1558년(명종 13)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5년(선조 18)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정랑으로 있었으나 명리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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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에 간행된 일제강점기의 문인 김교준의 유고 시문집. 김교준(金敎俊)[1883~1944]은 송병선(宋秉璿)과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으로 학문적 재능이 뛰어나 많은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다. 『경암집(敬菴集)』은 저자가 죽고 20여 년 뒤인 1961년에 제자인 황갑주(黃甲周)와 오구영(吳龜泳) 등이 계(稧)를 만들어 자금을 마련하여 비석도 세우고 문집도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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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에 있는 노인 전문 요양 시설.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는 노인들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여 편안하고 건강한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1년 3월 15일 노인 전문 요양원 신축 사업 신청서를 제출하여 같은 해 10월 30일 사업 승인 허가를 받았다. 2001년 11월 27일 신축 부지를 매입하여 2002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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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언(景彦). 아버지는 참봉 양희보(梁希寶)이다. 양대수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족인(族人) 양경우와 함께 고경명(高敬命)의 막하로 달려갔다. 그러나 고경명은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를 봉양하라고 집으로 보내니, 양대수는 눈물을 흘리며 그 뜻을 시로 짓고 물러나와 노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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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엽(慶燁). 이조판서 난계 박연의 후손이며, 박성신(朴聖臣)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 상을 당하자 무덤 근처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숙부 박성재, 사촌 동생 박상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진사 오상복을 따라서 팔량치에 나아가 같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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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전주시·임실군·남원시, 전라남도 곡성군·구례군·순천시를 지나 여수시에 이르는 일반 철도. 총길이는 185.2㎞이며 전체 구간 중 동익산~신리(완주군 상관면), 동운(순천시 서면 동산리)~여수 구간은 단선이며, 신리~동운 구간은 복선(82.7㎞)이다. 죽림~관촌 사이에는 일반철도에서는 가장 긴 슬치터널6,128m]이 1999년 5월 18일 준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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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경정(景正), 시호는 정숙(貞肅). 대언 유두명(柳斗明)의 아들이다. 음직으로 계성전직에 보직된 후 1426년(세종 8)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호조참의를 거쳐 경주부윤으로 있을 때 소송을 제기한 자가 뇌물을 바치자 태형으로 죽게 하여 파면되었다. 이후 남원에 돌아가서 오랫동안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후에 아들 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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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정부 관련 부서와의 협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설립된 단체. 상인 단체가 근대적인 상업회의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개항 이후의 일이다. 주로 객주들이 거상으로 성장하면서 진취적 기질을 바탕으로 세력을 형성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원산의 객주들은 1882년 원산상의소를 설립하였으며 한성에서는 시전인들이 주가 되어 한성상업회의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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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이루어지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활동 및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생산적 활동의 총체. 남원시는 한반도의 서남부 내륙, 전라북도의 동남부 소백산맥 서사면의 넓은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시의 동남쪽은 지리산의 주 능선을 경계로 경상남도 하동군 및 전라남도 구례군, 북동부는 경남 함양군, 서쪽은 임실군과 순창군, 북쪽은 장수군과 인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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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경주김씨 수은공파의 족보를 펴내기 위해 제작한 유물. 경주김씨 보판각은 1998년 11월 27일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수은공파의 시조인 수은공은 고려 후기 충신으로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는 것에 반대하여 두문동에 은둔하였으며, 후에 남원으로 낙향하였다. 경주김씨 보판은 1711년에 발간한 『신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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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 자는 경즙(景楫), 호는 적은(迪隱)이다. 상호군 소희철(蘇希哲)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소인세(蘇仁世)이며 어머니는 문화유씨로 병절교위(秉節校尉) 유만달(柳晩達)의 딸이다. 소제는 성품이 충직하고 성실하였으며 힘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게 세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형 소황(蘇滉)과 함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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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국민을 계몽, 지도 또는 명령, 강제하는 국가의 특수 행정 작용. 남원경찰서는 1894년(고종 31) 좌우포도청을 폐지하고 경무청을 창설함과 동시에 관군의 경찰권을 군수가 관장하게 됨으로써 그 밑에 순교(포교) 약간 명을 두어 경찰 사무를 집행한데서 비롯되었으나 독립 관서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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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도암(島岩). 상호군 소희철(蘇希哲)의 후손이며, 현감 소연(蘇沿)의 6세손이다. 소황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소제(蘇濟)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 100석을 모아서 관에 보냈다. 순찰사 김성일(金誠一)이 그 공을 조정에 보고하여 포상해줄 것을 청했다. 임진왜란 때의 공으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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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남원 출신 오상귀의 시문집. 오상귀(吳相龜)[1791~1857]는 전라북도 남원군 아영면 아곡리에서 살았다. 자는 태숙(台淑), 호는 계거(溪居)이고,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학행으로 알려졌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서문에 이윤덕이 행장을 짓고,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1846~1916]이 묘갈명을 지어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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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물이 흐르는 골짜기. 계곡은 비교적 편평한 평지나 구릉 또는 산의 능선 사이에서 볼 수 있으며 그 위로 보통 하천이 흐른다. 곡 또는 골이라고도 한다. 남원의 계곡은 동부의 산지 계곡과 분지의 곡으로 나눌 수 있다. 크게는 섬진강 지류와 낙동강 지류에 의한 개석곡들이 발달해있다. 동부 변성암지대의 산지의 구조선을 개석해서 흐르는 뱀사골이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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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 김복흥의 시문집. 김복흥(金復興)[1546~1604]은 1546년에 전라북도 남원부 둔덕(현재의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났는데, 자는 경언(景言), 호는 계곡(谿谷)으로 본관이 순천(順天)이다. 만헌(晩軒) 정황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생원 진사 시험에 모두 합격하였다. 1840년에 8대손인 김수범(金守範)이 자신의 발문에 오한원(吳翰源)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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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 남서쪽에 있는 산. 병풍을 두른 듯한 암봉이 마치 닭벼슬을 닮았다 하여 부쳐진 이름으로 보고 있다. 다른 의미로 보면 계관봉 바로 아래 마을이 계수리인데 계동과 수동을 합친 마을이다. 그전에 계동이라 하여 계수나무가 있는 곳으로 보았으며 그 계수나무의 관, 계관(桂冠)의 의미로 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도리 노봉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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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계수리에 속하는 행정리. 계동리는 수동리와 함께 법정리인 계수리에 속해 있다. 마을 앞에 소하천이 흐르는 낮은 산악 지대로 형성되어 있으며, 전답이 즐비하여 오곡이 풍부하고, 울창한 소나무림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계동리는 본래 남원군 사동면 계동 지역으로, 계수나무가 있고, 계화낙지 명당이 있어 계수동 혹은 계동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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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선(繼先). 판서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진사 김백준(金百俊)의 아들이다. 김사종은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사천현감(沙川縣監)으로 있었다.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을 따라 진주성에 들어가서 힘을 다하여 적을 맞아 싸우다가 황진과 함께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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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수리는 계동리(마을)와 수동리(마을)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마을 앞에 소하천이 흐르는 낮은 산악 지대로 형성되어 있으며, 전답이 즐비하여 오곡이 풍부하고, 울창한 소나무림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본래 남원군 사동면(巳洞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수동(壽洞)마을과 계동(桂洞)마을이 통합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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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계수리에 있는 수령 540년의 은행나무. 남원 지역에는 마을마다 은행나무를 경제수종으로 하여 많이 식재되어 있으며, 가로수로도 많이 식재되어 있다. 특히 대부분의 겉씨식물과는 달리 도심의 매연에 강하기 때문에 시가지 가로수 식재 수종으로 선호하고 있다. 높이 30m, 흉고둘레 5.6m, 수관폭 30m, 지하고 2.5m이다. 지상 2.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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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행정리.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계암(鷄岩)이라 하였는데 계암마을은 무슨 연유인지 마을 사람들이 30세를 넘기 전에 요절하여 마을이 몰락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 마을의 지세를 풍수로 풀어 주었다. 노인은 “뒷산 매봉이 매혈[鷹穴]이고 취암리 앞산이 수리[鷲]이니 이 두 형국 사이에 있는 닭바위[鷄岩]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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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옥(季玉). 판서 김자지(金自知)의 후손이다. 김상덕은 강직하고 지조가 있었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남원부의 천총(千摠) 강민하가 군사를 거느리고 운봉 황산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때 영장(營將) 손명대(孫命大)가 “누가 능히 함양에 있는 적의 괴수 최존서를 포박하겠느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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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계원(季元), 호는 우재(愚齋). 고려의 호부상서 사조의 후손이다. 용성군 진석의 17세손이며,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진수영이다. 진종립은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는 등 무예에 뛰어났으며 담력과 지략이 뛰어나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장사 수십 명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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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김익복은 순흥안씨 사재당(思齋堂) 안처순(安處順)의 손자사위가 되어 남원 지역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후손들이 대대로 남원에 세거하여, 지금은 전라북도 남원시 남골[木洞]과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사창(社倉)에 살고 있다. 아들 김유(金瀏)는 정유재란 때 운량관(運糧官)으로 공을 세워 교관(敎官)에 증직(贈職)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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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간행된 최승범의 현대시집. 최승범은 1931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호는 고하(古河). 1958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저서로 시집 『후조(候鳥)의 노래』, 『난(蘭) 앞에서』, 『천지에서』 등이 있다. 『계절의 뒤란에서』는 최승범이 1971년도에 지은 시들을 계절별, 항목별로 엮은 후 연말에 간행한 시집이다. 총 5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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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계함(季涵). 문성공 안향(安珦)의 13대손이다. 고조부는 장수현감을 지낸 안처경(安處經)이며 증조부는 장사랑 안창(安瑒)이며 조부는 안광업(安光業)이다. 생부는 진사 안황(安璜), 양부는 진사 안혼(安琿)이다. 생외조는 진사 조대성(趙大成), 양외조는 직장 문창후(文昌後)이며 처부는 사과 유언(柳堰)이다. 아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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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계회(季晦), 호는 유헌(遊軒), 시호는 충간(忠簡). 아버지는 필산감역(匹山監役) 정세명(丁世名)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김수형(金壽亨)의 딸이다. 정황은 1536년(중종 31) 친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를 거쳐 지평·병조정랑·형조정랑 등을 지냈다. 1544년 정랑으로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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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 분포하는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가 낮은 지형 형태. 남원의 지형은 중앙을 경계로 서쪽은 침식분지 형태의 남원~오수·보절 평야와 그 서쪽의 규암산지이다. 동쪽은 고원상 분지인 운봉~아영·인월 고원과 그 남동쪽의 지리산지로 구분이 된다. 이와 같은 분지상의 지형이나 고원상 분지에는 분지벽의 안부를 통하여 외부와 연결되는 주요 고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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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촌리와 내기리를 병합하여 고촌과 내기의 이름을 따서 고기리라 하였다. 고촌리는 마을이 산중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서 유래된 것이며, 내기리는 깊은 산중의 안쪽에 있는 안터마을에서 유래된 한자 표기이다. 내기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정씨와 이씨가 피난와서 정착하여 형성되었고, 고촌마을은 경주이씨, 밀양박씨 등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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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에 있는 수령 310년의 소나무. 높이 16m, 흉고둘레 5.3m, 수관폭 15m, 지하고 2.5m이다. 지상 2.5m 정도에서 두 가지가 남쪽으로 갈라지고, 그 위 1m에서 다시 두 가지로 갈라진다.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무의 원 가지 중 한 가지가 태풍에 부러졌으며, 현재 소나무의 가지는 큰 네 가지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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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에 있는 삼국시대 이전의 야철지. 주천면 고기리 일대에는 출토된 토기나 자기는 거의 없고 다량의 목탄과 고온으로 구워진 흙과 돌이 구릉에 집중 분포하고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고기리 요지는 그릇을 굽던 도요지가 아니고 야철지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 추정된다. 남원 지역에는 현재 운봉읍 공안리, 수철리 요지, 송동면 사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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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면천(沔川). 자는 시경(時慶), 호는 고남(高南).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卜智謙)의 후손이며, 구암(久菴) 복한(卜僩)의 6세손이다. 후손들은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세거하고 있다. 복응길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중봉 조헌(趙憲)의 종사관이 되어 금산으로 달려가서 중봉과 함께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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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과 산동면 경계에 있는 백두대간의 산. 높이는 846.5m이며 가재-수정봉-고남산-여원치로 통하는 백두대간의 맥상에 놓여 있다. 특히 운봉의 북서쪽을 지키는 산으로 운봉분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요천이 흘러내리는 산동과 남원 쪽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산이다. 위치상 옛날부터 전쟁의 요충지가 되었다. 고려 말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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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이곡리에서 운봉의 황산대첩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지발도 이야기」는 이성계의 남원 황산대첩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운봉 일대에는 황산대첩과 관련한 지명이 많이 유래하고 있다. 「아지발도 이야기」는 이성계의 놀라운 활솜씨와 이성계가 영계(靈界)의 도움을 받는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전하는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에 신비성을 가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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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권포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 고남산성은 남원시 운봉면 권포리와 산동면 부절리의 경계에 있는 해발 820m 내외의 고남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은 가파른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서쪽은 산줄기가 계속되면서 정상부에는 동서 방향으로 장방형의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고남산성은 산세가 험한 암벽으로 되어 있고, 이 일대의 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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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용담(龍譚). 자는 은보(殷甫). 현감 고익흥(高益興)의 후손이며, 종사랑 고효륜(高孝倫)의 아들이다. 고득뢰는 기절이 있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한 뒤 감찰(監察)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에는 평창현감(平昌縣監)에 제수되었으나, 완강하게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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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거나 이와 동등한 학력을 가진 자가 진학하는 중등학교. 고등학교의 수업 연한은 3년으로, 중학교 교육의 기초 위에 중견 국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과 자질을 길러 주며, 국가 사회에 대한 바른 이해와 건전한 비판력을 배양하고, 민족적 사명감을 자각할 수 있게 하며, 자신의 개성에 맞는 진로를 결정하게 함으로써 일반적인 교양을 높이고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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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지대가 높고 서늘한 곳. 남원의 고랭지는 대표적으로 운봉읍, 아영면 등의 분지에서 나타난다. 운봉분지는 해발 500m가 넘는 고원이면서 분지로 평지와는 다른 고랭지 환경을 가지고 있다. 운봉분지는 지리산의 융기에 따라 오랜 지질적 시간을 통해 완만한 융기를 받은 지역이다. 여기에 주변부 고산지의 사면퇴적물이 덮여 있어 평탄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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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의 고려 태조부터 왕조 말까지의 역사. 고려시대 남원은 남원부(南原府)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남원부는 고려 건국 초에는 강남도에 소속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는 강남도와 해양도가 합하여 전라도라는 명칭으로 불리면서 남원부 역시 여기에 소속되었다. 남원부는 또 용성(龍城)이라고도 하였다. 남원 지역은 통일신라 이래 5소경(小京)의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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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해발 500~1000m 고지대에서 자생하는 단풍나무과의 활엽수 속에 흐르는 액. 고로쇠나무는 높이 20m까지 자라며 5월에 연한 황록색의 꽃이 핀다. 그 목재는 치밀하고 단단해 잘 갈라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고로쇠 수액은 이 나무의 수액을 말한다. 수액의 채취 시기는 2월 초~3월 말이다. 한 나무에서 두 달 동안 4L정도의 수액이 나오는데 험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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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뱀사골 일대에서 매년 초봄에 개최되는 고로쇠 약수 축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농가에서는 지리산 고산 지대에 형성된 뱀사골, 달궁계곡, 반야봉 등의 고로쇠나무 군락지에서 매년 경칩을 전후하여 약 한 달간 고로쇠 수액을 채취한다. 고로쇠 수액은 위장병, 고혈압, 신경통, 관절염, 산후통증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약수’로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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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리산 일원에서 생육하고 있는 단풍나무과의 나무. 주 분포지는 지리산 뱀사골 일대의 산내면 부운, 와운, 반선, 덕동, 달궁마을과 운봉읍 공안리, 산덕리와 주천면 고기리, 내기리 일대이다. 고로쇠는 해발 500~1,000m 고지대에서 자생하는 단풍나무과의 활엽수이다. 5월에 연한 황록색 꽃이 피는데, 나무가 치밀하고 단단해서 잘 갈라지지 않는다. 고로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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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리산 일원에서 생육하고 있는 단풍나무과의 나무. 주 분포지는 지리산 뱀사골 일대의 산내면 부운, 와운, 반선, 덕동, 달궁마을과 운봉읍 공안리, 산덕리와 주천면 고기리, 내기리 일대이다. 고로쇠는 해발 500~1,000m 고지대에서 자생하는 단풍나무과의 활엽수이다. 5월에 연한 황록색 꽃이 피는데, 나무가 치밀하고 단단해서 잘 갈라지지 않는다. 고로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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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의 남동부에 위치한 시. 동남쪽은 지리산을 경계로 경상남도 하동군, 동쪽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쪽은 전라북도 순창군, 남쪽은 전라남도 구례군과 곡성군, 북쪽은 전라북도 임실군과 장수군에 접한다. 인구는 2009년 말 현재 88,496명, 행정구역은 23개 읍·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5년 1월 1일 남원군과 남원시가 통합되었다. 삼국시대 백제 때에는 고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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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의 옛 이름. 고룡군은 남원의 백제 때 이름이다. 당나라 고종이 소정방(蘇定方)을 시켜 백제를 멸망시킨 후, 유인궤를 검교대방주자사(檢校帶方州刺使)로 삼아 남원에 진을 두고 성을 쌓았다. 그후 신라의 문무왕이 이곳을 차지한 후 685년(신문왕 5) 5소경(五小京) 중의 하나인 남원소경(南原小京)을 설치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는 전주에 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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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과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산. 이름은 섬진강을 거슬러 남원성의 오수정까지 올라오던 배를 묶어 놓았던 고리가 어딘가에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고리봉을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는 전라남도 곡성의 명산인 동악산이 북쪽으로 삿갓봉·두바리봉·문덕봉과 이어지며, 남쪽 가까이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고리봉은 지리산을 가까이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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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홍수 설화와 관련된 지명담. 1979년 7월 31일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서 최래옥이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임인규(남, 19)이다. 옛날 고리봉 주변에 큰 홍수가 났는데 그때 대강면 일대는 물 속에 다 잠겼다. 그래서 고리봉과 광동리에 고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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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전라북도 남원시를 소재로 전해온 문서. 남원에서 전해오는 고문서로는 『박세중가전고문서(朴世重家傳古文書)』로 알려져 있는 밀양박씨 무은공파 종중 소유의 고문서와 조선 중기 충신인 황진(黃進)의 집안에서 대대로 이어온 『무민공황진가전고문서(武愍公黃進家傳古文書)』가 대표적이다. 그밖에 시문 모음집인 『이용화백세영수첩(李容華百歲榮壽帖)』과 『기묘제현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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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중온(仲溫), 호는 고봉(羔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제당 안처순(安處順)이며 아버지는 매담 안창국(安昌國)이다. 안선은 학문을 즐기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뜻이 크고 기개가 있었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같은 고을의 뜻있는 사람과 함께 군사와 군량을 모았다. 이괄의 난이 평정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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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은 옛무덤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용된 무덤을 말한다. 고분은 선사시대부터 돌널이나 나무널만을 사용하는 간단한 구조의 무덤이 축조되어 이후 오랫동안 사용된다. 사회가 분화되고 부장품이 늘어나면서 규모가 큰 덧널이나 돌덧널이 축조되고, 그 안에 다시 널을 안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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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걸립이나 집돌이를 할 때 부르는 액막이 소리. 「고사 소리」는 지역에 따라 「액막이 타령」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정초에 풍물패가 마을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걸립이나 집돌이를 하며 마당밟이를 할 때 부르는 노래로, 무가에서 파생된 곡이다. 풍물패는 걸립을 통해 모은 자금으로 풍물을 구입하거나 마을 공동 기금으로 활용한다. 굿거리장단으로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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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에서 여성들이 산나물을 채취하며 부르는 민요. 「고사리 꺾기 노래」는 여성들이 산에서 주로 고사리를 꺾으면서 신세 한탄조로 부르는 여성민요, 곧 부요이다. 주로 3·3조의 연속으로 이어진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남원지』에 수록된 「고사리 꺾기 노래」는 두 편이다. 한 편은 대산면 수덕리에 사는 노정자(여, 43세)가 불렀고, 또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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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정초에 성주상을 차려 놓고 부르는 민요. 「고사풀이」는 지역에 따라 「선산풀이」라고도 불린다. 「선산풀이」는 조상의 묘소인 선산이 명산의 정기를 타고 자리한 명당이라는 내력을 담은 노랫말에서 유래한다. 정초에 풍물패가 마당밟이나 걸립을 할 때 마루에 성주상을 차려 놓고 고사를 지내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본래 무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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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중구(仲久), 호는 고산(孤山). 별좌(別坐) 허사익(許思益)의 아들이다. 1601년(선조 34) 34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고, 학행으로 천거되어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종묘서봉사(宗廟署奉事), 의영고봉사(義盈庫奉事), 상서원직장(尙書院直長) 등을 역임했다. 1616년(광해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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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 있는 도로. 남원시 금동에 위치한 골목길의 옛 이름으로 작은 도로를 일컫는다. 금동 49-4번지[광한북로 25]에서 금동 197-8번지 사이에 있는 작은 도로이다. 고샘은 남박고샘이라고 하는데, 들떡거리 서쪽 옛터에 있는 우물이다. 이 우물이 있는 길을 말하는데서 유래되었다. 남원의 고샘은 하정동과 검멀 고샘의 두 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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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내동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유적은 비홍재와 곰재를 잇는 산줄기에 위치한다. 성의 북면은 주생면과 대강면의 경계인 비홍치 정상에서 산능선으로 문덕봉을 향하여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다. 비홍산성은 포곡식 산성이며, 적당히 치석한 가공석을 이용하여 성벽의 내·외면을 맞추고 그 안쪽에는 할석을 채웠다. 내탁법으로 쌓아 올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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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사거리. 이전에는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에 있어 고속 사거리라 하였는데 백공산사거리로 바뀌었다. 백공산은 남원의 주산으로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그 힘이 객산인 교룡산보다 약하여 허약한 지세를 보완하기 위해 선원사를 세웠다고 한다. 이 고장에서는 예부터 백공산을 소중히 관리하였으며, 이 지명을 따서 백공산사거리라 부르게 되었다. 남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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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서 정월 대보름에 지역에 따라 동·서로 편을 나누고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 줄놀이는 줄다리기의 방언이다. 고쌈 또는 줄쌈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줄다리기를 하기 전에 벌어지는 전초전인 고쌈과 줄을 가지고 싸운다는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 줄다리기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던 놀이지만 운봉의 줄놀이는 그 규모가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줄놀이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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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옹금 마을에 있었던 서당. 1726년(영조 2)에 남원의 삭녕 최씨 집안에서 그 재실에 서당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진사 최상익(崔祥翼)이 초기의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쳤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상익의 고손자인 최병직(崔秉直)이 1894년(고종 31)의 식년문과에서 차석으로 급제하여 이 서당에서 배출한 인물로는 가장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최병직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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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목기 장인. 김광열의 부친과 그 또래들은 일제강점기 때 인월 산내국민학교를 마친 후 기술중학교 목공과에서 기계식으로 나무를 깎는 기술을 익혔다. 이러한 경험은 깎여진 목기를 칠하는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고, 그 기술은 현재에도 쓰이고 있다. 29살에 부인 정정순과 결혼해서 1남 4녀를 둔 김광열은 최근 대학을 졸업한 외아들 김태훈이 전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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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지대가 높고 서늘한 곳. 남원의 고랭지는 대표적으로 운봉읍, 아영면 등의 분지에서 나타난다. 운봉분지는 해발 500m가 넘는 고원이면서 분지로 평지와는 다른 고랭지 환경을 가지고 있다. 운봉분지는 지리산의 융기에 따라 오랜 지질적 시간을 통해 완만한 융기를 받은 지역이다. 여기에 주변부 고산지의 사면퇴적물이 덮여 있어 평탄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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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산재해 있는 청동기시대 묘제의 하나. 청동기시대의 무덤은 돌로 만든 석관묘, 토기를 구워서 만든 옹관묘, 큰 상석을 이용하여 만든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은 전 세계적으로 한반도에 가장 많으며, 그 중에서도 전라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낮은 산기슭의 끝자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으며, 전방에 농경지가 펼쳐져 있고, 하천이 흐르는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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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 있는 마을 공원.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는 60여 기 정도의 고인돌이 있는데, 대부분 개간과 경지 정리로 훼손되었다. 그중 대강면에 있는 고인돌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사석리에 고인돌 11기가 있다. 2002년 남원문화원에서는 고인돌 유적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공원을 조성하였다. 고인돌 조형물 쌈지공원은 남원문화원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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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청계리에 속하는 행정리. 고인리는 광평리·청계리·의지리와 함께 법정리인 청계리에 속해 있다.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지점에 위치하며, 마을 바로 뒤로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지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3기의 지석묘(支石墓)가 있는데 유구(遺構)에 의하면 갈계리·봉대리와 같은 시기인 청동기시대 이전의 것으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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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청계리 광평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이 위치한 광평마을은 아영초등학교와 중학교 사이에 난 길로 약 500여 m 들어간 곳에 있다. 유적은 고인돌 총 4기이다. 1호 고인돌은 마을 입구에 자리한다. 2호 고인돌은 마을 북서쪽 고재기들에 자리한다. 농로와 거리를 두고 논 안쪽으로 10여 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3호 고인돌도 고재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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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청계리 광평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이 위치한 광평마을은 아영초등학교와 중학교 사이에 난 길로 약 500여 m 들어간 곳에 있다. 유적은 고인돌 총 4기이다. 1호 고인돌은 마을 입구에 자리한다. 2호 고인돌은 마을 북서쪽 고재기들에 자리한다. 농로와 거리를 두고 논 안쪽으로 10여 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3호 고인돌도 고재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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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정리에 속한 월평마을은 마을의 생김새가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달 월(月)자를 따고, 넓은 들 평(坪)자를 써서 월평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신정마을은 산세가 평탄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살기가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 신정이라 하였다. 뒤에 고정이라 고치게 되었는데 그 까닭은 전하지 않는다. 마을에는 원고정덕고방(源高亭德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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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고정 마을에 있었던 서당. 1740년(영조 16)에 소 아무개가 마을 유지들과 함께 서당을 설립하였으며, 소풍장이 훈장을 지냈다고 한다. 고정 마을에 내려오는 설화에 따르면, 이곳에 정착한 정씨(丁氏) 일족이 세 그루의 정자나무를 심고 큰 서당을 설립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뜻을 오래 기억하자는 뜻에서 고정(考亭)이라는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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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의 최초의 국가가 수립되었다가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으로 정립하면서부터 삼국이 형성되기 이전까지의 시기. 한반도 남부에 최초의 국가가 언제 수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청동기가 시작된 것이 기원전 15세기 이전이므로 이때부터 국가가 형성되어 발전하다가 삼한으로 재편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신라(기원전 57), 고구려(기원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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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고죽동 황죽마을에서 고산마을을 잇는 소로. 소로란 주 간선 도로와 보조 간선 도로 이외의 도로로서 접근 기능을 수행하는 도로를 가리킨다. 고죽동(高竹洞)은 고산(高山)마을과 황죽(黃竹)마을이 합쳐진 이름이다. 고산마을은 역사적으로 남원에 전란이 있을 때마다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남원성(南原城)이 함락될 때에도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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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속하는 법정동. 고산마을은 지형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굴속같이 아늑하다고 하여 고산골이라 하였다. 황죽마을은 자연생 대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는데, 무령군 유자광(柳子洸)이 태어나자 대나무가 누렇게 말라 죽었다고 한다. 이것은 유자광이 태어나면서 마을 정기를 다 뽑아 대나무가 누렇게 죽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후로 마을 이름을 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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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 고죽마을에 있는 수령 225년의 느티나무. 높이 11m, 흉고둘레 2.9m, 근원둘레 3.5m, 수관폭 20m, 지하고 2m이다. 지상 2m 정도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고루 갈라져 있으며, 생육이 왕성하다. 나무의 나이는 225년 정도로 추정된다. 두 그루가 있으며, 한 그루는 수관이 왕성하고 다른 하나는 생육상태가 좋지 않다. 주민들이 여름이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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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고죽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의 고분. 유적이 위치한 고죽동은 남원시 중심에서 북동쪽에 있다. 유적은 현재 남원의료원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 위치한다. 지리적 위치는 북위 35°25´35˝, 동경 127°27´30˝이다. 고죽동 유적에서는 여러 시대에 걸치는 유적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유적은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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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고죽동 황죽마을에서 고산마을을 잇는 소로. 소로란 주 간선 도로와 보조 간선 도로 이외의 도로로서 접근 기능을 수행하는 도로를 가리킨다. 고죽동(高竹洞)은 고산(高山)마을과 황죽(黃竹)마을이 합쳐진 이름이다. 고산마을은 역사적으로 남원에 전란이 있을 때마다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남원성(南原城)이 함락될 때에도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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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고정촌이라 했는데, 이곳에 정착한 정씨(丁氏) 일족이 역적의 무리를 제거하고 이 마을을 없애 버린 후 지금의 고정마을로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때 정씨가 터를 잡고 정자나무를 심은 후 큰 서당을 설립하여 그 뜻을 오래 기억하자는 뜻에서 고정이라 하여 지금까지 그대로 부르고 있다. 본래 남원군 수지면 지역으로 고정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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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고평리 고정마을에 있는 수령 430년의 느티나무. 높이 24m, 흉고둘레 5.1m, 수관폭 26m, 지하고 1.7m이다. 지상 2m 정도에서 가지가 갈라지기 시작하여 동으로 15m, 남으로 11m 정도 퍼졌으며, 나무의 나이는 430년 정도로 추정된다. 고려 말에 지금은 폐교된 수지초등학교 자리에 큰 마을이 있었는데 역적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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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물이 흐르는 골짜기. 계곡은 비교적 편평한 평지나 구릉 또는 산의 능선 사이에서 볼 수 있으며 그 위로 보통 하천이 흐른다. 곡 또는 골이라고도 한다. 남원의 계곡은 동부의 산지 계곡과 분지의 곡으로 나눌 수 있다. 크게는 섬진강 지류와 낙동강 지류에 의한 개석곡들이 발달해있다. 동부 변성암지대의 산지의 구조선을 개석해서 흐르는 뱀사골이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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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음력 정월 초여드렛날 지내온 풍속. 음력 초하룻날로부터 여덟 번째 날로 곡일(穀日)이라고도 한다. 농사를 위해 씨앗을 광이나 다락 등에 보관해 두었다가 곡식날이 되면 밖으로 내어서 햇볕을 쪼이기도 하고 씨앗 상태를 점검하기도 한다. 그리고 새해 농사를 위해 농기구를 점검하기도 하고 축사를 보수하기도 한다. 곡식날 씨앗을 비롯하여 농기구와 축사 등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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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물이 흐르는 골짜기. 계곡은 비교적 편평한 평지나 구릉 또는 산의 능선 사이에서 볼 수 있으며 그 위로 보통 하천이 흐른다. 곡 또는 골이라고도 한다. 남원의 계곡은 동부의 산지 계곡과 분지의 곡으로 나눌 수 있다. 크게는 섬진강 지류와 낙동강 지류에 의한 개석곡들이 발달해있다. 동부 변성암지대의 산지의 구조선을 개석해서 흐르는 뱀사골이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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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마을 주민들이 마을에서 모시는 신(神)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 남원 지역에서는 현재 87개 마을에서 당산제가 행해지고 있다. 동제·당제·골맥이·동신제로도 불리는 당산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당산제를 행할 때는 지역에 따라 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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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공거(公擧).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며, 주부(主簿) 방후령(房後齡)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봉해진 현감 방복령(房復齡)이 백부이다. 사촌 동생인 방명달(房明達)은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방명선은 1627년(인조 5) 무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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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국가의 감독 아래 일반 사회의 여러 사람들과 관계있는 일을 처리하는 기관. 공공기관은 국가 행정 기관, 지방 자치 단체, 기타 공공 단체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관으로서 초·중등 교육법 및 고등 교육법, 기타 다른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각급 학교, 「정부투자기본관리법」제2조의 규정에 의한 정부 투자 기관,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된 특수 법인, 공무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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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공자를 시조로 하는 전통적인 사상과 학문을 이르는 말. 유교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이다. 공교(孔敎)·공자교라고도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의 이념으로 삼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정치학으로,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의 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1. 향교와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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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협계(峽溪). 자는 군실(君實), 호는 공북재(拱北齋). 판서(判書) 태응진(太應辰)의 후손이며, 참봉(參奉) 태응천의 아들이다. 태색은 효우가 돈독하고 문학이 뛰어나 칭송을 받았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여 싸움터에 나가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조카 태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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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공실(公實), 호는 국담(菊潭). 청백리로 알려졌던 정명의의 6세손이며 만헌 정염의 손자이다. 정치는 1588년(선조 21)에 지금의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월곡리에서 태어났다. 1627년(이조 5)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였으며, 성균관 사우들이 그를 추종하였다. 163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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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공안리는 해발 1,200m 이상에 위치한 수철(水鐵)·공안(孔顔), 해발 540m 이상에 위치한 유평(柳坪)·용은(龍隱)의 4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는 바래봉, 남쪽에 세걸산, 서쪽에 수정산을 두고 있는 와우형국(臥牛形局)이다. 수철리는 삼한시대부터 쇠를 녹여 솥을 만들던 곳이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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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공안리 수철마을 일대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가마터. 공안리 수철 도요지는 1980년대 후반까지는 민가의 감나무 잡목 속에 있었으며, 야영지가 조성될 계획이었다. 이후 대규모 조림 사업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과정에서 가마와 관련된 그릇 조각편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 가마의 존재를 알고 있어 훼손시키지는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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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공안리에 있는 저수지. 공안저수지는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한 농업용 저수지로 1960년 1월 1일 준공되었다. 사업 시행은 운봉수리조합에서 맡았으며 조사 측량 설계와 공사 감독은 남원농지개량조합에서 맡았다. 1996~1998년 세 차례에 걸쳐 공안저수지 바닥에 있는 모래와 암석을 파내는 준설 작업을 시행하였다. 공안저수지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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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공안리의 세걸산[1,207m]에서 발원하여 주촌천 합류점에 이르는 하천. 공안천은 공안제(저수지) 옆을 지나 수철리·용은동·삼산리를 경유한 다음, 행정교(다리)를 빠져나온다. 그 뒤 주촌천에 물을 더한다. 주촌천은 남천의 상류에 해당하며, 남천은 임천·남강·낙동강으로 이어지는 하천이다. 공안천은 운봉읍 남동부 산지와 구릉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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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공장(工匠)의 손으로 가식 없이 만들어져 서민의 일상생활에 쓰여지는 도구를 만드는 일.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지정 기준 전통 공예 기법으로는 도자 공예((陶瓷工藝), 마미 공예(馬尾工藝), 금속 공예(金屬工藝), 화각 공예(華角工藝), 장신 공예(裝身工藝), 나전 공예(螺鈿工藝), 칠공예(漆工藝), 제지 공예(製紙工藝), 목공예(木工藝), 건축 공예(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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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자연 경관 보존과 시민의 다양한 야외 활동을 목적으로 조성한 공공 녹지. 남원 지역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인 지리산국립공원이 있으며, 시민들의 다양한 휴식 활동을 위해서 도심 지역에 15개의 도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더불어 자투리땅을 이용한 쌈지공원, 혼불문학공원, 흥부소공원 등의 테마공원도 있다. 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남원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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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공자를 시조로 하는 전통적인 사상과 학문을 이르는 말. 유교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이다. 공교(孔敎)·공자교라고도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의 이념으로 삼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정치학으로,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의 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1. 향교와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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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공직(公直). 곤산군 유익정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 유사온(柳思溫)이다. 문무의 재주를 겸비하여 무과에 급제한 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선전관으로서 인조를 호위하여 남한산성으로 갔다. 인조에게 적을 막아낼 여러 가지 계책을 올리어, 난이 끝난 뒤에 벼슬이 포도대장에 이르렀다. 그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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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과립리는 이백면의 중심부에 있으며, 면사무소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모여 있다. 과리마을과 입촌마을로 구성되어 있고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며, 백암천의 근원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과리, 갓바래, 암내, 까막재 등이 있고 메복지, 성떼미, 제비당, 갓바래재, 당굴고개, 여시고개가 있다.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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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에 있는 불상. 조선 정종 때 이곳에 절이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전한다. 이때 불상의 머리 부분과 몸체 대좌 부분이 훼손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근래에 들어와 주변에서 두 조각으로 갈라진 과립리 석불 입상의 몸체를 찾아 세웠다. 과립리 석불 입상은 넓적한 얼굴에 육계가 표현되었고, 머리는 소발(素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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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짝사랑이 실패하자 구렁이로 환생하여 복수하는 이야기. 장소와 시대, 인물에 대한 정보가 명확히 나와 있지 않은 이야기로 과부를 짝사랑한 총각의 복수가 주된 이야기이다. 너무 집요한 사랑은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까지도 앗아 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1979년 8월 2일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에서 최래옥이 채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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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과수를 집약적으로 재배하는 일. 과수원예의 경영특성을 들면 개원비·각종 자재비·시설비 등 자본의 소요가 많고, 집약적인 관리를 하는 데 많은 노력이 들지만 단위면적당 수익이 다른 농작물에 비하여 높다. 또한 과수원예는 국민의 소득이 높을수록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남원의 과수원예는 최근들어 급속한 증가 추세를 보인다. 남원지역 내 주요 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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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자연과학, 응용과학, 공학 및 생산 기술을 일괄해서 논하거나 취급할 때 쓰이는 총칭. 과학과 기술은 밀착되어 있어서 과학은 기술을 진보시키고, 또한 기술이 제기하는 문제는 과학의 발전을 자극하는 상호 작용 때문에 과학기술은 어느 단계에 이르면 가속적으로 발전하게 되며, 이 같은 불가분의 관계 때문에 붙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1. 중소기업기술협력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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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일. 남원은 면적 752.12㎢, 인구 10만 3572명(2001)이다. 동경 127°21′~ 127°26′, 북위 35°22′~35°28′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경상남도 함양군·하동군, 서쪽으로 임실군·순창군, 북쪽으로 장수군, 남쪽으로 전라남도 구례군·곡성군에 접한다. 북동부·동부·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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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궁술을 연마하는 궁도장. 관덕정은 오래 전부터 남원 지역에서 궁도와 신심단련을 권장하고, 우리 민족 고유의 무술인 궁술을 연마해왔던 곳이다. 남원 지역에는 정유재란(1597년)이 끝난 뒤 서기 1700년대 초엽에 이르러 무술 연마와 향사례(鄕射禮)를 갖추는 사정(射亭: 활터)이 장흥방에 2개 정, 만북방에 1개 정이 있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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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에 있는 관덕정(觀德亭)으로 가는 골목길. 관덕정이 정확히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정유재란이 발생한 즈음인 1590년대 말로 추측된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남원에는 무술 연마와 향사례(鄕射禮)의 도장으로 활터가 여러 곳에 설립되었는데 남원부의 남쪽에는 분위정과 한남정이 세워졌으며, 동쪽에는 관덕정이 세워졌으나 퇴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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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15세에 행하던 전통 사회의 성인 의식. 관례는 전통 사회에서 15세 이상 된 남자가 상투를 틀어 갓을 쓰는 의식이다. 여자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계례를 하였다. 옛사람들은 관례를 중요시하여 미혼이라도 관례를 마치면 어엿한 성인으로 대우하였다. 이 같은 관례는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예교(禮敎)와 함께 전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시대에는 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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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쌍교동에 있는 서당. 관서당은 문자 그대로 관(官)의 서당(書堂)이다. 관청에서 운영, 관리하는 옛날 한문서당으로 남원부 관내 농가 하층민, 혹은 하급 관리 자제들이 주로 공부하던 곳이다. 광한루 뒤편에 위치한 서당 건물로 남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서당이다. 남원부에는 관서당이 성동재, 성남재, 운봉 관서당 등 세 곳이었으나 폐철되고 18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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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천태종 소속의 불교 사찰. 1985년 1월 15일 천태종 소속의 불자들이 죽항동 최영식의 주택에 모여 신도회를 결성했고, 1988년 1월 10일 금동에 신도 회관을 건립했다. 남원 지역에서 천태종의 포교가 활발해지자 천태종의 본산인 충북 단양의 구인사에서 스님을 보내 포교에 도움이 되고자 불사를 도와주었다. 그러다 1997년 12월 윤갈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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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 지장전, 관음전, 약사여래불, 산신각, 주좌, 적멸보궁, 불경 고서 등의 건물 및 유물이 있다. 현재의 관음사는 원래 이 지역에 위치해 있던 보현사의 산내 암자로서, 고려 후기에 창건되어 안불암(安佛岩)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누가 안불암을 창건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일제 시대 전까지 불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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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관촌리와 풍촌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남원군 매내면 풍촌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촌리·세동리·풍촌리·상신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관풍리라 하여 사매면에 편입시켰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폐합함에 따라 남원시 사매면 관풍리가 되었다. 계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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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생산물을 가공·생산하거나 광물을 탐사·채광·제련하는 업종. 1. 광업 광업은 광물을 탐사하고 채굴하여 제련 과정을 통해 유용 광물을 선별하는 산업으로, 광업은 농업과 함께 인간 문명 발전의 기간(基幹)을 이루는 2대 산업이다. 광업은 1차 산업인 농업, 수산업에 이어 2차 산업으로 분류하지만 각종 제조업과는 크게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광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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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생암리에 있는 무료 노인 요양 시설. 노인성 질환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노인들에게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아울러 지역 사회의 노인 복지를 위해 설립되었다. 광덕원 건물은 2003년 8월 25일 착공하여 2004년 7월 15일에 준공하였다. 2004년 10월 21일 설치 허가를 받고 같은 해 11월 8일부터 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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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생암리 마을에 있었던 서당. 1920년에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생암리 광암 마을에 사는 장석균이 자신의 가숙에 김병택을 훈장으로 초빙하여 학동을 대상으로 훈학을 실시케 하였다고 전해진다. 장석균은 광암 마을 유지들과 함께 서당을 운영하였다. 당시 제자들이 봄, 가을 연중 2회에 걸쳐 곡성 도림사에 가서 현장 강학을 하기도 하였다.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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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이 관할하는 법정동인 광치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1930년대 남원군에서 제일가는 산림 모범 마을이었다. 마을 앞에 넓고 큰 돌이 있어 마을 이름을 ‘넓은 돌’ 또는 ‘너븐 들’, ‘나븐 들’ 등으로 불렀는데, 마을 이름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광석이 되었다. 광석마을은 고려 충정왕 때인 1350년경 대산면(大山面)으로부터 흥성장씨(興城張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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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광여(匡汝), 호는 송계(松溪). 안숙공 정종보(鄭宗輔)의 14세손이며, 정일화(鄭一華)의 아들이다. 정원세는 1732년(영조 7)에 전라북도 남원군 대강면 평촌리에서 태어났으며, 지기가 굳고 효와 충을 지극히 하였다. 일찍이 모친의 상을 당하여 애통해하는 모습이 도에 지나칠 정도였다. 나라에서 첨의벼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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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광옥(光玉). 고려시대 상호군(上護軍) 정연방의 후손이며, 직장(直長) 정훈의 증손이다. 정희는 힘이 뛰어나게 세었으며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았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남원의 수성장이 되어 군졸을 거느리고 팔량치에 이르러 영장 손명대와 힘을 합쳐 방어책을 마련했다. 앞장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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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기상 관측을 위해 설치된 전주기상지청 산하의 기상 관측 기관. 남원지역기상서비스센터는 신속 정확한 기상 정보를 제공하고, 자연재해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산업 진흥 등 공공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남원은 전북 동부내륙의 분지를 이룬 산악의 영향을 받아 기온의 일교차가 크고, 강수량도 많으며,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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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대사간 진준(陳遵)의 후손이며 참봉 진대수(陳大壽)의 아들이다. 진중회는 효성이 지극하며 강개한 기상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결연히 일어나 의병을 모집하였다. 당시 남원에는 명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군량이 모자라서 곤경에 처해 있음을 알고 군량 100석을 보내어 도왔다. 또한 가동과 전마를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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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고리봉에서 발원하여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을 지나 전라북도와 경상남도 도계에서 좁은 협곡을 통과하여 임천으로 흘러드는 지방2급 하천. 남원 지역의 운봉읍·산내면·아영면·인월면은 낙동강 수계에 속한다. 섬진강과 낙동강 수계의 분수계는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 운봉읍과 장수군 번암면, 남원시 산동면, 이백면, 주천면의 경계가 된다. 특히 남원시 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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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광치동과 용정동에 있는 공업 개발 시설 지역. 농공단지란 1983년에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에 따라 농·어촌 지역에 공업을 유치하여 농촌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하고, 나아가 도시와 농어촌 간의 지역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개발 지역이다. 광치농공단지는 1981년 남원읍이 남원시로 승격된 후, 9년이 지나도록 빈약한 시세와 부존자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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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속하는 법정동. 넓은 돌의 한자어 광(廣)과 마을 뒷산의 고개이름을 딴 율치마을의 치(峙)에서 따온 것이다. 본래 남원군의 왕지전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율치리·광석리·호치리를 병합, 광치리라 하여 왕치면에 편입되었다. 1956년 7월 8일 왕치면이 폐지되면서 남원읍에 편입되었고 1981년 7월 1일 남원읍이 시로 승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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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광치동에 있는 수령 300년의 소나무. 높이는 12m이며, 가슴높이둘레, 3.15m, 수관폭 12m, 지하고 5m, 지상 5m에서 사방으로 가지가 잘 발달 되어 아름다운 모형이다. 수피는 붉은빛을 띤 갈색이나 밑 부분은 검은 갈색이다. 바늘잎은 2개씩 뭉쳐나고 길이 8~9㎝, 너비 1.5㎜로 밑 부분의 비늘은 2년이 지나서 떨어진다. 꽃은 5월에 피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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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조경 건물. 남원 광한루는 조선 전기 명재상 황희의 6대조인 황감평이 고려 때 무인난(武人亂)을 피해 남원에 낙향하여 ‘일재(逸齋)’라고 하는 조그마한 서실(書室)을 지은 데서 비롯했다. 이후 황희(黃喜)가 양녕대군의 폐출 불가를 주장하다가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남원으로 내려왔다. 황희는 1419년(세종 1) 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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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조경 건물. 남원 광한루는 조선 전기 명재상 황희의 6대조인 황감평이 고려 때 무인난(武人亂)을 피해 남원에 낙향하여 ‘일재(逸齋)’라고 하는 조그마한 서실(書室)을 지은 데서 비롯했다. 이후 황희(黃喜)가 양녕대군의 폐출 불가를 주장하다가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남원으로 내려왔다. 황희는 1419년(세종 1) 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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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양성지가 광한루에서 지은 두 편의 한시. 「광한루」는 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문신인 양성지(梁誠之)[1415~1482]가 지은 한시 작품이다. 1791년에 간행된 『눌재집(訥齋集)』권5에 전하는데, 작가가 광한루에 올라가 느낀 감흥을 각각 칠언율시와 칠언절구로 표현하였다. (칠언율시) 良辰持節上高樓 進步方知百尺頭 萬里關河秋正好 一軒風月意難收 聖朝未報宵衣理 故國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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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정원. 광한루원은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이 잘 표현되어 있다. 광한루 전면 동서 양편에 평호(平湖)를 만들어 은하수를 상징하게 하였으며, 못 안에는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는 삼신도(三神島)를 만들어 한 섬에는 대나무를, 또 한 섬에는 백일홍을 심고, 나머지 한 섬에는 연정(蓮亭)을 지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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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정원. 광한루원은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이 잘 표현되어 있다. 광한루 전면 동서 양편에 평호(平湖)를 만들어 은하수를 상징하게 하였으며, 못 안에는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는 삼신도(三神島)를 만들어 한 섬에는 대나무를, 또 한 섬에는 백일홍을 심고, 나머지 한 섬에는 연정(蓮亭)을 지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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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 광한루원(廣寒樓苑) 서문 북단에서 구 남원역까지 연결된 보조 간선 도로. 도시 내 주간선 도로와 소로의 중간에서 도시 교통의 집산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광한루는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 누각이며 보물 제281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한북길은 광한루의 북쪽에 있는 도로로 1996년 7월 국가경쟁력강화 기획단에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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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괴양리는 면소재지로부터 남쪽으로 3.5㎞ 떨어져 있고 보절면의 계룡산 줄기를 타고 내려온 산 아래에 위치하며 개신마을, 양촌마을, 음촌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개양마을과 신촌마을을 합하여 개신마을이라 하며, 마을의 양지 쪽에 위치한다 하여 양촌마을, 마을의 음지쪽에 위치한다 하여 음촌마을이라 불린다. 본래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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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 양촌마을과 개신마을에 있는 원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와 삼국시대의 고분군·유물산포지. 유적은 덕과면 만도리와 접경을 이루는 지역에 위치한다. 유적은 계룡산의 북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이 다시 동쪽으로 뻗어 형성된 한 줄기 능선의 산자락에 자리한다. 유적은 남북 길이 1㎞, 동서 폭 500m의 범위에 모두 5개소에 밀집되어 있다. 이 유적의 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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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 가마터. 괴양리 회산 도요지는 예전에 점곡리라 불리던 지역으로, 계룡산 능선의 경사면에 가마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가마터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 해발 391m 내외인 계룡산의 북쪽 줄기, 회산마을 터 북쪽의 낮은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덕과면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1987년 전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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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 괴양마을에서 음력 7월 15일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괴양리는 양촌마을과 음촌마을, 괴양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괴양리의 역사는 5백 년쯤 되었는데 언제부터 당산제가 행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옛날에는 마을 안에 괴목나무가 세 그루 있다고 하여 삼괴정(三槐亭)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괴양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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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서치리 호인치에서 발원하여 덕과면 만도리 율천 합류점에 이르는 하천. 괴양천은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남단의 호인치(379.7m)~에끼재~갈치로 이어지는 산지의 골짜기 물을 합치면서 시작된다. 상류의 옛 기재천과 복흥천 물을 모아 소류지를 이룬 다음 계속해서 북쪽으로 흘러내리면서 구로천·진기천·잡포천 등 여러 지류의 물을 모은다.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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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괴정(槐亭). 할아버지는 영의정 이준경(李浚慶)이고, 아버지는 직제학 이덕열(李德悅)이다. 인조조에 생원과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중형인 이사영과 이흥발, 유즙, 최온 등 당시의 호남 지도자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과천까지 진군하였다. 그러나 화의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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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 사석마을과 석촌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대부분 순자강의 하안 단구 상에 위치한다. 사석마을 고인돌은 사석마을 모정에 위치한다. 석촌마을 고인돌은 석촌마을 북쪽 끝지점에 위치하며, 730번 지방도의 서쪽 건너편 밭에 자리한다. 1987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사석마을(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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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소재지로부터 국도 24호선에서 군도 8호선 2㎞ 지점 고남산 기슭에 위치하고, 산동면 부절리와 인접한 마을이다. 법정리로서의 권포리는 행정리인 권포리와 가동리로 나뉘어 있다. 가동리라 하여 ‘더할 가(加)’ 자를 쓰게 된 것은 권포리와 장교리(연동) 두 마을 사이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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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산덕리에 있는 조선 전기 운봉현의 남원 유생들을 위해 설립된 국립 중등 교육 기관. 운봉향교는 전국적으로 모든 행정 구역에 설립된 교육 기관 중 하나였다. 남원도호부 운봉현에서 유교 성현, 공자를 비롯한 오성(五聖) 성현과 송조(宋朝) 사현(四賢), 우리나라 18현인(賢人)의 제사를 지내며 운봉현 백성들의 중등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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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향교 건물. 남원향교는1410년(태종 10)에 창건하였다가 1428년(세종 10)에 덕음암 부근으로 옮겼으나, 홍수를 만나 요천이 범람할 때면 유생들이 물을 건너올 수가 없어 통행이 불편하자 1443년(세종 25)에 지금의 자리로 향교를 옮겼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향교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1599년 지방 부호 진사 유인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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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관학 교육기관. 우리나라 각 지방에 관학 교육기관이 설치된 것은 고려 이후이다. 고려는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3경(京) 12목(牧)을 비롯한 군현에 박사와 교수를 파견하여 생도를 교육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향학(鄕學)의 시초이다. 남원 지역에 향교가 들어선 것은 조선 초기인 1410년(태종 10)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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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내의 남원 유생들을 위한 국립 중등 교육 기관. 남원향교는 조선시대 숭유정책에 따라 전국 모든 행정 구역에 설립된 교육 기관 중의 하나로, 공자를 비롯한 4성(四聖 : 안자, 증자, 자사, 맹자)과 송나라 때의 6현(六賢 :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대 18현인에게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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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신정동 삼거리에서 시청로 사이에 있는 도로. 전라북도 남원시 교룡산성을 우회하여 개설된 신설 도로이며, 시청 소재지로부터 북서쪽으로 3㎞ 정도의 근거리이며,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당시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도로이다. 교룡로는 남원의 서남쪽에 있는 교룡산[520m]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곳을 발원지로 하여 도로의 명칭도 교룡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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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곡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성. 남원시의 북쪽 산곡동 교룡산에 소재한다. 남원 교룡산성은 만인의총에서 용정동 방향으로 광주 대구 고속 도로 굴다리를 지나 500m 정도 올라간 지점에 위치한다. 지리적 위치는 북위 35° 25´ 35˝, 동경 127° 21´ 35˝이다. 남원 바로 서북쪽의 밀덕봉과 복덕봉 등이 산세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유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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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곡동에 있는 산성별장(山城別將)의 도장. 승려 처영에게 하사한 구리로 만든 도장이다. 처영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교룡산성의 승병장이 되어 성을 크게 수축(修築)하고 전란에 대비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산성별장(山城別將)임을 증명하는 의미로 이 도장을 새겨 하사하였다. 도장은 산성 내의 선국사 주지들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오다,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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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전통시대의 교육은 주로 향교, 서원, 서당에서 실시되었다. 특히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 재정에 의해 설치 운영된 지방의 중등 교육 기관이다. 향교의 목적은 성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의 유생들에게 유학을 강의하고 아울러 지역 문화의 향상과 유교를 진흥시키기 위함이었다. 남원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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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기관. 조선시대 남원의 교육기관으로 대표적인 것이 향교였다.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재정으로 설치, 운영된 지방의 중등 교육기관으로, 일명 교궁·재궁이라고도 하였다. 남원 지역에는 현재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남원향교와 운봉면에 있는 운봉향교가 있다. 남원향교는 대성전, 동서무, 내삼문,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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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연결하여 인간과 물자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 남원시는 섬진강의 중류에 위치하는 섬진강권의 핵심 도시로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동부 지역 및 경상남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1. 삼국시대 남원은 삼한시대 때 마한과 변한의 접경 지역이었으며, 삼국시대 때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이었다. 따라서 정치적·군사적 요충지로서 주변 지역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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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검사소. 한국교통안전공단 남원자동차검사소는 교통사고의 예방을 위한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교통안전 관리의 효율화를 도모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1년 1월 5일 교통안전진흥공단법 시행령이 공포됨에 따라 1981년 7월 1일 교통안전진흥공단이 설립되었다. 이와 동시에 남원자동차검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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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도로. 구 역전 사거리는 동충동 구 역전 광장 앞 사거리를 말한다. 남원시내 교통의 중심지이었으나 2005년 8월 남원역이 중부 신정동으로 옮긴 결과, 지역 상권도 점차 쇠락하고 있다. 구 남원역 앞을 지나는 왕복 4차선 도로인 충정로는 서문 사거리에서 누른대 삼거리까지의 보조 간선으로, 구 남원역에서 서남 방향은 순창군과 전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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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화정리 꽃정이 마을에 있던 서당. 1775년(영조 51)에 당시 호조좌랑 황종묵이 남원 사동방, 두적동에 서재를 건립하여 이후 1910년까지 많은 학동을 배출하였다. 이명기, 황학현 등이 훈장을 역임하였으며, 인근 5개 마을의 학동들이 이곳 구경재에서 수학했다고 한다. 현재 서재는 전하지 않고 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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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승려. 호는 구곡 또는 소은. 속명은 유씨이다.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는 이색의 「승련사기」에 따르면, 각운은 태고 보우의 법맥을 계승했다. 학덕이 높고 필법이 뛰어났다고 한다. 공민왕으로부터 그의 도행이 숭상을 받았다. 이로 말미암아 공민왕이 「달마절로도강도(達磨折蘆渡江圖)」와 「보현육아백상도(普賢六牙白象圖)」를 직접 그려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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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구암마을은 구등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내의 행정구역인 48방 중 서봉방(捿鳳坊) 지역(지금의 향교동 일대)을 근거지로 한다. ‘구암’은 마을 앞쪽으로 흐르는 축천(丑川)과 어울리는 거북 등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는 일명 ‘구등바위’라고도 하였다. 1700년경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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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 구룡사가 위치한 곳은 구룡폭포의 상류 지역인데 이곳의 물이 깨끗하고 맑아 남원의 유명한 소리꾼들이 와서 물을 마시고 판소리를 공부했다고 한다. 일제 때 명창 송만갑도 이곳에서 득음했다고 한다. 또 이곳은 기운이 영험하여 많은 무당들이 굿을 하였고 도인들이 많아 도인골이라 했다 한다. 옛날에 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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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와 덕치리 사이에 있는 원천천 구룡계곡의 9곡 중 제9곡. 구룡폭포는 교룡담과 함께 용호9곡 중 최상류로 만복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구룡계곡에서 누워 있는 형태의 폭포를 만들었다. 일명 원천폭포라고도 한다. 음력 4월 초파일이면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 군데 폭포에서 한 마리씩 자리를 잡아 노닐다가 다시 승천하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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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 유배된 문신. 황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名宰相)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전후해서 조선 건국이 왕권 정통대업의 원칙에 벗어난다 하여 한때 두문동 깊은 골짜기에서 세상을 비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관문에 발탁되면서 태조·정종·태종·세종에 이르기까지 4대 왕조를 섬겼다. 그는 조선왕조의 확고한 기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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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내인리 바람실 마을에 있는 서당. 1960년에 동복오가 자신의 재실을 서당으로 꾸며 학동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87년까지 많은 학동들을 가르쳤는데, 배출한 제자들은 근 100여 명에 달하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함양사람 오정식 훈장의 공로가 매우 컸다고 전해진다. 구사재 서당은 현재 마을 공동 소유로 관리 및 보존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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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이 형성될 당시만 해도 사람이 드물고 천연의 밀림이 우거진 깊은 골짜기여서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니 마을 사람들은 자연히 산신을 섬기게 되었다. 집집마다 정성을 드리고 매년 마을 공동으로 산신제를 모셔 개를 잡아 호랑이에게 바쳤다 하여 마을 이름을 구식(拘食)이라 하였다. 또 일설에는 호랑이가 먹이로 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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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고인류가 등장한 때부터 약 1만년 전까지에 해당하는 시기로, 뗀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구석기시대는 전기(10만년 전), 중기(10만-3만년 전), 후기(3만-1만년 전)로 구분된다. 남원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유물은 대강면 방산리 방산마을 논 경작지에서 유문암 석기 1점, 송동면 신평리 신기마을 장구천 일대의 구릉에서 석기류, 아영면 갈계리 갈계마을 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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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있는 조선 시대 형식의 억새풀로 이은 초가집. 1895년 박창규가 처음 지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타 1951년 다시 지었다. 원래는 마을 전체가 샛집이었는데 현재는 2채밖에 남아 있지 않다. 다른 한 채는 뼈대만 남아 있으며, 벽체와 창호는 현대식으로 고쳤다. 조선 시대 일반 가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 등으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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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석윤(錫胤), 호는 구암(龜巖). 절도사(節度使) 박대손(朴大遜)의 후손이며, 밀양군(密陽君) 박춘성(朴春成)의 손자이다. 박흥남은 어려서부터 담력이 있고 병서에 통달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 장군을 따라 이치(梨峙) 싸움에 나아가 많은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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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구암마을은 구등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내의 행정구역인 48방 중 서봉방(捿鳳坊) 지역(지금의 향교동 일대)을 근거지로 한다. ‘구암’은 마을 앞쪽으로 흐르는 축천(丑川)과 어울리는 거북 등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는 일명 ‘구등바위’라고도 하였다. 1700년경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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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흥중(興仲), 호는 구일(九一). 직제학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며, 좌승지에 증직된 방덕린(房德驎)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할 때 자원하여 호위하였다. 이듬해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랑(備邊郞)에 제수되었다. 이후 선전청선전관(宣傳廳宣傳官)을 지내고, 훈련원습독(訓練院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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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제천리에 있는 임진왜란 공신 3명의 충신을 모신 사당. 임진왜란 당시 충신이었던 박춘성(朴春成), 박흥남(朴興男), 박연수(朴延壽) 세 사람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삼충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춘성은 조선 중기 내시(內侍)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몽진(蒙塵) 당시 임금의 곁을 떠나지 않고 어가를 호위하였다. 그 공로로 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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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월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신이한 능력을 가진 정자나무 이야기. 1979년 8월 3일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월계리에서 최래옥이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최경섭(남, 60)이다. 언제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정자나무에 얽힌 이야기이다. 어느 해인지 겨울에 걸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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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공실(公實), 호는 국담(菊潭). 청백리로 알려졌던 정명의의 6세손이며 만헌 정염의 손자이다. 정치는 1588년(선조 21)에 지금의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월곡리에서 태어났다. 1627년(이조 5)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였으며, 성균관 사우들이 그를 추종하였다. 163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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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완도에서 충청남도 금산까지 이어지는 일반국도. 전체 연장은 317.026㎞이며 전체 구간 중 익산지방국토관리청 소속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에서 113.8㎞를 관리하고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 소속 무주출장소에서 33.8㎞를 관리한다. 남원 관내 전체 구간은 13㎞로 도계에서 대강면 사석리까지 3.7㎞, 풍산리까지 9.3㎞이며 국도 24호선과 중복된다. 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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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을 지나는 금지면 귀석리와 덕과면 고정리 사이에 있는 도로. 국도 17호선은 전체 구간 중 익산지방국토관리청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에서 45.3㎞를 관리한다. 2006년 건설교통부의 『도로현황조서』에 따르면, 남원시 관내구간은 33.269㎞로 전라남도 도계에서 남원까지 14.619㎞, 남원에서 임실군 군계까지 18.85㎞이다. 현재는 사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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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을 지나는 주천면 배덕리와 산동면 월석리 사이에 있는 도로. 국도 19호선은 전체 구간 중 익산지방국토관리청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에서 48.8㎞를 관리하고 있으며,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 무주출장소에서 43.5㎞를 관리하고 있다. 광치동에 있는 서남대학교 앞의 밤치육교에서 전리남도 순천까지 남원~순천 간 산업도로의 일부가 중복된다. 남원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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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을 지나는 대강면 풍산리와 인월면 성산리 사이에 있는 도로. 국도 24호선은 전체 구간 중 익산지방국토관리청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에서 52.4㎞를 관리한다. 대강면 풍산리에서 국도 13호선, 시장 사거리에서 고죽교차로까지는 국도 17호선, 고죽교차로에서 요천삼거리까지는 국도 19호선과 중복된다. 남원시의 중앙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관통하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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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지방 사무소. 국립공원관리공단의 28개 지방 사무소 중의 하나이다. 넓은 면적의 지리산 국립공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리산을 행정구역상 3개 구역으로 구분하여 지리산 사무소, 지리산 남부사무소, 지리산 북부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을 보호하고 지리산 국립공원 시설의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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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월락동 497[충정로 252]에 있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전북지원 소속의 사무소. 농산물 품질 향상과 공정 거래를 위한 검사를 담당하는 농림부 산하에 있는 기관이다. 남원시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안전성 조사와 품질 인증을 통하여 농산물의 유통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49년 농림부 농산물검사소 전주지소가 발족되었다. 1962년 국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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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에 있는 국립 국악 기관. 국립민속국악원은 오랜 역사 속에서 독창적으로 발전해 온 민속 음악과 무용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1992년 설립된 국가 음악 기관이다. 민속 음악의 활성화로 민속 음악 기반을 조성하고, 민속 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교육을 실시하며, 민속 음악의 체계적인 학문적 정립 및 진흥·보존을 위하여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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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지사. 국민건강보험공단 전국 149개 지사 중의 하나로 남원과 순창, 그리고 임실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국민의 질병과 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 증진에 대하여 보험 급여를 실시하는 등 국민 보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3년 의료보험법이 제정된 이래로 1989년 전 국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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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광주지역본부의 지사. 국민의 질병·부상·노령으로 인한 장애 또는 사망 등으로 소득의 상실 및 중단시에 연금 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7년 9월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설립되었다. 1988년 10명 이상 사업장에 한해서만 국민연금제도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점차 농어촌 지역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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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남원 출신 이계두의 시문집. 이계두(李啓斗)[1882~1939]는 전라북도 남원 출신으로 1882년에 이능간(李凌幹)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자는 덕일(德一), 호는 국사(菊史)이며 본관은 거녕(居寧)이다. 이계두는 성품이 강직하고 고상하였으며 말이 적고 어눌하였다. 술을 즐겼으나 몸가짐은 언제나 반듯하였다. 『국사선생시집(菊史先生詩集)』은 이곤수(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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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설치된 국악중심의 방송 중계 송출 시설. 2001년 3월 2일 서울국악방송국 설립과 함께 6월 1일부터 서울에서 남원 국립민속국악원까지 전용 회선을 깔아 국악 방송을 연계 송출(주파수 95.9MHz)하고 있다. 국악 방송의 가장 큰 의미는 국악의 대중화, 국악 잠재 수요층의 확산 및 민족 음악 자료의 축적과 보급에 있다. 국악FM 남원중계소는 이러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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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국제와이즈멘 한국지구협의회 전북지구 소속의 봉사 단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신앙인들이 상호 존경과 사랑을 바탕으로 함께 일하는 범세계적인 우호 봉사 단체이다. 적극적인 봉사 활동을 통하여 인류를 위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2년 1월 9일 창립하였다. 같은 해 3월 13일 전주 풍년클럽이 스폰서 클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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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주(廣州). 아호(雅號)는 국포(菊圃). 청백리 사간공(思簡公) 안성(安省)의 8세손이다. 안우는 효자 집안의 후손으로 그 또한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었다. 19살 때 부친이 돌아가자 상례(喪禮)에 따라 정성을 다해 장사를 치렀다. 그 뒤 모친이 병환으로 누워 있으면서 별미(別味)를 원하자 지성으로 이를 구해다 주었다.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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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조양(兆陽). 자는 인보(仁甫), 호는 국헌(菊軒). 아버지는 곡성훈도 임사강(林士綱)이며, 어머니는 개성고씨(開城高氏)로 이조참판을 지낸 고순(高淳)의 딸이다. 임옥산(林玉山)은 1451년(문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5년 후 무과에 급제했다. 군기감직장에 재임 중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하여 사직한 뒤에는 어머니의 분뇨를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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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군극(君極). 부원군(府院君) 박언부(朴彦孚)의 후손이며, 참판(參判)에 증직된 박검종(朴檢宗)의 아들이다. 박세중은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용기가 있었으며,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사(僉使)에 이르렀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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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군보(君甫). 판서(判書) 배흥립(裵興立)의 후손이며, 포도대장(捕盜大將) 배시량(裵時亮)의 고손자이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켜 경상남도 함양에 본거지를 두고 남원으로 넘어오려고 하였다. 이 때에 남원의 진장(鎭將) 손명대(孫命大)는 정치(釘峙)를 지키다가 팔량치(八良峙)로 옮겨 적의 공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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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군보(君寶), 호는 모암(慕庵). 문성공 안향(安珦)의 14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진사 안황(安璜)이고 아버지는 처사 안경덕(安敬德)이다. 안진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안황(安璜)에게 유학을 수업하여 아우 안건(安楗)과 함께 『가례(家禮)』·『소학(小學)』·『심경(心經)』·『성리(性理)』 등의 책을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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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협계(峽溪). 자는 군실(君實), 호는 공북재(拱北齋). 판서(判書) 태응진(太應辰)의 후손이며, 참봉(參奉) 태응천의 아들이다. 태색은 효우가 돈독하고 문학이 뛰어나 칭송을 받았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여 싸움터에 나가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조카 태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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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군언(君彦). 참봉(參奉) 장부실의 손자이며, 호군(護軍) 장원상(張原祥)의 아들이다. 1597년(선조 30)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적군이 남원을 포위하자, 군량을 운송해올 길이 사방으로 막히고 말았다. 이때 장덕량은 콩 10섬을 명나라 장군에게 보내어 군마의 먹이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싸움터에 나아간 장덕량은 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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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군익(君翊).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의 아들이다. 황정직은 음직으로 참봉에 제수되었다가, 무과에 급제하여 1606년(선조 39) 수의부위(修義副尉)가 되었다. 1607년(선조 40) 전주병마절제도위(全州兵馬節制都尉), 1608년(선조 41)에 옥구현감(沃溝縣監), 1611년(광해 3) 제주목판관(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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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문신. 양주익(梁周翊)[1722~1802]은 주로 영조와 정조 연간에 활약한 문신이다. 정치의 폐단을 개혁하는 데 관심이 많았으며, 시문에도 능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군한(君翰), 호는 무극(无極). 조부(祖父)는 양우하(梁宇夏)이고, 부친은 생원 양명진(梁命辰)이다. 모친은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1753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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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했던 문신. 정염은 1524년 지금의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월곡리에서 태어났으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그는 당대의 석학 미암(眉岩) 유희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이는 거슬러 올라가면 정암 조광조와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것이다. 성리의 바른 학문을 공부하였고, 규암 송인수와도 교유하였다.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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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권삼득은 판소리사에서 19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전기 8명창에 속하는 판소리 명창이다. 안동권씨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판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집안에서 파문되었다고 한다. 타고난 고운 목으로 「흥보가」를 잘했으며, 설렁제, 덜렁제 혹은 권마성제라고 하는 선율을 개발했는데, 이 선율은 도약 선법을 사용하여 매우 씩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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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소재지로부터 국도 24호선에서 군도 8호선 2㎞ 지점 고남산 기슭에 위치하고, 산동면 부절리와 인접한 마을이다. 법정리로서의 권포리는 행정리인 권포리와 가동리로 나뉘어 있다. 가동리라 하여 ‘더할 가(加)’ 자를 쓰게 된 것은 권포리와 장교리(연동) 두 마을 사이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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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소재지로부터 국도 24호선에서 군도 8호선 2㎞ 지점 고남산 기슭에 위치하고, 산동면 부절리와 인접한 마을이다. 법정리로서의 권포리는 행정리인 권포리와 가동리로 나뉘어 있다. 가동리라 하여 ‘더할 가(加)’ 자를 쓰게 된 것은 권포리와 장교리(연동) 두 마을 사이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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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권포리에 있는 가야의 고분군. 권포리 고분군은 권포 고분군과 가동 고분군으로 구분되며 비교적 넓게 분포되어 있다. 권포 고분군은 권포마을에서 북동쪽으로 350m 정도 떨어진 야트막한 구릉지에 위치한다. 가동 고분군은 가동마을의 서쪽 구릉 말단부에 위치한다. 두 고분군의 거리는 1.3㎞ 정도이다. 이 고분군의 주변에는 이 유적과는 성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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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권포리 본동 마을에 있는 서당. 1910년에 본동 마을에 사는 정송규와 마을 유지들이 정씨 종중의 서재에 서당을 열어 학동들을 훈학하였다. 초대 훈장은 경상도 함양인이었던 정행록이었다. 권포서당은 1930년까지 운영되었으며, 서당은 일제강점기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서당 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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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원시 금지면 하귀리와 석전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임진왜란 후 지금으로부터 약 380여 년 전 이천서씨, 남원윤씨, 고흥유씨가 전라남도 해안 지방에서 왜군의 침입을 피하여 북상하다가 맑고 기름진 옥토를 보고 생활의 터전을 잡기 위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본래 남원군 금안면 하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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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기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도깨비불과 귀신불을 체험한 이야기. 1979년 8월 3일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기리에서 최래옥이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최씨 할머니(여, 81)이다. 옛날에 이야기의 제보자인 최씨 할머니가 일행과 함께 어디를 다녀오던 때의 일이다. 밤이 되어서 덕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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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한응성은 장성한 뒤에는 처가인 순창 귀미(龜尾)로 옮겨 살았다. 호가 귀와(龜窩)인 것은 귀미에서 따온 것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기(景期), 호는 귀와. 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의 고손자이고, 대호군(大護軍) 한축(韓軸)의 아들이다. 한응성은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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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성로(星老), 호는 귀은(歸隱). 사간공 안성의 7세손이며 청백리로 칭송받던 대사간 안팽명의 5세손이고 을사명현 안경우의 현손이며 현감 안극충의 손자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서울이 함락되고 인조가 피난해 있던 남한산성마저 포위당하자 충의로운 선비들이 각처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안철수도 비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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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남원에 은거한 오계종의 시문집. 오계종(吳繼宗)[1407~1459]은 자가 백종(伯宗), 호는 귀은(歸隱)인데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1658년에 한양 명례방(明禮坊)에서 났으나, 1455년 단종(端宗)의 손위 소식을 듣자 마침내 방장산의 북쪽 운봉산 덕지리에 조그만 정자를 짓고 귀은(歸隱)이란 편액을 걸고 지냈다. 『귀은집(歸隱集)』은 오계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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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남원에 은거한 오계종의 시문집. 오계종(吳繼宗)[1407~1459]은 자가 백종(伯宗), 호는 귀은(歸隱)인데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1658년에 한양 명례방(明禮坊)에서 났으나, 1455년 단종(端宗)의 손위 소식을 듣자 마침내 방장산의 북쪽 운봉산 덕지리에 조그만 정자를 짓고 귀은(歸隱)이란 편액을 걸고 지냈다. 『귀은집(歸隱集)』은 오계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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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남원 출신 김규하의 시문집. 김규하(金圭夏)[1740~1821]는 전라북도 남원군 산동면 목동에서 김익복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자는 내협(乃協), 또는 여초(汝初)이고, 호는 귀재(歸齋)이며 본관은 부녕(扶寧)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掌令)을 비롯한 여러 관직을 지냈다. 『귀재유고(歸齋遺稿)』는 족손 김량식의 서문을 붙여 1902년에 처음 석판본으로 간행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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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에 있던 귀정사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 ‘전주한옥마을’ 홈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구연자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에 사는 소정석이다. 산동면 대상리에 백제 무령왕 15년에 세운 만행사라는 절이 있었다. 언제인지는 잘 모르나 이 만행사에 이름 높은 고승이 있어서, 설법을 듣기만 해도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등, 모든 근심걱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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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 귀정사지의 터. 귀정사는 515년(무령왕 15)에 현오국사(玄梧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임금이 이 사찰에서 고승의 설법을 듣고 3일간 머무르고 돌아갔다 해서 귀정사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귀정사(歸政寺)에 대한 기록은 『고도남원의 얼』, 또는 『남원지』에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기술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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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산림이 우거진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전통 주택. 통나무를 ‘井(정)’자 모양으로 귀를 맞추어서 층층이 얹고 틈만 흙으로 메워 지은 집이다. 강원도, 울릉도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나 남원의 지리산 일대에도 있었다. 방틀집·말집 혹은 정한식(井韓式)집이라고도 한다.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는 삼한시대에 이런 귀틀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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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금다리에 있는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 일명 규목나무라고도 하며, 산기슭이나 골짜기 또는 마을 부근의 흙이 깊고 진땅에서 잘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비늘처럼 떨어진다. 피목(皮目)은 옆으로 길어지고, 어린 가지에 잔털이 빽빽이 나 있다. 높이 18m, 가슴높이둘레 4.60m, 수관폭 10m, 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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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발판이 달린 두 줄을 나무에 매고 그 위에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올라가서 줄을 앞뒤로 흔들리게 하면서 노는 놀이. 그네는 주로 마을 입구나 마을 뒤의 정자나무에서 하였다. 줄만 매어 있으면 언제나 할 수 있는 놀이이지만 단오에 가장 대표적으로 하는 놀이다. 그네뛰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혼자 그네를 타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두 사람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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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하정동에 있는 연극 공연 단체. 남원 지역 연극의 활성화와 저변 확대를 위하여 설립하였다. 1985년 12월 이영철, 김지만, 양기운, 배수연 등 몇몇 뜻있는 연극인들이 발기 모임을 열었다. 1986년 1월 남원 지역 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던 17명이 모여 정식 극단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4월 남원 정화극장에서 창단 공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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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에 있는 조계종 소속의 화엄사 말사. 극락암은 남원시 관광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춘향촌 양림 단지 안의 남원랜드 뒤에 자리 잡고 있다. 남원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위치하고 있는 비구니승 암자다. 1957년 9월 미륵전과 요사가 건립되었고, 초대 주지로 명선이 취임했다. 1955년 4월에 대웅전 건립과 동시에 토고약사여래불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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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의 극락암에 있는 석불입상. 극락암 석불입상은 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 소재 극락암 입구 절벽을 배경으로 서있다. 이 석불입상은 통일신라 말, 고려 초의 특징을 보여주는 석불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체보다 머리 부분이 눈에 띄게 큼직한 동형(童形)에 가까운 석불입상이다. 높이 1.77m, 어깨 넓이 60㎝, 머리 길이 55㎝다. 머리가 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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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극지(克智), 호는 하천(下川). 직제학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며, 방덕일(房德馹)의 아들이다. 방처인은 한강(寒崗)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여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천거로 참봉(參奉)과 수령(守令)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에 들어갔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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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남원 출신 이최환의 시문집. 이최환(李最煥)[1775~1815]은 전라북도 남원에서 춘성정 이담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자는 사번(士蕃), 호는 근사재(近思齋)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효성과 우애로 가정을 다스렸으며 학업을 닦는데 독실하였다. 『근사재유고(近思齋遺稿)』는 이유승(李裕承)의 서문과 증손인 이정우(李珵宇)의 발문을 붙여서 1876년에 목판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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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북도 남원시의 역사.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이르는 남원의 역사는 민족사의 고난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땅은 전라도의 남원과 구례, 경상도의 성주와 진주 등인데, 논에 볍씨 한 말을 심어서 최상은 140두를 수확한다.”라는 『택리지(擇里志)』의 기록은 남원이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농업 생산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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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식련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비구니 승려들이 수도하면서 불법에 용맹정진하고 있는 만행산(萬行山)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만행산의 ‘만행(萬行)’은 불자(佛子)가 열심히 수행하고 남을 위하여 선행을 하는 이타적인 보살행(菩薩行)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려 말 목은 이색(李穡)이 지은 『동문선』 제72권의 「승련사기」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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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금다리에 속하는 행정리. 금계리는 보절면 소재지 상신마을에서 남쪽방향 3㎞ 지점에 위치한 농촌마을로 벼농사를 주로 한다. 옥녀봉 밑에 자리한 금계마을은 옥녀가 베를 짜는 옥녀직금(玉女織錦) 형상으로, 마을에 베를 짜는 데 필요한 바디(베틀·가마니틀·방직기 따위에 딸린 기구의 하나)가 있어 바디절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지명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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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일상 생활이나 종교적 의례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기를 꺼리는 말이나 행동. 금기는 일상 생활이나 종교적 의례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접촉이나 언행을 제한하는 관습을 일컫는다. 터부(taboo, tabu)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 금기는 구기(拘忌)라고도 부른다. 보통은 “가리는 일”이나 “금하는 일” 등으로 불리며, 더러는 “지키는 일”, “삼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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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남원노회에 소속된 교회. 금남교회가 위치한 곳을 용전마을이라고 하는데, 남원 평야 지대인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에 남원시가 의도적으로 형성한 마을이었다. 40여 년 전부터 하우스 농사를 시작해서, 딸기와 수박을 비롯한 과일과 채소를 생산하는데, 주민 모두가 열심히 일한 결과 금지면은 현재 남원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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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사묘. 조선 전기 문신인 금남(錦南) 오응(吳凝)이 자신의 할아버지 묘소 근처에 세운 별장이다. 지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오응의 호가 금남이라 금남재(錦南齋)라 불렀다. 오응의 할아버지 오상덕(吳尙德)은 고려 후기의 충신으로 이성계가 역성 혁명을 일으켜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것에 반대하여 두문동에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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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천황봉 산하에 차나무가 마을 앞에 우거졌다 하여 다뫼라 하였고, 만행산 호랑이가 먹이를 찾아 엎드린 형국이어서 호복동이라 했으며, 2개 마을을 합하여 다산이라 하였다. 1600년 경 조선조 중엽 선조 때 나주임씨, 진주소씨가 난을 피하여 방황하다가 천황봉 아래 터가 넓고 땅이 기름진 다산마을에 정착하였다. 그 후 전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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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금다리에 있는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 일명 규목나무라고도 하며, 산기슭이나 골짜기 또는 마을 부근의 흙이 깊고 진땅에서 잘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비늘처럼 떨어진다. 피목(皮目)은 옆으로 길어지고, 어린 가지에 잔털이 빽빽이 나 있다. 높이 18m, 가슴높이둘레 4.60m, 수관폭 10m, 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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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행정동으로서의 금동은 법정동인 조산동(造山洞)·천거동(川渠洞)·금동을 포괄하고 있다. 금동은 전라북도 남원시의 경제와 유통의 중심지인 상업 지역이다. 금동은 예부터 ‘검멀’이라 했는데, 금마을·금말·검머리라고도 했다. ‘말’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멀’이라고도 했다. 검멀은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어에서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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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 있는 남원시청의 하부 행정 기관. 금동 지역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1년 7월 1일 남원읍이 남원시로 승격됨에 따라 기존의 남원읍 금리가 금동으로 개편되었다. 이와 더불어 금동사무소가 설치되었으며 초대 정기홍 동장이 취임하였다. 1998년 9월 22일 천거동이 관할 구역으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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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김익복은 순흥안씨 사재당(思齋堂) 안처순(安處順)의 손자사위가 되어 남원 지역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후손들이 대대로 남원에 세거하여, 지금은 전라북도 남원시 남골[木洞]과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사창(社倉)에 살고 있다. 아들 김유(金瀏)는 정유재란 때 운량관(運糧官)으로 공을 세워 교관(敎官)에 증직(贈職)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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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 있는 도로. 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의 옛 지명이기도 하며, 금동 281-6번지에서 금동 174-1번지[검멀길 17-41]까지의 작은 도로를 말한다. 검멀은 큰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금말·금마을, 혹은 검머리로 불렸다. 검멀길은 금동의 옛 마을 이름이다. 금동은 고려시대 남원부의 남쪽 2리에 위치한 남안향(南安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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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 있는 도로. 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의 옛 지명이기도 하며, 금동 281-6번지에서 금동 174-1번지[검멀길 17-41]까지의 작은 도로를 말한다. 검멀은 큰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금말·금마을, 혹은 검머리로 불렸다. 검멀길은 금동의 옛 마을 이름이다. 금동은 고려시대 남원부의 남쪽 2리에 위치한 남안향(南安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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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양. 자는 옥여(玉汝), 호는 금서. 증조부는 방사량(房士良)이고, 할아버지는 방구성(房九成)이며, 아버지는 방계문이다. 1495년(연산군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19년(중종 14) 효행으로 천거되어 현량과시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정언·수찬 등을 지냈고,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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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강리와 감성리에서 각 한 글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남원군 서봉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강리와 감성리를 병합하여 금성리라 하여 남원읍에 편입 되었다가 그 뒤 1956년 7월 8일 대산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폐합함에 따라 남원시 대산면 금성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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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시의 열녀. 수지방(水旨坊) 서득수(徐得水)의 아내이다. 남편이 큰 풍창을 얻어 사람들에 의해 마을에서 쫓겨나 산골짜기에서 여러 해 동안 막(幕) 가운데서 살았다. 그러는 동안 한번도 남편의 곁을 떠나본 적이 없었고, 지성으로 남편의 병을 구완하였다. 남편이 병으로 죽게 되자 그녀는 자기의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를 입에 넣어주었으나 끝내는 구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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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금융 기관 및 금융 현황. 금융이란 이자를 받고 자금을 융통하여 주는 것으로, 일정 기간을 정하고 앞으로 있을 원금을 상환과 이자 변제를 통해 상대방에게 자금을 이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금융은 약속된 상환 기간의 단기, 장기에 따라 단기 금융과 장기 금융으로 분류되는데, 단기 금융은 주로 운전 자금의 대차를, 장기 금융은 설비 자금의 대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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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었던 금융결제원 산하 어음교환소. 금융결제원은 우리나라 경제의 핵심 인프라인 지급결제 시스템을 구축, 운영하는 지급결제 전문기관이다. 최근 들어 금융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개인 또는 기업, 정부와 같은 경제주체가 현금 이외의 수표·신용카드 등을 사용하거나 계좌 이체를 통해 결제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 때 은행 간 및 경제주체 간 자금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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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지역 금융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 금융 기관은 크게 은행과 은행 이외의 금융 중개 기관 또는 비화폐적 금융 중개 기관이 있다. 중앙 은행이 현금 통화를 공급하는 데 반하여 예금 은행은 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을 흡수하고, 요구불 예금에 관해서는 예금 통화의 창조 기능을 맡고, 저축성 예금에 관해서는 신용 중개 기능을 한다. 비화폐적 금융 중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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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 있는 남원소방서 소속의 지역 안전 센터. 각종 재난·재해로부터 남원시 금지면과 인근 4개면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5년 3월 18일 금지파출소 설치 승인을 받아 같은 해 5월 12일 남원소방서 금지파출소로 개소하였다. 2006년 8월 2일 전라북도 행정 기구 설치 조례 시행 규칙 개정에 따라 금지파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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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서로를 존중하고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어린이, 기본 학습을 바탕으로 문제를 슬기롭게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어린이, 자신과 공동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여 실천하고 개척해 가는 어린이, 강건한 의지로 기초 체력과 소질을 길러 지혜로운 삶을 사는 어린이를 기른다. 1947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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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남서부에 있는 법정면. 1897년(고종 34)에 8도를 13개 도로 개편하면서 방(坊)이 면(面)으로 바뀌었는데, 금지면은 기지방(機池坊)과 금안방(金岸坊) 등 2개 방이 있었던 지역으로, 금안방의 금과 기지방의 지에서 유래하였다. 1897년(고종 34)에 8도를 13개 도로 개편하면서 방이 면으로 바뀌었고, 금안방이 금지면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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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 있는 남원시청의 하부 행정 기관. 금지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기지면의 7개 리와 두동면 일부와 주포면의 제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금지면이라 하였다. 이와 동시에 9개 리로 개편하고, 창산리에 면사무소를 설립하였다. 1919년 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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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택내리에 있는 철도역. 1933년 10월 15일에 역원 배치 간이역인 주생역 관리로 출발하였다. 1980년 10월 2일 보통역으로 승격하였고, 1998년 1월 21일 전라선 개량사업의 일환으로 기존의 부지에 새로운 역사를 준공하고, 금지역으로 부르고 있다. 전라선에 속하며, 현재 운전취급 상황은 여객열차 26회, 화물열차 36회로 운행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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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 금지면 신월리에 있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소속의 교회. 금지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9년 1월 15일 초대 교역자 김남순이 전북 남원시 금지면 상귀리에 금지중앙교회를 설립하였다. 1969년 12월 7일 제10대 교역자 이태윤 전도사가 부임해 왔으며, 1970년에 새 예배당이 건축되었다. 1991년 6월 12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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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학교, 능력 있고 사랑으로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 학생과 학교를 만족스럽게 도와주는 행정, 학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부모가 되도록 하여 자기 일을 스스로 해결할 줄 아는 학생, 인성이 풍부하며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한다. 1952년 1월 7일 금지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1952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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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택내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생활이 바르며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 질서를 존중하고 자율적이며 협동·봉사하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새롭게 생각하며 창조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하며 밝게 생활하는 건강한 어린이를 기른다. 1921년 7월 5일 금지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38년 4월 1일 금지공립심상소학교로 명칭을 바꾸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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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도산리에 있는 저수지. 금풍저수지는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한 농업용 저수지로 1971년 1월 1일 준공되었다. 사업 시행은 남원농지개량조합에서 맡았으며 조사 측량 설계와 공사 감독은 농업기반공사에서 맡았다. 1993~2005년에 걸쳐 수리 시설 개·보수를 시행하였으며 1994년, 1996년, 1997년, 2002년, 2005년 다섯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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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술(景述), 호는 금헌(禁軒), 또는 만휴당(晩休堂). 효령대군 이보(李補)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승지 이혼(李渾)이다. 지금의 임실군 둔남면 둔덕에서 태어났다. 1558년(명종 13)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5년(선조 18)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정랑으로 있었으나 명리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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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자래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침류당은 1843년(헌종 9)에 마을 유지들의 공동 계획에 따라 설립되었다. 당시 훈장은 송고와 문석린이 맡았으며, 인월면 지역의 자제들을 훈육시키면서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현재 침류당의 서실이 보존되어 있다. 침류당의 운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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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기묘제현이 안처순에게 보낸 서신을 묶은 서간첩. 『기묘제현 수첩(己卯諸賢手帖)』은 1517년(중종 12)부터 1531년(중종 26)에 이르는 15년간 동료·붕우 열세 명이 지방관리로 재직하고 있던 안처순(安處順)[1492~1534]에게 보낸 서신을 손자 안응국(安應國)이 묶어서 만든 서간첩이다. 안처순에게 서신을 보낸 이들은 훗날 기묘사화에 휘말려 죽음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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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기묘제현이 안처순에게 보낸 서신을 묶은 서간첩. 『기묘제현 수첩(己卯諸賢手帖)』은 1517년(중종 12)부터 1531년(중종 26)에 이르는 15년간 동료·붕우 열세 명이 지방관리로 재직하고 있던 안처순(安處順)[1492~1534]에게 보낸 서신을 손자 안응국(安應國)이 묶어서 만든 서간첩이다. 안처순에게 서신을 보낸 이들은 훗날 기묘사화에 휘말려 죽음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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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기수(奇叟), 호는 병암(屛巖). 만육(晩六) 최양(崔養)의 후손이며, 교수(敎授) 최경선의 아들이다. 최담령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용장(忠勇將) 김덕령(金德齡)과 함께 일어나 격문(檄文)을 돌려 의병 수천 명을 모았다. 또한 집안의 재산을 털어서 군수 물자를 보급하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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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에 있는 기암대[베틀바위]에 얽힌 이야기. ‘전주한옥마을’ 홈페이지의 백과사전에 있는 이야기로, 구연자는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에 사는 이인호이다. 기암대는 옥녀직금(玉女織錦)이라고도 하고 검도암(劍道岩)이라고도 부르는 바위로, 너비가 약 5m쯤 된다. 이 기암대 밑에는 석굴이 있는데, 30여 명 정도 들어가서 놀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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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위치한 태고종 소속의 불교 사찰.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 남쪽 황산 자락에는 이 고장에서 유명한 ‘베틀 바위’가 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옷감을 짜는 베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베틀 바위는 면이 넓고 평평하여 성인 십여 명이 앉아서 놀 수 있을 정도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바위에 신령이 깃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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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처녀들이 일렬로 길게 서서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몸을 구부려 몸이 기와 모양이 되도록 하여 그 위를 밟고 앞으로 이동하며 노는 집단 놀이. 놀이에 참여하는 20세 미만의 소녀와 처녀들이 일렬로 길게 서서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몸을 구부려 몸이 기와 모양이 되도록 한다. 그러면 맨 뒤의 사람이 앞 사람의 허리에 올라서서 앞으로 걸어가고 맨 앞까지 오면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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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산천신이나 초인간적인 영능에 호소하여 가뭄을 방지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행위. 농경사회의 한 풍습으로 비가오지 않을 때 국민의 공동적 집단행사로서 대개는 남원의 남서부 지역에서 주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미신타파라는 명목으로 많은 마을굿들이 없어지면서 기우제도 저수지나 수리시설, 양수기 등이 보급되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 대강면 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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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순지(順之), 호는 기재(幾齋), 사재당(思齋堂). 그의 증조는 안구(安玖)이며, 조부는 전주부윤(全州府尹) 안지귀(安知歸)이고, 아버지는 전적(典籍) 안기(安璣)이다. 어머니는 조양임씨(兆陽林氏) 능성현령(綾城縣令) 옥산(玉山)의 딸이다. 안처순은 1513년(중종 8)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듬해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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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협계(陜溪), 자는 기팔(起八). 판서(判書) 태응진(太應辰)의 후손이며, 현감(縣監) 태석(太碩)의 아들이다. 태팔회는 천성이 순후하고 용모가 단정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태복련(太福連)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군량도 모아 공주(公州)로 인조를 호가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난이 평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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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기팔(起八), 호는 율촌(栗村). 참판 안양공(安襄公) 한종손(韓終孫)의 후손이며 한범기(韓範箕)의 아들이다. 한동섭은 1728년(영조 4)에 향교의 책임자로 있었다. 이인좌의 반란이 일어나 고개 너머에서 반군들의 세력이 크게 떨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우 한동헌(韓東憲)과 집안의 노비 6명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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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의 기상 상태. 남원은 수리적으로 중위도 온대성 기후대에 위치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겨울에는 한랭 건조한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춥고 건조하며, 여름에는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무더운 날씨를 보인다. 그리고 봄과 가을에는 이동성 고기압과 저기압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맑고 건조한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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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법정리인 길곡리는 왈길리와 심곡리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남원시 대산면 소재지로부터 북쪽으로 1㎞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농촌 마을이다. ‘칡이 많다’ 하여 ‘갈거리’로 불리다가 한자 표기로 ‘왈길’이 되었고, ‘깊은 골짜기가 많다’ 하여 ‘지프실’·‘싶으실’로 불리던 마을이 한자 표기로 ‘심곡’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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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길곡리 왈길마을에 있는 수령 355년의 느티나무. 높이 20m, 흉고둘레 4.30m, 근원둘레 9.23m, 수관폭 20m, 지하고 0.5m이다. 지상 0.5m 정도에서 큰 가지가 네 가지로 갈라져서 사방으로 고루 퍼졌으며, 뿌리부분이 혹처럼 울툭불툭하게 불거저서 보는 사람마다 크게 감탄한다. 나무의 나이는 355년 정도로 추정된다. 조상 대대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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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길부(吉夫), 호는 모정(慕亭). 대제학 양이시(楊以時)의 후손이며 둔재 양사(楊泗)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팽로·양대박 등과 함께 고경명을 찾아가서 창의하였다. 그들은 여러 고을에 격문을 돌리고 담양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고경명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양희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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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사용되는, 인간에게 이로움과 복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말. 길조어는 인간, 물품, 동물, 식물, 토지, 영혼, 미신, 제사 등의 자연 현상과 인간 생활의 모든 형상에 그 토대를 두고 형성, 구전되어 온 말이다. 곧 어떤 행동을 하면 복이 오거나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이라는 내용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남원 지역에서 쓰이는 길조어는 대부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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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동학접주. 김개남은 동학의 태인(전북 정읍) 대접주로서 전봉준 다음 가는 남접의 실력자였다. 동학농민운동 초기인 1894년(고종 31), 태인의 두령인 김낙삼(金洛三)과 김문행(金文行) 등 1,300여 명을 거느리고 남원을 점거하여 전라좌도를 통할하며 전봉준을 능가하는 위세를 떨쳤다. 이때 초토사 홍계훈(洪啓薰)과 타협하여 동학도를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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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숙(惺叔). 고려 때의 판서(判書)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현령(縣令) 김원(金騵)의 아들이다. 김경로는 어릴 때부터 여력이 출중하고 총명하여 열심히 경전을 읽었으나, 중년에 안질로 인하여 학업을 중단하였다. 문무의 실력을 견줄 만했던 황진(黃進)과 같이 1576년(선조 9)에 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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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며, 쌍송당(雙松堂) 김광석(金光奭)의 아들이다. 김경장은 품계가 창신교위(彰信校尉)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고금정에서 임금을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음을 피로써 맹세한 뒤 여러 고을의 의병과 여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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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쌍송당(雙松堂) 김광석(金光奭)의 아들이며, 김경장(金慶長)의 아우이다. 김경적은 창신교위를 지냈는데,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모시고 형 김경장과 의병을 일으켰다. 김경적은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마땅히 죽어야 할 도리가 있다는 것을 맹세하였다. 이어 여러 고을의 의병과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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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굉(子宏), 호는 쌍송당(雙松堂).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8세손이며, 참의(參議) 김위(金偉)의 아들이다. 김광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자라서는 지절이 강개하여 서울의 사우들이 충의의 선비로 존경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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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목기 장인. 김광열의 부친과 그 또래들은 일제강점기 때 인월 산내국민학교를 마친 후 기술중학교 목공과에서 기계식으로 나무를 깎는 기술을 익혔다. 이러한 경험은 깎여진 목기를 칠하는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고, 그 기술은 현재에도 쓰이고 있다. 29살에 부인 정정순과 결혼해서 1남 4녀를 둔 김광열은 최근 대학을 졸업한 외아들 김태훈이 전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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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원. 직제학 김작의 후손이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현감 김사종의 아들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장사 50여 명을 모아 인조가 있는 남한산성으로 가려 하였으나 길이 막혀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후 광교산으로 들어가 전라병사 김준룡과 함께 적병을 맞아 싸워 큰 전공을 세웠으며, 여기에서 호장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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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정(子淨). 수은 김충한(金冲漢)의 후손으로, 퇴한재(退閑齋) 김천로(金天老)의 아들이며, 월호 김집의 아우이다. 김급은 무과에 급제한 후 의금부도사를 거쳐 대구영장으로 옮겼다가 용양위부호군을 지켰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형인 김집과 함께 여산으로 달려가서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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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판소리 명창. 김영운의 호적명은 김기순으로, 명창 김정문의 조카이다. 판소리사에 크게 남은 명창은 아니지만, 김정문 사후 강도근 등장 이전까지의 공백기에 남원국악원에서 남원의 판소리를 지켰다. 김영운은 김정문의 형 김정식의 아들로 뒤늦게 자신의 작은아버지인 김정문으로부터 소리를 배웠다. 김영운은 남원과 운봉에서는 상당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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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 신라 경순왕 때 수은공의 후손이다. 김남중은 효성이 지극하여 병든 부모를 위하여 오줌과 변을 맛보면서 구환하였다. 부모의 병이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부모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상을 당하여 부모의 장사를 치를 때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낮으로 효성을 다하였으며, 이에 감동한 귀신이 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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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정중(正中). 동창공(東窓公) 김준손(金駿孫)의 아들인데 김일손(金馹孫)에게 양자를 갔다. 1498년(연산 4)의 무오사화 때 아버지 김준손을 따라서 큰형과 함께 호남에 귀양을 가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1518년(중종 13) 조광조의 천거로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묘소가 남원군 보절면 진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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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계복(金啓福)이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뛰어나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장으로서 자원하여 싸움터에 나아가 많은 적을 죽였다.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성이 적에게 포위되자 군량 수백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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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백우(百友). 절효재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며, 호군 김업상(金業相)의 아들이다. 김만광은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러 나선 남원부사가 군좌영에 왔을 때 부장에 임명되었다. 남원부사가 경내에 군사를 거느릴 만한 사람이 있냐고 묻자 모두가 김만광을 추대하였다고 한다. 김만광은 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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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도백(度伯), 호는 지족당(知足堂).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낙우당 김촬(金撮)의 아들이다. 김만익은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으며, 성리의 학문을 닦아 세상에서 존경을 받았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적을 치는 것이 자기의 소임이라 생각하고 의병을 일으켜 노비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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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후손이다. 1579년(선조 12)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쳔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청주에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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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심(士心). 정숙공 김양경의 후손이며, 진사 김문세(金文世)의 아들이다. 두 아들 김덕원과 김덕흥은 모두 참봉을 지냈는데, 김덕흥은 뒤에 사헌부지평의 증직이 내려졌다. 1621년(광해군 13) 무과에 급제한 뒤 인조반정 때 수문장이 되었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난을 평정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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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했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화가(和可), 호는 만은(晩隱). 문정공(文靖公) 김자지(金自知)의 후손이며, 김순례(金順禮)의 아들이다. 김벽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34년(중종 29)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천거로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592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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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했던 의병. 김복흥은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군사와 군량을 모아 권율 장군과 명나라 지원군을 도왔다.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경언(景言), 호는 계곡(谿谷). 좌의정 양경공(襄景公) 김승주(金承霔)의 후손이며, 사정(司正) 김익창의 아들이다. 김복흥은 효성이 지극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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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선(繼先). 판서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진사 김백준(金百俊)의 아들이다. 김사종은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사천현감(沙川縣監)으로 있었다.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을 따라 진주성에 들어가서 힘을 다하여 적을 맞아 싸우다가 황진과 함께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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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여류 문인. 남원에서 태어나 살다가 진안으로 이주한 조선 후기의 여류 문인이다. 삼의당 김씨처럼 여염집의 평범한 부인으로 문학 작품을 창작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삼의당 김씨는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같은 사대부가의 여인도 아니고, 황진이나 이매창 같은 기녀도 아니었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여염집 여인으로서 일상생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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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옥(季玉). 판서 김자지(金自知)의 후손이다. 김상덕은 강직하고 지조가 있었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남원부의 천총(千摠) 강민하가 군사를 거느리고 운봉 황산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때 영장(營將) 손명대(孫命大)가 “누가 능히 함양에 있는 적의 괴수 최존서를 포박하겠느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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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범, 호는 대곡. 판도판서 김관(金管)의 후손이다. 노사 기정진의 문하로 유교의 경전 가운데 사서에 능통했다. 스승인 기정진이 그를 ‘김맹자’라고 말하며 칭송했다고 한다.특히 성리 철학에 밝고 문장에 능했다고 한다. 『대곡집』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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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회(汝晦).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예이며, 한림(翰林) 김미(金楣)의 고조손이다. 김성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판관(判官)으로 있었는데, 도탄(桃灘) 변사정(邊士貞)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팔량치(八良峙)에서 적과 대치하여 싸워 많은 적을 베었다. 조정에서는 김성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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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재는 농사일에 종사하는 독실한 천도교인이었다. 1919년 3월 2일 천도교 남원교구장이었던 유태홍으로부터 독립 선언서를 넘겨받아 남원 요소요소에 게시하였다. 유석, 최병현과 함께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 게시판과 사람이 많이 읽을 수 있는 곳에 부착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 해 4월 8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보안법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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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남원 출신의 열녀. 본관은 순흥(順興). 문성공(文成公) 안유(安裕)의 후손이다. 사인(士人) 김세기(金世基)의 아내이다. 가문이 뜻하지 않은 화를 입어 남편이 갑자기 죽자 일가에서는 모두 급히 몸을 피하였다. 그러나 안씨는 홀로 노비들과 함께 예를 다하여 남편의 시신에 염을 하였다. 입관을 하는 날 안씨는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로 맹서의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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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부안. 자는 제옹(濟翁), 호는 명은(明隱). 1734년(영조 10) 남원 진전방(현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에서 김계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민은 과거에 뜻을 버리고 평생 동안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지조와 절개를 가진 그는 평생 동안 우암 송시열을 존경하며 노론적 세계관에서 살다 간 인물이다. 기호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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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김일손(金馹孫)의 후예로, 아버지는 김창봉(金昌鳳), 어머니는 효열부(孝烈婦)로 이름난 밀양박씨이다. 효자|김창봉|효열부|밀양박씨|효자비|밀양박씨효열비|이긍복|박병준|김한곤 일찍부터 효열부로 이름난 홀어머니를 정성을 다하여 모셨는데, 그 뜻을 한 번도 어기는 일이 없었다. 항상 어머니의 잠자리를 보살피고 맛있는 음식을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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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용여(用汝).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다. 김약려는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따라서 사촌 동생 김용려(金用礪)와 함께 행동하지 못하였다. 김약려는 눈물을 흘리며 “은(殷)이 망하니 백이(伯夷)는 수양산에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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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뇌여(賚予).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최락당 김선(金宣)의 아들이다. 김여려는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지들과 함께 의병을 모아서 북으로 올라가 전쟁터로 나갔다. 그러나 도중에 이미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늙도록 세상에 나오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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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의 남원 출신 의병.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장원(長源), 호는 도촌(陶村).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이며,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아들이다. 김연(金沇)[1587~1651]은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조에 폐모사건이 일어나자 문과에 응시하지 않았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형인 재간당 김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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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옻칠 장인. 김영돌은 옻칠을 한 후 연마하거나 광택을 내지 않고 자연미를 살려 마감하는 기술이 뛰어나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목심무문칠기 제작 기법과 기술은 1988년 경상남도 의창군 다호리 목관묘에서 발견된 기원전 1세기경의 목심칠기 유물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행했던 기법이다. 전통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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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판소리 명창. 김영운의 호적명은 김기순으로, 명창 김정문의 조카이다. 판소리사에 크게 남은 명창은 아니지만, 김정문 사후 강도근 등장 이전까지의 공백기에 남원국악원에서 남원의 판소리를 지켰다. 김영운은 김정문의 형 김정식의 아들로 뒤늦게 자신의 작은아버지인 김정문으로부터 소리를 배웠다. 김영운은 남원과 운봉에서는 상당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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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녀. 김오(金墺)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정숙하고 효행이 뛰어났다. 출가 전에 부모의 상을 한꺼번에 당한 김씨는 이를 애통해 했다. 그녀는 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죽만 먹었으며, 엄동의 추위에도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빈소를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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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대여(代汝).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수성재(守性齋) 김정(金定)의 아들이다. 김용려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일찍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으며, 타고난 자질이 강직하고 행의(行誼)가 고매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서 북으로 올라가는데,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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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비연(斐然). 고려 때 시중을 지낸 위열공(威烈公) 김취려(金就礪)의 후손이다. 충경공 김경직(金敬直)의 10세손이며, 봉사(奉事) 김중흥(金重興)의 아들이다. 김욱은 그릇이 넓고 지략이 뛰어나 광해군 때 문음(門蔭)으로 직장(直長)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인목대비 폐비사건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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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이(子以). 개국원훈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며,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다. 완암 김영진(金英振)의 아들이다. 김원건은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늘 고을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오랑캐들이 서울로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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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방(子方).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며, 진사 김원건(金元健)의 아우이다. 김원구는 경서와 사기를 두루 읽어 문예가 일찍부터 뛰어났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집안의 노비를 이끌고 싸움터로 나갔다가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이후 과거 공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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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며, 참판 김성진(金聲振)의 둘째 아들이다. 김원립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준수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1613년(광해군 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 때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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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수(士秀), 호는 화우당(華憂堂).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며, 판서 김인손(金麟孫)의 고손자이고, 충의위 김광보의 아들이다. 김원준은 일찍부터 가정의 가르침을 받아 효성과 충의의 마음이 지극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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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위(士威), 호는 당계(堂溪).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참판 김성진(金聲振)의 아들이다. 김원중은 효성이 지극하고 몸가짐이 간결하며 절의가 있었다. 광해군 때인 1618년(광해군 10)에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사건이 일어나자, 윤리가 무너짐을 슬퍼하고 남원에 은거하였다.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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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기(汝器), 호는 만취정(晩翠亭). 계림군 김균(金稛)의 7세손이고, 선략장군 김귀손(金龜孫)의 손자이며, 현령 김사걸(金士傑)의 아들이다. 김위는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내외의 요직을 거쳐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 형조참의(刑曹叅議)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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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달원(達源).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이며,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아들이다. 김유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587년(선조 20)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계 양대박(梁大樸)의 종사관이 되어 군량을 공급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뒤에 아버지 김익복이 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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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옻칠 장인. 플라스틱 그릇이 한창 성했던 무렵, 목기를 만들던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해 하나둘 떠날 때에도 목기 만드는 일을 자신의 평생 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은 김을생은 이 일을 버리지 않았다. 직접 지리산에 올라가 나무를 져다가 만든 바루를 등에 지고 전국의 사찰을 돌기도 했다. 그때 짊어지고 다녔던 보자기는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어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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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시재(時哉). 밀직사 김귀갑(金貴甲)의 후손이며, 김의택(金義澤)의 아들이다. 김응배는 힘이 세고 담력이 있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사 2,000여 명을 이끌고 웅치(熊峙)의 싸움에 나아가 많은 적병을 죽였는데 그 공으로 사과(司果)에 제수되었다. 1597년(선조 30)의 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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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김이구는 부모를 섬김에 자식의 도리를 극진히 다하였다. 부모의 병이 위독하자 그는 부모의 변을 맛보아 그 증세를 살폈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부모에게 드려서 며칠 동안 목숨을 연명시켰다. 그의 처 충주지씨(忠州池氏)도 시부모를 극진히 섬겨 열녀로 이름이 높았다. 김이구의 효행 사실이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그에게 동몽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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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김익복은 순흥안씨 사재당(思齋堂) 안처순(安處順)의 손자사위가 되어 남원 지역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후손들이 대대로 남원에 세거하여, 지금은 전라북도 남원시 남골[木洞]과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사창(社倉)에 살고 있다. 아들 김유(金瀏)는 정유재란 때 운량관(運糧官)으로 공을 세워 교관(敎官)에 증직(贈職)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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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경(揚卿), 호는 추곡재(楸谷齋). 참찬(參贊) 김충익(金冲益)의 후손이며, 참판(參判)에 증직(贈職)된 김신추(金愼樞)의 아들이다. 김익웅은 어버이를 효로 섬겼고 담력이 있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의 상중인데도 의병을 일으켜 나라와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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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성(汝成), 호는 하간. 제학(提學) 김신민(金新民)의 후손이자 선무량 김영진의 증손이다. 김재백은 어려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문하에 나아가 유학과 예론 등을 공부했으며, 1682년(숙종 8)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스승 송시열이 유배될 때 스승의 무죄를 상소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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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숙(止叔), 호는 수성재(守性齋).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감정(監正) 김취련(金就鍊)의 아들이다. 김정은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았고, 옳지 못한 것을 보면 분함을 참지 못하였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였으며,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시묘를 극진히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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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활동한 동편제 판소리 명창. 김정문은 송만갑의 제자로 동편제 판소리를 이은 사람이다. 김정문은 서편제 판소리를 접하고 난 뒤 동편제 판소리의 남성적인 맛에 서편제 판소리의 아기자기한 여성적 특성을 가미하였다. 이로 인해 김정문의 소리는 대중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찍부터 협률사에 참여하였으며, 상경하여 창극에도 관여하였다. 김정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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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민주 열사. 김주열은 마산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되어 4·19혁명의 영원하고 유일한 상징 인물이 된 열사이다. 김주열은 1944년 10월 7일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재계(金在桂)와 어머니 권찬주(權燦珠) 사이의 둘째 아들이었다. 위로는 누이가 둘 있고 아래로 동생이 있었다. 할아버지 김태종(金泰鐘)은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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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쌍교동의 승사교 사거리에서 금지면 금곡교 사이에 있는 도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고 김주열 열사의 정신을 기리고자 2001년 4월 19일에 김주열로로 도로 이름을 정하게 되었다. 1960년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다 희생된 고 김주열 열사의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4·19혁명 기념일을 맞은 2001년 4월 19일 김 열사의 고향인 남원시 금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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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하정동에 있는 김주열 열사를 추모하고 선양하는 단체. 1999년 남원시와 마산시에서 함께 발족한 순수한 민간 단체였으나 2005년 ‘소통과 화합을 위한 186 김주열 대장정’ 행사를 계기로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로 단일화하였다. 김주열 열사를 비롯한 모든 민족 민주 열사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역사 발전에 이바지 하고, 동서 화합과 국민 통합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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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진경(眞卿), 호는 담암(澹庵), 또는 용암(舂岩).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이고,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손자이며, 재간당(在澗堂) 김화(金澕)의 아들이다. 김지순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서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인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행의(行誼)로 천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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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득상(得祥), 호는 우송(友松). 문정공(文貞公) 김자지(金自知)의 9세손이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승경(金承慶)의 손자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조정에서 내려온 5현(五賢)의 격문을 보고 아우 김진웅(金震雄)·김진용(金震龍)·김진표(金震彪)에게 말하기를 “지금은 바로 몸을 버리고 임금의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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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득운(得運), 호는 명암(明庵). 문정공(文貞公) 김자지(金自知)의 9세손이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승경(金承慶)의 손자이며, 병자호란 의병 김진영(金震英)의 아우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형 김진영을 따라서 의병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가, 의병을 이끌고 수원으로 올라갔다. 수원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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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청(子淸), 호는 월호(月湖). 고려에서 판서를 지낸 수은(樹隱) 김충한(金冲漢)의 후손이며, 장사랑(將仕郞) 퇴한재(退閑齋) 김천로(金天老)의 아들이다. 정유재란 때 순절한 판윤(判尹) 김경로(金敬老)의 조카이기도 하다. 김집은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폄재(砭齋) 최온(崔薀), 해서(海西) 오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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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의 후손이다. 김축은 위풍이 당당하였으며 뜻이 고결하였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금남(錦南) 정충신(鄭忠信)과 함께 전략을 세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여 기틀을 공고히 하였다. 조정에서는 김축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증직(贈職)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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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전라북도 남원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수은(樹隱). 대제학(大提學) 김인경(金仁鏡)의 고손자이다. 본래 경기도 광주(廣州) 사람이나 남원으로 귀양 와서 살게 되었다. 관직은 봉익대부예의판서(奉翊大夫禮議判書)에 이르렀다.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두신리에 신도비와 세거비가 있고, 두남사(杜南祠)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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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김치도는 어릴 때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겼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먹을 것을 주면 자신의 입에 넣지 않고 반드시 부모에게 먼저 드렸다. 부모의 병환이 위중하자 명산과 북극성(北極星)에 기도하며 치유를 갈구하였으며, 상(喪)을 당해서는 예절을 지켜 섭섭함이 없게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청도에서 창의(倡義)하여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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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김해(金海). 휘는 치삼(致三), 자는 일지(一之), 호는 도연정(道淵亭).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김대장(金大壯)이고, 아버지는 김장이다. 1606년(선조 39)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음직으로 참봉에 제수되었다.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여헌 장현광·미수 허목 등 당시 석학들과 동문 수학하여 교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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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부안(扶安). 할아버지는 김수민(金壽民)이고, 아버지는 김복현(金復鉉)이다. 1827년(순조 27) 증광시 병과에 합격하였다.김해부사와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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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 운동가.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에 방극용, 형갑수 등이 주동하여 전개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시위 군중이 헌병 검문소에 도착하여 만세 시위를 벌이자 일제는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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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도원(道源), 호는 재간당(在澗堂).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이고,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아들이다. 김화는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며, 천거로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의병을 이끌고 여산까지 올라갔으나,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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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남원태수를 역임한 귀족.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泰). 태종무열왕의 9세손이며, 왕위를 원성왕(元聖王)에게 빼앗긴 김주원(金周元)의 증손이다. 시중(侍中) 김장여(金璋如)의 아들이며, 김양(金陽)의 사촌형이다. 김흔은 822년(헌덕왕 14) 당나라의 국자감에 가서 수학하고, 1년 뒤 당나라 목종(穆宗)으로부터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시태상경(試太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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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여성들이 밭맬 때 부르는 노동요. 남원 지역에서 불리는 「꽃노래」는 화초 타령류나 여성의 택호와 관련한 꽃노래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부요에 해당하는 ‘밭매는 소리’의 하나이다. 이것은 「꽃노래」를 채록할 당시에 “각씨 때 밭맴서 심심한께로 부른 것이다.”라는 가창자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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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 사석마을과 석촌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대부분 순자강의 하안 단구 상에 위치한다. 사석마을 고인돌은 사석마을 모정에 위치한다. 석촌마을 고인돌은 석촌마을 북쪽 끝지점에 위치하며, 730번 지방도의 서쪽 건너편 밭에 자리한다. 1987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사석마을(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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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있는 논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79년 7월 31일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서 최래옥이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임모상(남, 75세)이다. 대강면에 있는 대강초등학교 옆에 끌떡배미라는 논이 있는데, 한 사람이 눌러도 ‘끌떡끌떡’하고 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