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690 |
---|---|
한자 | 金順萬 |
영어공식명칭 | Kim Sunm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원기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1일 - 김순만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 3·1운동 참여 |
---|---|
추모 시기/일시 | 1999년 - 김순만 진접3·1운동기념비 건립 |
출생지 | 부평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
활동지 | 부평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3·1운동 |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순만(金順萬)[?~?]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29일 밤 부평리 주민 이재일(李載日) 등은 근방에 있는 사찰인 봉선사(奉先寺)의 승려 이순재(李淳載)·강완수(姜完洙)·김성암(金星岩)[후일 김성숙으로 개명]과 경성에서 약종상으로 있던 김석로가 공동 제작·배부한 것으로 추정되는 「주민들이 모여 광릉천 강가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자」라는 격문을 받아 보고는 만세 시위를 추진하고 함께할 인원을 규합하는 등 대책을 논의하였다.
김순만은 이재일·최영갑(崔永甲)·최대봉(崔大奉)·양삼돌(梁三乭)·유희상(柳熙庠)·이흥록(李興錄)·최대복(崔大福)·박석몽(朴石夢) 등과 함께 1919년 3월 31일 광릉천 가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3월 31일 김순만은 이재일 등과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모아 광릉천 모래밭에서 약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 헌병은 시위를 해산시켰고, 만세 시위 주도자 8명을 체포하여 기소하였다. 이 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인물들 중 이재일·양삼돌·이흥록 등은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최대봉·박석몽·유희상·최대복은 태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만세 시위의 주도자 중 한 명인 김순만에 관한 재판 기록 및 수형 기록은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지 않다.
[상훈과 추모]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와 여기에 참여한 김순만 등 여러 인사를 기리기 위하여 경기도 남양주시는 1999년 3·1운동 80주년을 맞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20에 ‘진접3·1운동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진접 3·1운동기념비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진접중학교[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15-1] 정문 안으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