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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336
한자 永中面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관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2년 - 영평군 읍내면·군내면의 일부로 행정구역 정비
변천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영평군 읍내면·군내면을 포천군 영중면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5년 08월 15일연표보기 - 포천군 영중면 일부 지역이 북한 관할로 들어감
변천 시기/일시 1954년 11월 17일연표보기 - 포천군 영중면 행정권 수복
변천 시기/일시 2003년 10월 19일 - 포천군 영중면에서 포천시 영중면으로 개편
영중면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지도보기
성격 행정 구역
면적 61.32㎢[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2,692세대[2016년 6월 30일 기준]
인구[남,여] 5,490명[남 2,951명, 여 2,539명][2016년 6월 30일 기준]

[정의]

경기도 포천시에 속하는 법정면.

[개설]

영중면은 포천시에 소속된 11개 면 가운데 하나로 법정리 6개[양문리·거사리·성동리·영평리·영송리·금주리]를 관할하고 있다. 면 소재지는 양문리이다.

[명칭 유래]

포천군에 병합될 때 영평군의 중앙에 위치한 곳이라고 하여 영(永) 자와 중(中) 자를 따서 영중면이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12년 행정 구역은 영평군 읍내면과 군내면 지역으로 영평 읍내여서 읍내면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읍내면과 군내면을 합병하고 포천군 내북면 만세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포천군 영중면이라 하였다.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38선 이북 지역인 양문리 일부와 성동리 일부 그리고 영평리 전역과 영송리 전역이 북한 치하에 들어갔으나 6·25 전쟁 때 실지(失地)를 회복하여 1954년 11월 17일 행정권이 이양되었다. 2003년 10월 19일 포천군이 도농복합시로 승격하면서 포천시 영중면이 되었다.

[자연 환경]

영중면은 포천시의 북동부에 위치하며 관모봉[583.9m], 금주산[568.1m], 금화봉 등의 산지로 둘러 싸여 있다. 내부로는 한탄강의 지류인 영평천이 흐르며, 영평천 주변으로 농경지가 넓게 발달하여 있다.

[현황]

2014년 12월 31일 기준 영중면의 면적은 61.32㎢로 포천시의 7.4%를 차지한다. 인구는 2016년 6월 30일 현재 총 2,692세대, 5,490명[남 2,951명, 여 2,539명]이다. 국도 37호선국도 43호선영중면 내부를 지나간다. 면의 북동쪽에 풍혈산 유원지가 있으며 남쪽에는 백로주 유원지가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위치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경기도 기념물 제140호로 지정된 포천 영송리 선사 유적이 있으며, 포천시 향토 유적 제30호인 태봉 석조물과 포천시 향토 유적 제28호인 인흥군 묘 및 신도비(仁興君墓및神道碑) 등이 있다. 이밖에도 금주리 태봉 터를 비롯하여 총 19개의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영중면은 군사 시설 보호 구역이 12.3㎢[면 전체 20%]나 될 정도로 군사 요충지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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