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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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自作洞支石墓 |
이칭/별칭 | 자작동 고인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251-2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의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4월 - 자작동 지석묘 포천시 향토 유적 제2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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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9월 - 자작동 지석묘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4월 - 자작동 지석묘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발굴 조사 종료 |
소재지 | 자작동 지석묘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251-4 |
성격 | 고분 |
양식 | 탁자식 고인돌 |
크기(높이 | 덮개돌 427㎝|받침돌 265㎝[동쪽], 220㎝[서쪽], 105㎝[북쪽], 110㎝[남쪽] |
지름) | 덮개돌 55㎝|받침돌 33㎝[동쪽], 31㎝[서쪽], 28㎝[북쪽], 20㎝[남쪽] |
문화재 지정 번호 | 포천시 향토 유적 제2호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위치]
의정부에서 포천읍으로 가는 국도 43호선에 있는 군 헬기장 정문에서 도로 건너편 쪽으로 30~40m 떨어진 지점에 자작동 지석묘(自作洞支石墓)가 있다. 행정 구역으로 포천시 자작동 251-2번지에 속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6년 9월~1998년 4월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를 하였다.
[형태]
보석[지석을 보조하기 위하여 지석 외측 주위에 기대거나 쌓아 둔 돌], 부석[상석 아래, 지석 주위, 때로는 개석 상부에 천석(川石)이나 역석(礰石)을 쌓아 둔 돌]은 설치되지 않았다. 고인돌의 축조 순서를 살펴보면, 먼저 동쪽과 서쪽의 장벽을 세운 후 북쪽의 단벽을 세워 상석을 덮고 묘실에 시신을 안장하여 마지막으로 남쪽 단벽을 밀폐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작동 지석묘는 탁자식 고인돌로 덮개돌과 3개의 받침돌이 있고, 석재는 화강암이다. 덮개돌은 427×347×55㎝이다. 받침돌은 동쪽이 265×144×33㎝, 서쪽이 220×144×31㎝, 북쪽이 105×144×28㎝, 남쪽이 110×85×20㎝이다. 무덤방의 크기는 180×122㎝이고, 높이는 144㎝이다. 남쪽에 있는 받침돌은 일부러 깨뜨린 것이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무덤방은 포천천이 흐르는 방향과 일치하는데, 동쪽으로 30° 정도 틀어져 있다.
지석은 4매가 모두 있으나 남쪽 단벽은 중간이 잘려져 나간 듯하다. 장벽의 규모는 서쪽이 256×144×33㎝이며, 반대편 동쪽 방향은 220×144×31㎝ 화강암 재질의 판석이다. 단벽의 규모는 북쪽이 105×144×28㎝로 장벽 사이에 끼여 있다. 남벽은 110×85×20㎝로 약 15㎝만 지표 위에 올라와 있다.
[현황]
자작동 지석묘 서쪽으로는 왕방산[737.2m]이 있고, 동쪽으로는 넓은 들과 포천천이 흐르고 있다. 1986년 4월 포천시 향토 유적 제2호로 지정되었다. 유적의 보존을 위하여 주변 지역에 대한 정비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