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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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禪庵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산75-29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김동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9년 7월 8일 - 상선암 터 문화재청에서 지표 조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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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9년 7월 27일 - 상선암 터 문화재청에서 지표 조사 종료 |
소재지 | 상선암 터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산75-29(N38°05'14.39"/E127°25'36.80" |
성격 | 절터 |
지정 면적 | 약 11,600㎡[3,509평]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절터.
[개설]
상선암 터에 대한 역사 기록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사상가인 미수(尾叟) 허목(許穆)[1595~1682]의 문집인 『기언(記言)』 권(卷)27 산천(山川)에 실린 기행문 「백운산(白雲山)」에 “상선암은 산중 바위로 이루어진 20리 골짜기 안에 위치하는데 산길이 끝나는 깊은 계곡에 위치한다. 이름(頤凜)이 축조한 절이다. 절 아래 반석에서 쉬었는데 이름의 부도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상선암에 대한 허목의 다른 기록인 『기언별집(記言別集)』 권9 기(記)에 실린 「백운 산수기(白雲山水記)」에는 “백운사에서 동북으로 5리를 올라가면 상선암이 있는데 이 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돌 봉우리들이 둘러싸여 있고 산은 깊고 골짜기는 먼데, 여러 봉우리에 떠 있는 산 빛이 이 산중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라고 상선암에 대한 인상을 남겼다.
상선암이 위치한 포천 백운산 내 대표적인 가람인 흥룡사(興龍寺)와 관련한 1706년(숙종 32)의 기록인 「백운산 내원사 사적(白雲山內院寺史蹟)」에 의하면, 서산 대사의 법맥을 이은 무영(無影) 이름(頤凜) 대사의 제자 지혜(智惠)가 산중에 있는 옛터를 찾아 백 수십 간 규모의 선원(禪院)을 창건[1639]하고 상선암이라 명명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나 그 후 상선암의 정확한 폐사 연대는 나타나 있지 않다.
상선암의 관련 기록과 김문중의 제보를 종합하면, 절 이름과 연혁을 알 수 없는 폐사지에 다시 창건된 상선암은 1639년(인조 17) 무영이 창건하고 지혜 때 번성하였으며, 지혜의 스승인 무영의 부도가 이곳에 봉안되었다. 이후 폐사 연대는 알 수 없으며 부도는 휴전 이후인 1950년대 후반 반출되어 행방을 알 수 없다.
[변천]
6·25 전쟁 이전까지 이곳에 살았던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거주하는 김문중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이 절터에는 12개의 층계로 잘 치석된 3개의 계단과 180㎝ 내외의 정교한 축대가 완전하게 남아 있었고, 밭으로 경작되던 약 300㎡[90.75평] 넓이가 되는 상단 건물 터에는 지름 60㎝ 이상의 원형으로 가공된 주초석(柱礎石)이 일정한 간격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절터 입구에는 복련(伏蓮)의 화려한 팔각 대좌(八角臺座) 위에 2m 크기의 종형(鐘形) 부도 1기가 남아 있었으나, 1950년대 후반 군부대 훈련장이 들어서면서 부도는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고, 절터는 지금의 모습으로 변형되어 아무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위치]
상선암 터는 제3070부대 유격 훈련장 내에 위치한다. 험한 굴곡으로 유격 훈련장 중앙을 관통하는 이동~사창 간 지방도 372호선 서쪽으로 넓은 군 연병장이 위치하는데, 이 연병장이 상선암이 위치하였던 곳이다. 주소지는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산75-29번지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유적 총 면적은 약 1만 1600㎡[3,509평]이다. 현재 상선암 터에서 확인되는 절터 관련 유구(遺構)는 매몰 또는 훼손되어 확인되지 않으며, 연병장 하단부의 폐기된 교란층에서 많은 양의 기와, 도기, 자기 조각이 수습될 뿐이다.
수습되는 유물의 양상은 임진왜란 이전 기와 조각, 생활 유물 등과 함께 상선암의 창건 연대와 동일한 17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들이다. 수습 유물에 대한 분석은 다음과 같다. 기와 조각은 고려 말~조선 초 양식의 암키와와 1639년 상선암의 창건 연대와 동일한 제작 시기인 수키와 조각으로 나뉜다. 암키와 조각은 회흑색 색조에 태토(胎土)와 소성(燒成) 상태는 보통이다.
포흔(布痕)은 조밀하며 어골문(魚骨文)·집선문(集線文)·기하문(幾何文) 등이 새겨졌고, 두께는 1.8㎝ 내외이다. 수키와는 태토와 소성 상태가 모두 거칠고 표면에 많은 석립(石粒)이 관찰된다. 회청색과 회흑색 색조를 띠며, 창해 파문(滄海波文)과 집선문이 관찰된다. 와도(瓦刀)의 면도 매끄럽지 않으며 두께는 2.3㎝ 내외이고, 미구[수키와끼리 물리는 자리]의 길이는 3.3㎝이다. 자기 조각은 임진왜란 이전의 분청사기가 주종을 이룬다. 기종은 접시·완(碗)·소옹(小甕) 등이며, 태토와 소성 상태 모두 거칠고 표면에 많은 석립이 관찰된다. 2009년 7월 8일~7월 27일 상선암 터에 대해 문화재청에서 지표 조사를 시행하였다.
[현황]
현재 상선암 터는 군 훈련장으로 바뀌어 있다.
[의의와 평가]
상선암 터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6·25 전쟁 이전에 원형으로 남아 있던 건물 터의 일부 유구와 유물이 땅속에 매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향후 추가 훼손 방지 대책 마련과 함께 관할 부대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