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8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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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善積寺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17-5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김동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9월 - 선적사 터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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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4월 - 선적사 터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 종료 |
소재지 | 선적사 터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17-5(N38°04'53.1"/E127°25'14.2") (300m) |
출토 유물 소장처 | 납 구슬 - 국립 문화재 연구소[대전광역시 유성구 문지로 132] |
성격 | 절터 |
지정 면적 | 약 3,305.79㎡[1,000평]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절터.
[변천]
선적사 터에 대해서는 기록에 전하는 바가 없어 정확한 절 이름과 유래를 알 수 없다. 그러나 1942년에 조사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에 “전부 경작지화되어 있으며 그 터는 완전히 명확하지 않다. 삼층 석탑 1개가 대체로 완전하다. 그 밖에 기와 파편이 셀 수 없이 흩어져 있고 선적사라고 칭한다”라고 보고되어 있다. 그리고 1977년에 편찬한 『문화 유적 총람』에 “이 사지는 신라 말년에 창건한 선적사지라고 전하여 오지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고, 높이 약 1m인 삼층 석탑이 있으며 주위에 와편이 산재되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의 기록을 볼 때 1942년 당시에는 삼층 석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현재는 옥개석 1기만이 삼층 석탑의 존재를 알려 주고 있다. 선적사는 현존하는 석조물의 양식과 주변에 산재한 유물을 통하여 볼 때 고려 시대 초반에 건립되어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법등을 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선적사 터는 포천시 이동면 백운동에서 광덕현으로 올라가는 도로변 왼쪽 산기슭에 있는 산장 뒤편 경작지에 위치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17-5번지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선적사 터 내에는 석축(石築)과 팔각형 연화 대좌(蓮花臺座) 부재, 대좌 관련 치석재(治石材) 1매, 옥개석(屋蓋石) 등이 있다. 2010년 조사에서 연화 대좌 부재 주변에서 납 구슬 4개를 수습하였다. 주변에 기와 및 자기 조각 등이 산재하고 있으며, 과거 판석(板石) 2매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1996년 9월~1998년 4월 선적사 터에 대해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를 하였다.
[현황]
선적사 터는 남동향으로 밤나무가 심어진 평탄한 지역과 주변 경작지, 건물이 있는 대지와 도로변까지 약 3,305.79㎡[1,000평]의 규모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조선 시대 여러 지리지에도 선적사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어 창건 시기나 운영 종파 및 폐사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없다. 단순 지표 조사를 통해 절터로 규정된 유적으로, 추가적인 발굴 등 정밀 조사를 통해 객관적인 정보를 축적해야 할 것이다. 선적사 터에서 발견된 납 구슬 4점은 현재 국립 문화재 연구소에서 정밀 분석 중인데, 분석 결과는 선적사 터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불교와 쉽게 연결 짓기 힘든 납 구슬이 전국 각지의 절터에서 다량 발굴·발견되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며, 납 구슬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불교적인 접근은 물론 과학적·문헌학적 및 민속학적 연구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