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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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巢鶴里窯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소학1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덕원 |
소재지 | 소학리 가마터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소학 1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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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가마터 |
지정 면적 | 약 991.74㎡[300평] |
[정의]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소학 1리에 있는 조선 전기 가마터.
[개설]
소학리 가마터는 15세기 초부터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까지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 가마터이다.
[변천]
소학리 가마터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봉소리 자기소(峰巢里磁器所)”로 기록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발간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경작지에 자기 조각이 산재되어 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당시까지 가마터의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포천시 내촌면에서 일동면 방향으로 가는 국도 47호선에서 베어스 타운을 지나 동쪽으로 약 800m 떨어진 소학리 사기막 마을의 일명 ‘안사기막’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약 991.74㎡[300평]의 면적에서 많은 백자 조각을 비롯하여 도지미·굽받침·벽재편 등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가마는 2기 이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장축은 동북~남서향의 계단식 오름 가마로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습되는 그릇 종류는 대부분이 대접과 접시류인데, 조선 초기의 굽받침 양식인 공기돌 같은 태토 빚음눈을 받쳐 여러 개를 포개어 상번(常燔)으로 번조하였다. 대접의 동체는 안정감이 있고 구연은 외반되었으며 기면을 매끄럽게 정리하였다. 굽은 해무리굽이며, 그릇 안쪽에는 굽보다 조금 넓은 내저 원각선(內底圓刻線)이 있고, 유약은 얇게 시유(施釉)되어 약간 푸른빛이 도는 백색의 투명 유기이지만 산화 번조로 갈색 유도 소량으로 채집된다.
[현황]
소학리 가마터는 산자락이 끝나는 완만한 비탈에 위치하지만 오래전부터 밭으로 경작되었고, 20여 년 전에 중장비와 대형 농기계로 평탄 작업을 벌여 지금은 가마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소학리 가마터는 수습되는 그릇의 기형(器形)·유약(釉藥)·견치(堅緻)한 번조 기법으로 미루어 주변의 관아와 사찰, 민간에 공급하던 민수용 가마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