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0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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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基安 |
이칭/별칭 | 사안(思安), 안세(安世), 만모(晩慕), 효헌(孝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변은숙 |
출생 시기/일시 | 1695년 - 정기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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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28년 - 정기안 별시 문과 병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767년 - 정기안 사망 |
출생지 | 정기안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
묘소|단소 | 정기안 묘소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온양(溫陽) |
대표 관직 | 지중추부사 |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온양(溫陽). 초명은 사안(思安), 자는 안세(安世), 호는 만모(晩慕). 좌의정을 지낸 정순붕(鄭順朋)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정휘(鄭暉)이고, 할아버지는 정하경(鄭夏卿)이다. 아버지는 정유신(鄭維新), 어머니는 변석징(邊錫徵)의 딸이다. 아들은 정만석(鄭晩錫)이다.
[활동 사항]
정기안(鄭基安)[1695~1767]은 1728년(영조 4)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8년(영조 14) 사헌부 지평, 1741년(영조 17) 사간원 정언이 된 뒤 이후 계속 이 두 직을 번갈아 역임하였다. 1750년(영조 26) 헌납이 되었고, 이듬해 사간원 정언·사헌부 집의를 역임하였다. 1752년(영조 28) 동지사 겸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보덕(補德)을 제수 받았다가 다시 집의가 되었다. 1755년(영조 31) 승정원 승지가 되었으며, 1766년(영조 42) 한성부 우윤·지중추부사를 지내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학문과 저술]
유교와 불교·도교는 물론 천문·의술·음률에까지도 정통하였으며, 문장과 산수화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저서로 1834년(순조 34) 아들 정만석이 편집·간행한 6권 3책의 『만모유고(晩慕遺稿)』가 있다. 권두에 남공철(南公轍)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정만석의 발문이 들어 있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에 있으며, 포천시 향토 유적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1831년(순조 31)에 세워진 묘갈은 김재찬(金裁瓚)이 명(銘)을 짓고 글씨는 이익회(李翊會)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