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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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在抱川墓下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흥모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52년 - 「재포천묘하」 저자 서종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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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19년 - 「재포천묘하」 저자 서종태 사망 |
배경 지역 | 서고(徐固) 묘 -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 산1-14 |
성격 | 한시 |
작가 | 서종태 |
[정의]
조선 후기 서종태가 포천의 선영에서 읊은 칠언 율시의 한시.
[개설]
「재포천묘하(在抱川墓下)」는 조선 후기 문신 만정(晩靜) 서종태(徐宗泰)[1652~1719]가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 산1-14번지에 위치한 선영(先塋)[조상의 무덤]을 찾아가서 신주를 묻고 읊은 한시이다. 「재포천묘하」는 서종태의 문집 『만정당집(晚靜堂集)』 권(卷) 3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재포천묘하」[포천의 선영 아래서]의 제목 밑에는 “수제종행륙대조고참의부군신주매안지례 귀래지감(隨諸宗行六代祖考參議府君神主埋安之禮 歸來志感)”이라는 주석이 있어서, 서종태가 종친들과 함께 포천에 있는 6대조 할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서 신주를 묻고 느낀 바를 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오조수휴성택장(吾祖垂庥盛澤長)[우리 할아버지의 보살핌과 깊은 은택이 오래도록 전해지네]
지금첨피유관상(至今沾被有冠裳)[지금까지도 은혜를 입어 관직이 있도다]
예엄거견행조예(禮嚴遽見行祧瘞)[예를 갑작스레 거행하여 천묘에 신주를 묻었네]
세원나감폐약상(世遠那堪廢禴嘗)[세대가 멀어졌다 하여 계절별 제사를 그친 것을 어찌 참아낼꼬]
삼대구원동울울(三代丘原同鬱鬱)[삼대의 무덤이 하나같이 울창해졌네]
백년의범황양양(百年儀範怳洋洋)[백 년의 예의범절이 불분명해진 것이 크도다]
운잉시일추선감(雲仍是日追先感)[후손들이 이날부터 선조들을 추모하여 은혜를 새겨 두고]
원면승승서업광(願勉承承緖業光)[원하는 바를 힘써 대대로 시작한 업이 빛날지어다]
[특징]
대구[달성] 서씨는 포천을 대표할 만한 세거 성씨로, 서종태의 7대조 서팽소(徐彭召)와 6대조 서고(徐固)[?~1550] 대에 포천 지역에 자리를 잡고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의의와 평가]
「재포천묘하」는 조선 후기 명문가로서 서성(徐渻)[1558~1631]을 비롯하여 이름을 떨친 대구 서씨의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 선영에 대한 기록으로, 대구 서씨 가문과 포천의 친연성을 드러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