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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노농공작위원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04
한자 三陟勞農工作委員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청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3년 7월 24일연표보기 - 삼척노농공작위원회 조직
최초 설립지 삼척노농공작위원회 - 강원도 삼척시 오분동 해안지도보기
성격 사회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삼척 지역에 있었던 농민·노동운동 지도 단체.

[개설]

삼척 지역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의 ‘준비 기관’으로 결성된 삼척노농공작위원회근덕면 사무소 습격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출소한 심부윤이 1933년 7월 24일 변소봉, 정석대, 박래빈, 이상인 등 조직 활동가들과 함께 삼척시 오분동 해안에 모여 결성하였다.

[설립 목적]

삼척청년동맹과 신간회 삼척지회의 주동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삼척 지역의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지도하기 위한 농민조합과 노동조합 결성을 위하여 조직하였다.

[변천]

근덕면 사무소 습격 사건으로 모체인 K회가 붕괴되고 그 뒤를 이은 삼척노농공작위원회도 자금 마련을 위한 추동리 금광 습격 사건으로 명맥이 끊어졌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33년 7월에 조직된 삼척노농공작위원회(三陟勞農工作委員會)는 1931년 10월 말경 김덕환(金德煥), 황운대(黃雲大), 심부윤(沈富潤) 등이 삼척 지역의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지도하기 위하여 결성한 비밀 결사 K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K회는 비서부, 조직연락부, 구원부 등 부서를 두고 삼척 지역 각지에 노동조합 및 농민조합 결성을 추진하였다.

1931년 11월 근덕면 사무소에서 근덕~노곡 간 도로 공사를 위하여 농민들을 부역에 동원하려 하자 K회는 도로 공사 반대 유인물을 요소요소에 붙이고 농민 대표자 대회 개최, 면장과의 담판, 각 마을에 설치한 부역반대투쟁위원회를 농민조합의 기초 조직으로 삼을 것 등을 계획했다.

1931년 11월 30일 심부윤, 이상인(李尙寅) 등은 면장과 담판하여 면장으로부터 부역 취소 등의 약속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경찰에 의하여 군중이 강제 해산되고 주모자 심부윤, 이상인 등 30여 명이 검거되면서 습격 사건은 실패로 돌아갔다. 핵심 인물인 심부윤과 이상인은 각각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중심 활동가인 김덕환은 주문진으로 피신하면서 K회는 무너졌다.

그러나 1933년 3월에 형기를 마친 심부윤이 출소하면서 다시 삼척 지역의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이끌어 갈 새로운 비밀 결사인 삼척노농공작위원회를 결성하여 활동을 하게 된다.

삼척노농공작위원회근덕면 사무소 습격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출소한 심부윤이 1933년 7월 24일 변소봉(卞小鳳), 정석대(鄭錫大), 박래빈(朴來賓), 이상인 등 왕년의 조직 활동가들과 함께 삼척시 오분동 해안에 모여 결성하였다.

삼척 지역의 노동조합과 농민조합 ‘준비 기관’으로 결성된 삼척노농공작위원회는 중앙부 책임 심부윤, 근덕면 책임 이상인, 북삼면 책임 박래빈, 삼척면 책임 정석대, 정라항을 중심으로 한 온유(鰮油) 노동조합 조직 책임 변소봉 등으로 부서를 정하였다. 이때 전 삼척 노동자·농민 적화와 이들의 정치·경제 해방 및 공산 제도 건설을 내용으로 하는 운동 강령도 제정하였다.

삼척노농공작위원회는 이어서 조직 부서로 노동부와 농민부를 설치하고 농민조합 및 노동조합 조직에 주력했다.

먼저 삼척군 내 농업 중심지인 북삼면에는 박래빈의 주도 아래 북삼면 적색농민조합 준비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리(里)마다 적농 조직을 만들어서 1933년 10월 마침내 주운농민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삼척군 내 노동 중심지인 근덕면 덕산리에는 노동조합을 조직하고자 활동하기도 했다. 1933년 11월 16일 지도급 인물인 심부윤 외 4명이 체포되면서 일대 타격을 받았지만 변소봉과 김덕환이 다시 활동을 하면서 1933년 12월에는 산업별 적색노동조합 조직지도위원회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적색농민조합·노동조합 조직 활동 외에 기관지를 발행하고자 했고, 각종 기념일 투쟁을 통해 대중에 대한 선전·선동을 시도했다.

이와 함께 삼척노농공작위원회는 활동 자금 조달을 위하여 1933년 11월 1일 삼척군 하장면 추동리(楸洞里)의 금광사무소를 습격, 시가 2270원에 해당하는 금괴 283문 6푼과 현금 53원을 강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가담한 조직원들은 곧 체포되었고, 11월 18일 조직 책임자인 심부윤마저 검거됨으로서 조직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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