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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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濟州高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윤희 |
입향 시기/일시 | 1500년대 후반 - 고여우 입향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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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제주고씨 본관 - 제주특별자치시 서귀포시 |
입향지 | 제주고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
세거|집성지 | 제주고씨 집성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
묘소|세장지 | 고여우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 산109-1 |
성씨 시조 | 고을나 |
입향 시조 | 고여우 |
[정의]
고을나를 시조로 하고 고여우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고을나(高乙那)를 시조(始祖)로 하고 고여우(高汝雨)를 입향조로 하는 제주고씨 문충공파(文忠公派)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에 정착한 이래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제주고씨는 탐라(耽羅) 개국 설화에 나오는 고을나를 시조로 한다. 시조의 46세손 고말로(高末老)는 고려에 입조하여 성주 칭호를 받아 탐라국을 다스렸다.
이후 후손들이 고말로를 중시조로 하고 제주를 관향(貫鄕)[시조가 난 곳]으로 삼고 있다.
[입향 경위]
전의면 다방리 제주고씨 입향조 고여우는 문충공파 13세손이다. 선대는 제주도에서 전라도로 옮겨 와 살다가 고여우에 이르러 전의 지역에 정착하였다 한다. 하지만 1995년 고여우의 묘를 이장하던 중 출토된 유물을 통하여 고여우는 서울에서 살다가 호서 지역으로 내려온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다방리에는 피란처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고여우는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전라수군절도사(全羅水軍節度使) 등을 지냈다.
[현황]
전의면 다방리의 제주고씨는 1988년에는 20가구, 1997년에는 35가구 107명으로 확인된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의 제주고씨는 1985년에는 188가구 780명, 2000년에는 167가구 550명이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의 제주고씨는 1,297명으로 남자 667명, 여자 630명이다.
[관련 유적]
전의면 다방리 입향조 고여우의 묘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에 있다. 1995년 3월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가송리에 있던 고여우와 배위(配位)[남편과 아내가 다 죽었을 때에 그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 단양우씨(丹陽禹氏), 아들 고경행(高擎行)의 묘를 이장하던 중 복식(服飾)·만사(輓詞)[죽은 이를 슬퍼하여 비단이나 종이에 적은 글]·명기(明器)[장사 지낼 때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작은 그릇, 악기, 생활용구 등]·토기(土器)·한지(韓紙)·삽(翣)[부채] 등이 80여 점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