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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조선 시대]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316
한자 星州郡朝鮮時代
영어공식명칭 Seongjugun(Joseon period)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행 시기/일시 1895년 5월 26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목에서 성주군으로 변경
개정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성주군 12면으로 개편
개정 시기/일시 1934년 2월 1일 - 성주군 10면 111동으로 개편
개정 시기/일시 1975년 5월 1일 - 성주군 성주면이 성주읍으로 승격, 1읍 9개면 111동으로 개편
개정 시기/일시 1988년 5월 - 성주군 각 동을 리로 개편
관할 지역 성주군 - 경상북도 성주군

[정의]

1895년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개설]

경상북도 성주는 고려 시대인 1308년(충렬왕 34) 성주라는 지명을 처음 사용하면서 성주목(星州牧)이 되었다가, 2년만인 1310년(충선왕 2)에 이전의 경산부(京山府)로 환원되었다. 조선 시대인 1401년(태종 1)에 다시 성주목이 되면서 가리현(加利縣)·팔거현(八莒縣)·화원현(花園縣)을 속현(屬縣)으로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역모 사건이 몇 차례 발생하여 성주목의 행정 구역명을 변경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후로 1895년(고종 32) 칙령 제98호로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성주군이라 개칭하였다.

예로부터 유향(儒鄕)으로 잘 알려진 곳이고, 일찍이 회연서원(檜淵書院)[경상북도 유형 문화재]을 거점으로 조선 중기 이름난 선비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와 그 문도들이 활동하였다. 조선 후기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를 중심으로 큰선비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1818~1866]과 그를 이은 선비들이 활동했으며, 초전면 고산리를 중심으로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1815~1900]와 그 제자들이 활동했던 곳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성산 이씨(星山李氏), 초전면야성 송씨(冶城宋氏), 벽진면의 성산 여씨(星山呂氏), 대가면의성 김씨(義城金氏)청주 정씨(淸州鄭氏) 등 사족(士族)이라 일컬어지는 양반 가문들이 반촌(班村)을 형성하고 활동한 지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895년(고종 32) 5월 26일 반포된 칙령 제98호 「지방 제도 개정에 관한 건」에 따라 기존 8도 체제를 23부 체제로 개편하고, 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을 부와 군으로 이원화하면서 전국이 23부 337군 체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성주군은 대구부 성주군으로 편제되었다.

[관련 기록]

칙령(勅令) 제98호(第98號) 「지방 제도 개정(地方制度改正)에 관(關)한 건(件)」 고종(高宗) 32년, 을미(乙未)[1895년, 청덕종광서(淸德宗光緖) 21년, 일본(日本) 명치(明治) 28년] 5월(月) 26일(日) 병인(丙申)

칙령(勅令) 제98호(第98號) 「지방 제도 개정(地方制度改正)에 관(關)한 건(件)」을 재가(裁可)하여 반포(頒布)하였는데 그 내용(內容)은 다음과 같다.

1. 전국(全國)을 나누어 23개소(個所)의 행정 구획(行政區劃)으로 하여 좌개(左開)하는 각부(各府)를 설치(設置)함. 한성부(漢城府) 인천부(仁川府) 충주부(忠州府) 홍주부(洪州府) 공주부(公州府) 전주부(全州府) 남원부(南原府) 나주부(羅州府) 제주부(濟州府) 진주부(晋州府) 동래부(東萊府) 대구부(大邱府) 안동부(安東府) 강릉부(江陵府) 춘천부(春川府) 개성부(開城府) 해주부(海州府) 평양부(平壤府) 의주부(義州府) 강계부(江界府) 함흥부(咸興府) 갑산부(甲山府) 경성부(鏡城府).

2. 전조(前條) 외(外)에는 종래(從來)의 목·부·군·현(牧·府·郡·縣)의 명칭(名稱) 및 부윤·목사·부사·군수·서윤·판관·현령·현감(府尹·牧使·府使·郡守·庶尹·判官·縣令·縣監)의 관명(官名)을 모두 폐지(廢止)하고 읍(邑)의 명칭(名稱)을 군(郡)이라 하여 읍(邑)의 장관(長官)의 관명(官名)을 군수(郡守)라 함.

3. 각부(各府)의 관할 구역(管轄區域)은 좌(左)와 같음. 중략. 대구부(大邱府) 대구군(大邱郡) 경산군(慶山郡) 칠곡군(漆谷郡) 인동군(仁同郡) 성주군(星州郡) 지례군(知禮郡) 고령군(高靈郡) 선산군(善山郡) 개령군(開寧郡) 금산군(金山郡) 의성군(義城郡) 의흥군(義興郡) 군위군(軍威郡) 비안군(比安郡) 밀양군(密陽郡) 청도군(淸道郡) 영천군(永川郡) 자인군(慈仁郡) 신녕군(新寧郡) 하양군(河陽郡) 창녕군(昌寧郡) 영산군(靈山郡) 현풍군(玄風郡).

[내용]

1895년의 칙령에 따라 성주군은 23개 부 가운데 대구부 관할의 군으로 편제되었다. 대구부에는 대구군, 경산군, 칠곡군, 인동군, 지례군, 고령군, 선산군, 개령군, 금산군, 의성군, 의흥군, 군위군, 비안군, 밀양군, 청도군, 영천군, 자인군, 신녕군, 하양군, 창녕군, 영산군, 현풍군과 성주군이 더불어 하나의 군으로 편제되었다. 현재 성주군은 경상북도 남서쪽에 있고, 북쪽으로는 김천시와 칠곡군, 동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서쪽으로는 경상남도 거창군, 남쪽으로는 고령군 및 경상남도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형은 가야산(伽倻山), 수도산(修道山), 금오산(金烏山) 줄기 아래 대체로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서북쪽은 낙동강 지류가 형성한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행정 구역은 1개읍 9개면 111개리로 편성되어 있다.

[변천]

1905년 3월 행정 구역의 일부 개편을 거쳐, 일제 강점기인 1914년 4월 1일 군 통폐합 때 신곡면(薪谷面)을 김천에, 김천의 증산면(甑山面) 고방리를 성주군 금수면(金水面)에 이속시켜 12개 면으로 조정하였다. 이때 행정 중심지는 성주면 경산동(京山洞)이었다. 1934년 2월 1일 지사면(志士面)과 청파면(靑坡面)을 통합하여 수륜면(修倫面)으로, 용두면(龍頭面)과 성암면(聖巖面)을 통합하여 용암면(龍巖面)으로 개편함으로써 10개 면 111개 동이 되었다. 1975년 5월 1일 성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1개 읍 9개 면 111개 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각 동(洞)을 리(里)로 개명했고, 1989년 1월 용암면 명포리(明浦里)·장학리(壯學里)선남면(船南面)에 편입되고 월항면(月恒面) 어산리(漁山里)초전면(草田面)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성주는 경상북도 서남단에 있는 작은 군(郡)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일찍부터 성주목이라는 큰 고을로 주목받았다. 뿐만 아니라 성주는 유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구, 이진상, 장복추, 송준필(宋浚弼) 등과 같은 큰선비들이 나오고 그 문도들이 크게 활동했던 고을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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