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문성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264
한자 文成海
영어음역 Mun Seonghae
이칭/별칭 달원(達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0연표보기 - 문성해 생
활동 시기/일시 1588년연표보기 - 생원시 합격
몰년 시기/일시 1592년 이후연표보기 - 임진왜란 중 전사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75년연표보기 - 서산향교 이건에 참여
성격 충신
성별
본관 홍주

[정의]

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충신.

[가계]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달원(達源). 아버지는 성균생원(成均生員) 문응벽(文應璧)이다.

[활동 사항]

문성해(文成海)[1540~?]는 1575년(선조 8) 서산의 유생들과 함께 서산향교 이건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1588년(선조 21) 49세의 늦은 나이에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 57위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 공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서울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학문과 저술]

다음은 문성해와 관련하여 조선 후기 서산의 사찬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수록된 내용이다. “아! 생원만 하여도 만족한데 또 임진년에 무과까지 급제했다가 바로 서울에서 전사하였으니 애석한 일이다. 선비가 천지 사이에 태어나서 부귀를 누리는 것도 운명이고 가난과 미천도 역시 운명이기 때문에 아는 자와 부자와 귀함에 있어서도 부귀에 음란하지 않고 보기를 담담한 듯하며 가난과 미천에 살면서도 빈천에서 옮기지 않고 안정하여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것같이 하는데 운명을 알지 못하는 자는 이와 반대이니 문성해가 그런 사람이라 하겠다. 문성해가 하나의 유생으로 10년을 형설 밑에서 채소와 지게미로 겨우 보충하면서 과문을 익히었는데 비록 용문[과거 급제]에 올라 9품의 벼슬길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진사(進士)과거에 급제하여 200여 명 나열에 서게 되어 태학의 유림에 출입하게 되었으니 또한 그 의지를 폈다 하겠다. 또 공명에도 마음이 쏠리어 전주에서 창설한 무과에 급제하여 장차 옛날 시서(詩書)를 읽던 솜씨로 총칼을 잡고 말 타는 사이에 달리고 있으나 그 수치인 줄을 알지 못하였으니 처음 마음을 지키지 못한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