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240
한자 人口
영어의미역 Populati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오승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 지역에서 주민 수 또는 인간집단.

[개설]

인구란 한나라 또는 일정한 지역 안에 사는 사람의 수를 말하는 것으로 울릉군의 인구는 울릉군의 주민등록상 등록되어 있는 사람의 수로서 독도의 인구도 포함하고 있다. 울릉군의 인구는 1974년 29,810명을 최고 정점으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며, 2000년대에는 인구 감소 추세가 완화되기는 하였으나, 현재 9,000명을 상회하는 정도에서 정체되고 있다.

2009년 현재 인구수는 『통계연보』의 자료로 10,398명으로 단위면적 당 142.6명이 살고 있다.

[현황]

울릉군 인구의 남녀 비율은 남자 5,449명, 여자 4,949명으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자는 계속 증가 추세에 있으며, 2009년 65세 이상 고령자는 1,810명으로 울릉군 전체 인구의 17.4%를 차지하고 있어 고령화가 급격히 진전되고 있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울릉군의 인구 현황

인구의 분포 현황을 살펴보면, 울릉읍에 7,395명으로 인구의 대부분이 거주하고 있고, 다음으로 서면이 1,589명, 북면이 1,414명 순으로 인구집중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울릉군의 중심 지역인 도동과 저동이 모두 울릉읍에 속해 있기 때문이며, 생활의 중심이 도동과 저동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울릉군의 인구 분포를 개척 정책 초기 거주지별로 보면, 우리나라 주민은 주로 내륙이나 계곡 지대를 점유하여 농사를 지었고 일본인은 주로 해안가에 거주하며 어업 활동을 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 이주민 중 가장 큰 집단은 북면나리동으로 93세대 500여 명이 거주하였다. 반면 일본인들은 주로 해안에 거주하여 어업 활동을 하기 편리한 울릉읍 도동·저동, 서면 태하·남양·통구미, 북면죽암·현포에 거주하였는데, 도동이 가장 많아서 그 세대수가 135가구에 인구가 674명이나 되었다.

울릉읍은 일제강점기부터 많은 일본인들이 정착하였고, 그 후에도 우리나라 주민들이 어업 활동을 주업으로 삼으면서 해안가 주변 특히, 울릉읍에 많이 거주하였다. 울릉읍성인봉의 동쪽 사면에 위치하고 있어 평지가 매우 좁아 취락이 해안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울릉읍은 울릉군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되어 있다.

또한, 울릉군의 인구밀도는 군의 인구수 변동과 거의 일치한다. 1960년대 293명, 1970년대 344명, 1980년대 243명, 1990년대 157명, 2005년도에는 1,331명이다. 울릉군은 1970년대 인구밀도가 가장 높았으나 점점 인구의 감소와 맥을 같이하여 현재는 1970년도 대비해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2009년 현재 울릉도의 인구밀도는 142.6명이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울릉군의 인구수 변동

울릉도는 개척령 이후의 공식적인 이주 이전부터 주민이 거주하였다. 이 사실은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일기』에 141명의 우리 주민과 78명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다는 보고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전 울릉도 관련 기록에도 지속적인 인구의 유입과 거류민 쇄환이 반복되었다. 정부의 공식 이주 정책 하에 본토 주민들의 이주가 해마다 늘어나 1904년에는 80호에 인구가 260명이었는데, 5년 후인 1909년에는 1,130호에 5,893명으로 5년 사이에 인구가 거의 23배나 증가하였다.

일본은 자국민 보호라는 명목으로 울릉도에 도동주재소를 설치하고 소장과 순사 3인을 두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후부터 한반도가 일제치하에 접어들자 울릉도도 헌병대 치하에 들어갔다. 1915년 울릉도청이라 하고 일본인 도사 사코쿠 에지로를 두고 경찰서장을 겸임시켜 치안과 행정을 한 사람의 지휘 하에 두게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도 울릉도 인구는 계속 증가되었다. 1911년에는 1,414호에 8,073명으로 증가하였고, 1912년에는 1,492호에 8,222명에 달하였다. 여기에는 일본인의 숫자도 증가 양상을 보인다. 1903년 일본인 호수는 63호에서 1909년 223호로, 1914년에는 428호에 인구가 1,404명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 때 울릉도 인구가 가장 많았던 해는 1944년 2,575호에 16,130명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울릉도 인구는 계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1975년 6,068호에 29,199명을 기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선다. 감소세가 꾸준히 지속되면서 2007년 12월 현재 인구는 10,160명으로 집계되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울** 현재 2020년 입니다. 2020년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주세요.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은 수정증보 사업을 통해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8.05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