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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환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416
한자 萬里丸事件
영어음역 Manlihwan Sageon
영어의미역 The Timber Carrier Mallihwan Incident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일제의 목재 침탈사건
발생(시작)연도/일시 1885년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887년연표보기
발생(시작) 장소 울릉도
관련인물/단체 김옥균|백춘배

[정의]

조선 말기 일본 선박 만리환이 울릉도의 규목(槻木)[느티나무]을 반출한 사건.

[역사적 배경]

1883년 동남제도개척사(東南諸島開拓使)로서 울릉도 개척의 선봉장이었던 김옥균은 1883년 6월 국왕의 위임장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서 국채를 모집하려 하였다. 그러나 묄렌도르프와 민비 수구파의 사주를 받은 일본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郎]가 김옥균이 휴대한 고종의 국채위임장을 위조한 것이라고 본국에 허위 보고하였다. 이로써 국채 모집은 완전히 실패하고 김옥균은 1884년 4월 귀국하였다. 만리환 사건은 그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다.

[발단]

1885년(고종 22)의 만리환 사건은 일본에 건너가 차관을 교섭 중이던 동남제도개척사 김옥균이 1884년 2월 울릉도 규목을 벌채하여 일본에 판매하는 계획을 추진함으로써 일어나게 되었다. 김옥균의 수행원인 백춘배는 1884년 8월 일본의 만리환 선장 도변말길(渡邊末吉)과 규목 반출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리하여 도변말길은 1885년 봄에 울릉도로 가서 규목을 싣고 4월에 고베항[神戶港]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사이에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주도하다 삼일천하로 끝나고,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결국 만리환의 규목 반출은 정국의 반전으로 인해 조선과 일본 양국 간에 외교문제로 비화하고 말았다.

[경과]

1884년 8월 갑신정변을 주도하다가 실패한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공석이 된 개척사에는 전 울릉도검찰사 이규원이 임명되었다. 한편 정변 뒤처리 문제를 마무리지으려고 1885년 초에 일본에 건너갔던 전권대신 서상우, 부대신 묄렌도르프는 울릉도의 목재 관리를 고베[神戶]의 한 독일상회에 위탁했다. 그리고 독일상회로부터 만리환이 울릉도에서 ‘도탈(盜奪)’한 규목을 싣고 고베항에 도착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에 묄렌도르프와 우리 정부가 항의하고 목재의 압류를 요청하였다.

[결과]

만리환 사건은 1887년(고종 24)에 이르러 일본이 목재공매 대금을 교부하겠다는 문서를 조선에 보내옴으로써 매듭지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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