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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리 고분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453
한자 沙洞里古墳群
영어의미역 Tumuli in Sadong-ri
이칭/별칭 사동리 고분군1·2·3·4,중령 고분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 411(옥천)|사동리 333-1(새각단)|사동리 111-2|사동리 690-3(중령)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희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석실분|기단식 적석석실분
건립시기/연도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높이 1.3~1.5m
지름 4~7m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 411[옥천마을]지도보기|사동리 333-1[새각단마을]지도보기|사동리 111-2지도보기|사동리 690-3[중령]지도보기
소유자 울릉군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위치]

사동리 고분군은 4곳에 무리를 이루어 조성되어 있다. 사동리 고분군1은 사동2리 울릉예술문화체험장에서 옥천천(玉泉川)을 따라 약 1㎞ 올라간 지점에 있는 울릉도관광농원 맞은편 해발 120m의 산 사면 일대에 위치한다. 사동리 고분군2는 사동2리 새각단마을 서쪽 능선 일대에 위치한다. 사동리 고분군3은 일주도로에서 울릉마리나호텔 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지점에서 좌측 사동천을 건너 산등성이에 오르면 3채의 민가가 나타나는데, 그 민가의 서북쪽으로 약 20m 떨어진 지점의 산 사면에 위치한다.

사동리 고분군4는 사동3리 중령마을 북쪽에서 바다쪽으로 뻗어 내린 완경사의 산 사면과 밭 일대에 위치한다. 유적의 북동쪽은 신리천이 흐르고, 남동쪽은 가파른 해안 절벽이 있으며, 북서쪽은 계단식의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사동리 고분군이 있는 일대의 지형은 양편의 가파른 능선이 마주한 중앙부로 옥천천이 흐르고, 천변으로는 협소하지만 곡간 평야가 잘 발달되어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98년 영남대학교에 의해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고, 2002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문화 유적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울릉도식 기단식 적석석실분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고분과 토기편들이 확인되었다.

[형태]

사동리 고분군1은 대부분 가파른 산 사면에 앞면은 1.7~2.5m 정도 경사지게 석축을 하고, 뒷면은 지면을 파서 석실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 개석이나 석실이 노출된 것이 없어 외형상 고분으로 판단하기에는 어느 정도 무리가 있으며 차후 정밀한 조사가 요망된다. 석실 장축은 등고선 방향과 일치하는 것과 직교하는 것이 혼재해 있다. 규모는 장축 5.2~5.8m, 단축 1.6~4m 정도이며, 평면형은 대체로 장방형이며 사다리꼴도 있다.

사동리 고분군2는 대부분 파괴되어 토기편만 산재되어 있다. 1호분은 서쪽 사면 말단부의 대나무 밭의 비교적 경사가 급한 곳에 위치한다. 남쪽 부분에는 파괴된 고분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 사면에서 확인된 고분들은 대략 5기 정도이나 도굴되고 파괴된 고분을 포함한다면 7~8기 이상의 고분이 이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실은 파괴와 도굴로 인해 잔해만 남아 있어 자세한 구조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석실 벽의 축조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할석과 시상(屍床)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냇돌들이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에서는 토기편들이 확인되었다.

2호분은 1호분에서 남동쪽으로 약 10m 정도 떨어진 대나무 밭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석실의 잔해로 보이는 할석들이 흩어져 있으며, 개석들은 보이지 않으나 평면 세장방형의 하부 구조로 추정되는 돌들이 확인되었다.

사동리 고분군3은 도굴로 인해 벽석과 개석 일부만 남아 있다. 규모는 장축 6.1~6.5m, 단축 4.7~5m 정도이고, 평면형은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석실 장축은 남북 방향이고 입구는 바다를 향하고 있다. 앞면은 2m 정도 경사지게 석축을 하고, 뒷면은 지면을 조금 파서 석실을 마련하였다. 뒷면 단벽에는 자연 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여 막음 처리를 하였다. 석실의 규모는 길이 4.4m, 너비 0.65~0.8m, 높이 1.2~1.3m 정도이며, 석실 평면형은 중앙부가 가장 넓고 양 단부로 갈수록 좁아지는 주형(舟形)이다. 네 모서리는 모죽임 처리를 하여 쌓아 올렸고, 측벽은 할석을 이용하여 내경하게 쌓은 후 개석을 덮었다. 현재 길이 0.9~1.1m, 너비 0.46~0.7m, 두께 0.22~0.25m 정도의 개석 3매가 남아 있다.

사동리 고분군4는 1998년 영남대학교에 의해 2기의 고분이 확인되었으며, 2002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실시된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 ‘고려장’으로 불리는 여러 기의 돌무지가 다수 확인되었다. 이 돌무지는 적석총으로 판단되기는 하나 개석이나 노출된 석실이 확인되지 않아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주변에서 다수의 삼국시대 토기편들이 채집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분으로 판단된다. 돌무지의 규모는 장축 약 7m, 단축 약 6m, 높이 1.3~1.5m이다.

1호분은 유적의 두번째 구릉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다. 장축 방향은 N-80°-E이고, 크기는 11×5.9×1.6m 정도이다. 파괴가 심하나 석실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석실 입구는 함몰되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2호분은 1호분의 남서쪽으로 약 3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파괴가 심해 원형을 알 수 없으나, 본래는 1기 이상이었던 것이 후대에 교란으로 합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장축 방향은 N-45°-E이고, 크기는 14.2×5.7×1.2m 정도이다.

[출토유물]

사동리 고분군2에는 파괴된 유구로부터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편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사동리 고분군4의 주변에서는 삼국시대 토기편들이 다량으로 수습되었다.

[의의와 평가]

사동리 고분군은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울릉도식 기단식 적석석실분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파괴되어 그 형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나 정밀 발굴 조사를 실시하면 울릉도 고분 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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