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536
한자 金乙之
영어음역 Gim Eulji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민
출신지 미상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미상

[정의]

조선 전기 울릉도로 도망하여 거주하였던 유민.

[개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강원도 지역에서 울릉도로 도망가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김을지 역시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조선 중앙 정부는 이러한 사람들이 군역(軍役)을 피해 국가의 통제가 잘 미치지 않는 먼 섬으로 도망하였다는 것과, 가짜 왜구 행세를 하며 본토의 연해 마을을 노략질 하는 일이 있으며, 울릉도·독도 지역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많을 경우 왜구가 울릉도 지역으로 들어와 도둑질하고 나아가 강원도 지역까지 침노할 것을 우려하였다.

김을지는 조선 전기 국가의 정책에 따라 강원도 연안 지역에 옮겨 살다가 울릉도 지역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김을지가 왜 다시 섬으로 갔는지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울릉도·독도 지역이 김을지에게는 본토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울릉도·독도 지역은 강원도 혹은 경상도 등 동해의 주민들에게 쉽게 왕래가 가능한 곳이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국가 정책에 의해 울릉도·독도 지역은 왕래가 금지된 지역이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활발히 왕래하였던 역사적 경험은 조선 전기 해금정책(海禁政策)이 확립된 후에도 익숙한 뱃길을 따라 사람들의 왕래가 지속되도록 하였다. 그러한 실례를 조선 후기 안용복 사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울릉도와 독도가 역사 속에서 실질적인 한국의 영토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활동사항]

1416년(태종 16)에 태종은 김인우(金麟雨)를 무릉등처안무사(武陵等處安撫使)로 삼아 울릉도·독도 지역의 주민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1417년(태종 17) 2월 김인우는 울릉도 지역에서 토산물과 주민 3명을 데리고 돌아왔으며, 섬에는 15가구 86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김을지가 이때 나온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김인우의 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울릉도·독도 지역 주민들을 모두 본토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김인우를 다시 울릉도·독도 지역에 파견하였다.

『세종실록』권29, 1425년(세종 7) 8월 갑술(甲戌)조에 따르면 1417년(태종 17)에 울릉도 지역에서 데리고 나온 김을지 등 28명이 1423년(세종 5) 다시 본래 살고 있던 울릉도로 도망가서 살면서, 1425년(세종 7) 김을지 등 7명이 아내와 자식은 섬에 두고 작은 배를 타고 몰래 경상북도 평해군 구미포(仇彌浦)에 왔다가 잡혔다고 하였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