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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554
한자 朴齊純
영어음역 Bak Jesun
이칭/별칭 평재(平齋)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박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용인시
성별
생년 1858년연표보기
몰년 1916년연표보기
본관 반남(潘南)
대표관직 참정대신

[정의]

조선 후기 참정대신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반남(潘南). 호는 평재(平齋). 아버지는 참정 박홍수(朴洪壽)이다.

[활동사항]

1883년(고종 20)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주사겸기연해방군사마(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主事兼畿沿海防軍司馬)·주차천진종사관(駐箚天津從事官)·홍문관부교리·사헌부장령·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1886년(고종 23) 주차천진독리통상사무(駐箚天津督理通商事務)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한 뒤 이조참의·성균관대사성·호조참의·형조참판·예조참판·인천부사·한성판윤 등을 지냈다.

1893년(고종 30) 호조참판 재직 시에 동학도들이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내세워 보은집회를 개최하자 청나라 군사의 파병문제를 위안스카이[袁世凱]와 협의하였다.

1894년(고종 31) 이조참판에서 장흥부사로 전임된 뒤 전라도관찰사·충청도관찰사를 지냈다. 충청도관찰사 재직 시에는 일본군과 경군(京軍)을 연합하여 공주에서 동학농민군 토벌작전에 참여하였다.

1895년(고종 32) 이후 외부협판·중추원의관·외부대신·육군참장·의정부찬정 등을 지냈다. 외부대신 재직 시에는 간도행정관리권 교섭 그리고 경흥과 의주의 개방 등 외교문제를 다루는 한편, 1899년(고종 36) 조청통상조약(朝淸通商條約), 1901년(고종 38) 조비수호통상조약(朝比修好通商條約), 1902년(고종 39) 조백수호통상조약(朝白修好通商條約) 등을 체결하였다.

1902년(고종 39) 주청전권공사(駐淸全權公使)에 임명되어 부임하였다가, 1904년(고종 41)에 귀국하였다. 1905년(고종 42)에는 외부대신으로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와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국민들로부터 을사오적의 한 사람으로 규탄 받았다. 1906년 일본이 「시마네현 고시」제40호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고시하자, 당시 참정대신 박제순은 1906년 5월 20일자 지령 제3호를 통하여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완용내각 하에서도 내부대신을 역임했으며, 1909년 이완용이 저격당한 뒤에는 임시내각총리대신서리를 지냈다. 1910년 8월에는 내부대신으로서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에 서명하였다. 그 뒤 일제로부터 자작의 작위와 은사금을 받고, 중추원고문을 지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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