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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596
한자 李克墩
영어음역 Yi Geukdon
이칭/별칭 사고(士高)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서울시
성별
생년 1435년연표보기
몰년 1503년연표보기
본관 광주(廣州)
대표관직 병조판서

[정의]

조선 전기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고(士高). 고려 말 광주의 향리였던 이집(李集)의 증손이며, 이지직(李之直)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이며,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세 형과 아우 한 명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오자등과(五子登科)’로 유명할 뿐 아니라 아버지와 맏형 이극배(李克培), 아우 이극균(李克均) 등 3부자가 정승을 지내고 다른 형제들도 판서를 지냄으로써 당대 제일의 문벌로 성장하였다.

[활동사항]

이극돈은 1457년(세조 3)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농시주부에 제수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사헌부집의가 되었다. 1468년(예종 즉위년) 중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조참의로 승진하였으며, 1469년(예종 1) 4월 한성부우윤에 임명되었다. 이어 대사헌과 형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473년(성종 4)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1476년(성종 7) 예조참판으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84년(성종 15)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87년(성종 18) 6월에는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다. 1494년(성종 25) 이조판서에 제수된 이래 병조와 호조의 판서를 지내고, 평안·강원·전라·경상·영안 등 5도의 관찰사를 차례로 역임하고 나서 의정부의 좌·우찬성을 지냈다. 특히 강원도관찰사 재직 시에는 울릉도의 수토를 맡아 처리하였다.

전례와 행정실무에 밝고 정밀하여 적지 않은 치적이 있었으나, 도량이 좁고 성품이 엄격하였다. 이른바 훈구파의 거두로서 성종 이후 중앙정계에 진출한 사림파와 자주 갈등을 빚다가, 1498년(연산군 4) 마침내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켰다.

김종직(金宗直)의 제자인 김일손(金馹孫)이 여색을 즐기고 뇌물을 먹었던 이극돈 자신의 비행을 사초(史草)에 기록한 일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성종실록(成宗實錄)』의 편수과정에서 세조의 찬탈을 풍자한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과 훈구파의 비위사실을 기록한 사초를 발견하고, 이를 빌미삼아 유자광(柳子光)과 함께 연산군을 충동하여 김종직김일손을 위시한 사림파를 제거하였다. 그러나 김일손의 사초를 보고도 즉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잠시 파직되었다가, 다시 광원군에 봉하여졌다. 그 뒤 1501년(연산군 7) 병조판서가 되었다가 1503년(연산군 9)에 6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학문과 사상]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성종실록(成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492년(성종 23)에『유양잡조(酉陽雜俎)』·『당송시화(唐宋詩話)』·『유산악부(遺山樂府)』와 『파한집(破閑集)』·『보한집(補閑集)』·『태평통재(太平通載)』 등의 책을 간행하였다. 또한 1494년(성종 25)에 노사신 등과 『계몽의두(啓蒙議頭)』 등의 책과 『대명률(大明律)』을 대조해 미비한 것을 참작해 쓸 것을 청하였던 것과 『동국통감(東國通鑑)』을 비롯하여 다수 책을 편찬한 것으로 보아 그의 학문이 매우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술 및 작품]

1469년(예종 1)에 『무정보감(武定寶鑑)』을 편찬하였으며, 1483년(성종 14)에 『강목신증(綱目新增)』, 1485년(성종 16)에 성종의 명령으로 서거정(徐居正)·정효항(鄭孝恒) 등과 함께 『동국통감(東國通鑑)』을 편찬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산3-1번지 태조사 좌측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성종 2년(1471) 성종의 추대와 보좌에 공이 있다 하여 좌리공신 4등과 광원군(廣原君)에 책봉되었다. 이극돈 사후에 시호로 익평(翼平)이 주어졌지만, 뒤에 다시 관직과 함께 추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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