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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676
한자 李鍾學
영어음역 Yi Jongha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이승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지학자
출신지 경기도 화성
성별
생년 1927년연표보기
몰년 2002년연표보기
대표경력 독도박물관 초대관장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활동한 서지학자.

[활동사항]

서지학자였던 이종학은 1980년대 초부터 독도에 관한 일본 측 자료를 수집하려고 수십 차례 일본을 왕래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천 종의 사료적 가치가 귀중한 독도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를 배경으로 시마네현 관계자에게 독도가 한국 땅임을 강조하였다. 1997년 독도박물관에 그가 30평생 모았던 독도·동해 명칭과 관련된 자료들을 기증하였으며, 독도박물관 초대관장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2000년 5월 ‘지키지 못한 독도, 독도박물관 문 닫습니다’라는 현수막과 함께 독도박물관을 폐관시켜 독도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굴욕적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다. 당시 일본은 행정·입법·사법부를 총동원하여 독도에 관심을 가졌지만, 한국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이에 당시 독도박물관 관장이었던 이종학이 홀로 정부를 비난한 것이었다.

독도박물관 관장에서 물러난 후 이종학은 2001년 3월에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자료를 사비를 털어 마련하여 평양인민대학습당에서 전시하였다. 또한 한국은 제대로 일본과 과거 청산을 하지 못하고 수교를 하였지만, 북한은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을 해달라는 바람에서 평양 전시자료를 고스란히 평양에 남겨두고 돌아왔다.

이외 다양한 방면에 활동하며 일본의 잘못된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였다. 이종학은 일본의 경술국치 공작이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되었음을 일본 궁내성 문서를 통해 입증하였다. 이종학이 발굴한 궁내성 문서들은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기 위해 치밀한 공작을 해왔고, 합방 전 일본 군대를 조선에서 증원하는 등 합방 반대를 제압하려고 치밀한 준비를 해왔음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화성의 명칭을 일제가 지은 수원성이란 이름 대신 본래 이름인 화성으로 되돌리고자 노력하였으며,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북관대첩비가 북쪽 회령 지방에 서 있던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2년 별세하기 전까지 올바른 역사 찾기 운동을 펼쳤던 이종학의 가장 큰 업적은 많은 이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독도에 대한 문제를 대내외적으로 알렸으며, 일본 측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모으는데 평생을 받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종학의 이러한 노력은 현재 독도박물관에 보관된 자료를 통해 독도의 한국 영유권 주장에 대해 뒷받침을 하여주고 있다.

[상훈과 추모]

2003년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제3회 한림기록문화상과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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