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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697
한자 選擧
영어의미역 Elec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동형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개설]

일반적으로 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 특정의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들이 집합적인 의사표시를 통하여 선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수인이 일정한 직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반드시 국가기관의 선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교회, 회사, 학교 등 여러 사회조직이나 집단에서도 널리 행하여진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중요한 선거는 대통령, 국회의원 등 국가 기관을 선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선거는 국민의 대표자를 직접 선택하고, 간접적으로는 정부와 내각 또는 정치를 선택하며,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 제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선거 제도는 대의민주주의 통치 구조에서 국민의 주권 행사 내지 참정권 행사의 과정으로서 국가 권력의 창출과 국가 내에서 행사되는 모든 권력의 정당성을 국민의 정치적 합의에 근거하게 하는 조직 원리인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요 공직 선거로는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권의 수반이 되는 최고의 통치권자인 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국회의 구성원이 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지방[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선거가 있다. 경상북도 울릉군의 공직 선거도 이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대통령 선거]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국회는 단원제 의회와 대통령 간선제, 국무총리 임명에 대한 국회 인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안을 성안하여 같은 해 7월 12일에 제헌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또한 같은 해 7월 17일의 제헌헌법 공포에 이어 7월 20일 국회에서 실시된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재적의원 198명 중 196명이 투표한 가운데 이승만 180표, 김구 13표, 안재홍 2표, 무효 1표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총재 이승만이 당선되었다.

1952년 7월 4일에는 이른바 ‘발췌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제2대 대통령 선거는 간선제가 아닌 직선제로 실시되었다. 이후 제4대 대통령 선거까지 직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했으나, 제4대 대통령 선거의 경우 4·19혁명 이후 무효화되어 재선거가 실시되었다. 1960년 8월 12일에 재실시 된 제4대 대통령 선거는 다시 의회에서 선출하는 간선제로 전환되었다. 4·19혁명으로 자유당의 이승만정권이 무너지고 의회제로 개헌했기 때문이었다. 선거 결과 윤보선이 압도적인 지지로 제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2년 12월 17일 대통령 중심제의 제3공화국 헌법이 통과되면서 1963년 10월 15일의 제5대 선거부터 1971년 4월 27일의 제7대 선거까지의 대통령 선거는 다시 국민의 직접 선거로 실시되었다. 그러나 1972년 제4공화국 헌법인 유신헌법의 등장 이후 이전의 대통령 직선제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의한 간접 선거로 전환되어 제8대부터 제10대 대통령 선거까지 지속되었다.

제5공화국에서도 대통령 간선제는 계속 유지되었는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대신 대통령 선거인단이 선출 주체가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로 다시 전환되어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이후 취임한 역대 대통령은 이승만[초대~3대], 윤보선[제4대], 박정희[제5대~9대], 최규하[제10대], 전두환[제11대~12대], 노태우[제13대], 김영삼[제14대], 김대중[제15대], 노무현[제16대], 그리고 이명박[제17대]이다.

[국회의원 선거]

1948년 초대 제헌국회의원 선거의 전국 선거구 수는 200개였으며 이중 경상북도는 33개 구로 확정되었다. 3월 26일 경상북도 선거위원회가 구성되고 4월 16일에 제헌국회의원 입후보 등록이 마감되었는데 경상북도는 총 66명이 등록을 마침으로써 평균 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울릉군의 경우 무소속의 전임 도지사 서이환과 기독교 목사인 김석규 두 사람이 출마하였다. 이 선거에서 서이환 후보가 총 유효투표수의 75.9%인 3,538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으며 김석규는 1,121표를 획득하는데 그쳐 낙선하였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는 UN의 감시 없이 한국 정부 자체에 의해 치러진 최초의 선거였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불참하였던 중간파 세력과 혁신 세력 모두가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경상북도의 경우 제헌국회 의원 선거의 33개 의석보다 1석이 늘어난 34개 의석이 배정되었고 375명이 입후보하여 1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제34선거구인 울릉군의 경우 현역 의원인 서인환을 비롯하여 김석규, 김덕근, 홍순엽, 최병권 등 5명이 입후보하였으나 서이환 후보가 최고득표인 2,220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1954년 5월 20일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울릉군의 경상북도 제34선거구였다. 이 선거에서는 총 4명이 입후보하였으며 자유당의 최병권 후보가 1,741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선을 연임했던 서이환 후보와 그 외 허필, 이정윤 후보는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는 총 37개의 의석을 배정받았다. 경상북도의 총 37개 선거구 전체에서 자유당 36명, 민주당 31명, 민주혁신당 3명, 독립노동당 2명, 통일당 1명, 국민회 1명, 무소속 63명이 입후보하여 평균 3.6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당시 울릉군의 경우 허필 후보가 선거 막바지에 사퇴함으로써 자유당의 최병권 후보가 무투표로 당선되어 연임하게 되었다.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릉군의 경우 총 10명이 입후보하여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선거 결과 1,513표를 획득하여 20.2%의 득표율을 보인 무소속 전석봉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인구 20만 기준의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에 의한 지역구 의원 선거와 비례대표제에 의한 전국구 의원 선거로 국회의원 선출 방식이 병행·실시되었다. 따라서 이전의 전국 총 233개 지역구가 총 131개로 축소되었다. 당시 울릉군은 포항시 및 영일군과 함께 경상북도 제5선거구로 통합되었으며 공화당의 김장섭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선거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자행된 부정부패와 불법으로 얼룩진 타락 선거로 특징 지워진다. 개헌 가능 의석수의 확보를 통해 박정권의 계속 집권을 달성하려는 민주공화당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한 결과로 빚어진 것이었다. 경상북도의 경우 총 20개의 지역구에서 모두 109명이 입후보하였으며 울릉군이 속한 제5지역구에서는 민중당의 하태환, 신민당 최원수, 민주공화당 김장섭, 민주당 이상면 등 4명이 입후보 하여 김장섭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김병윤, 신민당 최원수, 국민당 정기복이 각각 공천되되어 경쟁한 결과 김병윤 후보가 당선되었다. 중선거구제로 실시된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의 정무식과 무소속의 권오태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다.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릉군이 속한 경상북도 제3선거구에서는 5명이 입후보하여 무소속의 권오태와 신민당의 조규창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다.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울릉군이 속한 경상북도 제4선거구에서 총 7명이 입후보하여 3.5대 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민정당의 이진우와 국민당의 이성수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총 6개 정당에서 각각 1명씩 입후보하여 경쟁한 결과 민정당의 박경석과 민한당의 서종열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다.

다시 소선거구제로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정당의 이상득, 민주당의 박기환, 무소속의 서종열 3명이 입후보하여 경쟁한 결과 민정당의 이상득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후 이상득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계속 당선되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의 당선을 포함하여 내리 6선을 연임하고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N** 2020년에 맞게 수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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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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