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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항구 근처에 살고, 개척민은 산이나 언덕에 살았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A01010003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고경래

일제의 강점이 한창이던 1923년, 울릉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도동에서 생활해 온 마을주민 최헌식 씨는 당시 울릉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전에 (구(舊)한국 ; 대한제국) 강원도에서 울릉도를 관할하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도 일본 사람들이 많이 와가지고 해산물도 해가고 울릉도 나무를 캐 베어가고 하니까, 도경으로 파견 나와서 일 년에 한 두 번씩 돌고 가고 하는 관리가 울릉도에 우리나라 사람이 이주하는 게 좋겠다고 정부에 보고했지요. 그래서 개척령이 내렸다고 합니다. 개척령 내리고 5년, 10년 있다 차차 육지에서 개척민이 들어 왔죠. 육지에서 이주해 왔기 때문에 그 당시 울릉도의 생활방식이나 습관은 육지와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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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이주민들은 높은 데 올라가 정착했는데, 높은 데 올라 간 것은 물론 농사짓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당시 개척민들은 해변이나 바닷가에 사는 것은 상놈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1910년대에 일본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와서는 해안가를 점령하고 살았습니다. 그 후로 일본 사람들이 항구 근처에서 상권을 장악하고 전부 부자로 살게 되고, 처음 온 개척민들은 모두 위에서 가난하게 살았지요.”

독도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일본 강점시대의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 일본식 신사(神社)가 많이 발견되는데, 울릉도에 살았던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소속 상회(商會)별로 ‘상업 번창’이나 ‘해상 안전’을 기원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정보제공]

  • •  최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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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일제강점기) 도동의 일본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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