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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업의 꿈을 키운 열여덟 살, 오징어잡이배 선장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C03050004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천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호동

“중학교 졸업하고 난 후에는 포항에 진학했지요. 포항공고, 지금 제철고등학교죠. 거기 1학년 편입했다가 그래가지고 좀 농띠 좀 지겼어요. 조금 다니다가 학교 그만두고 그만뒀어요. 그만 두고 집에 와서 놀다가, 계속 놀다가 어업에 종사해가 조금 배우고 하다가 바로 군대 갔다가 직장 생활하다가, 그래가 계속 수산업 하다가 수산업 놓은 지가 지금 4년, 5년 됐어요.

군대생활, 3사관학교 3년 마치고 그길로 삼성전자에 들어가서 한 4년 근무했어요. 저가 아버지 성격 닮았거든요. 직장이 통 안 맞더라구요. 그래가, 사표 쓰고 울릉도에 다시 정착했는데, 수산업에 손을 댔어요. 적은 배로 시작해서 원양선까지 해봤는데, 원양선 하면서 사업이라는 게, 돈이라는게 하늘이 만들어 주지 큰돈은 인력으로는 안 되더라구요. 쓸 만하면 사고 나고 사고 나고……. 결국은 수산업에 손 떼고 조그마한 배 가지고 낚시도 즐기고 마트나 하면서 생계유지하고 있습니다. 배는 구룡포에서 진수를 한 번 했고, 저 경남 삼천포에서 큰 배를 만들었고, 그리고 저 전남 땅끝마을에서도 만들어 왔고, 그래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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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잡이 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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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잡이 조업중

열여덟 살 때, 그러니까 친구들은 대학교 갈 때 그때 그 당시에, 지금 말하자면 10톤급의 배, 제가 선장을 했어요. 오징어 배 선장을 했는데, 그 당시에 세 시간, 네 시간 조업을 나갔는데 밤에 풍랑을 만나서 죽을 고비 한번 겪었어요. 그때는 사람 22명 그 배를 탔었거든요. 그때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열여덟 살 때 내가 선장을 했습니다. 마도로스였습니다. 그러고 조금 하다가 그만 두고, 계속 경영만 했지요. 그래가 경영을 하면서 돈을 좀 벌었어요. 벌어가지고 큰 배 한 50톤급의 원양사업이라고, 그 배를 하나 만들었어요. 사업이 좀 되더라구요. 욕심을 좀 내가 배를 하나 더 만들었어요. 한 70톤 되는 두 척을 운영을 했는데, 돈이 되더라구요. 아 이렇게 벌면 괜찮아지겠구나.

근데 사업하는 사람들은 열두 시 넘어가지고 배를 조업 보내놓고 전화를 받으면 항상 불안하거든요. 옛말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여간 조업 나가가지고 무소식 이다가 들어올 때 돼가 전화가 와야, 기쁜 소식이거든요. 새벽 세 시에 전화를 울릉무선국에서 받았는데, ‘삼봉호가 화재로 인해서 배가 침몰 직전에 있습니다.’ 통보를 받았습니다. 자다 일나 ‘그래 사람은 괜찮습니까?’ 하니깐, ‘지금 구조 중입니다.’ 하더라고. 1시간 후에 전화가 오기로, 다섯 명 죽고 한 사람 실종 등, 재산 손실 많이 봤습니다. 결국은 그래가 배를 안 해야 되는데, 또 그놈 배를 가지고 돈 6억 들여가지고 또 하나 만들었어요. 욕심내서 만들었는데, 그 배를 가지고 10여 년 사업을 잘 했는데. 부산 앞바다에서 충돌 사고가 나가지고 뭐 사건에 휘말려가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그래가 수산업은 그때부터 안 합니다. 이제 조그만 배로 방어도 잡고 낚시도 하고 소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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