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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신당에 모신 동남동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D01010003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태하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호동

성하신당 에는 좌측에 ‘성하지남신위(聖霞之男神位)’, 우측에 ‘성하지여신위(聖霞之女神位)’라고 한 바와 같이 동남동녀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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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신당의 동남동녀 상

성하신당 에 동남동녀를 모시게 된 연유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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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신당 내에 위치한 성하신당 전설에 관한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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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신당 동남동녀, 사랑의 힘으로

“조선 초기 태종 17년 조정에서는 안무사 김인우를 보내 울릉도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게 하였다. 섬 사람들을 모두 모아 출항을 앞 둔 날 밤 김인우의 꿈에 동해의 해신이 나타나 동남동녀 한 쌍을 울릉도에 두고 가라고 했다. 다음날 지난밤의 꿈을 잊어버리고 출항을 하려 하자 갑자기 풍랑이 일어 김인우와 울릉도 주민들은 배를 띄우지 못했다. 다음날도 김인우 일행이 출발하려 하자 잔잔하던 바다에 파도가 일어 배를 띄우지 못하게 된다. 안무사 김인우는 꿈을 떠올리고 동남동녀를 뽑아 배에서 내리게 하여 자신이 기거하던 곳에 잊고 놓아두고 온 붓과 벼루를 가져오라고 했다. 두 사람이 붓과 벼루를 가지러 배에서 내리자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잔해졌다. 안무사 김인우는 급히 닻을 올리고 순풍을 받아 무사히 육지로 돌아 왔다. 육지로 돌아온 김인우는 울릉도에 두고 온 두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8년 뒤 조정에서는 그에게 다시 안무사직을 맡겼다. 김인우가 자신이 기거하던 곳으로 가보니 꼭 껴안은 동남동녀의 백골이 있었다. 김인우는 그곳에 사당을 짓고 참회를 했다. 그 후 울릉도 주민들은 배를 진수할 때면 꼭 이곳에 와서 진수식을 올리고 무사한 뱃길이 되기를 기원한다.”

태종 17년 안무사 김인우를 울릉도에 파견한 사실은 태종16년 9월 경인일, 그리고 태종 17년 2월 을축일의 “태종실록”에서 확인된다. 이때 김인우의 보고에 의하면 울릉도에는 호 15구, 남녀 합쳐 86명이 살고 있었는데, 김인우가 그 가운데 2명만을 데리고 나왔다. 이에 조정에서 그 주민들을 색출하여 육지로 데려오기로 결정하고 김인우를 다시 보냈다. 이때를 배경으로 하여 성하신당의 동남동녀의 전설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8년 뒤(1425) 김인우가 울릉도에 들어가 꼭 껴안은 동남동녀의 백골을 발견하고, 그곳에 사당을 짓고 참회를 했다고 하였는데, 김인우가 세종 7년(1425)에도 울릉도에 안무사로 파견된 것 역시 “세종실록”에서 확인된다. 이들 기록에 의하면 김인우는 울릉도에 오갈 때 태풍을 만나 무척 고생하였고, 그 과정에서 성하신당의 동남동녀 전설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 전설은, 김인우가 이 당시 처음으로 신당(神堂)을 짓고 동남동녀를 성황신으로 모셨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1969년 3월에는 전설 속에 등장하던 동남동녀를 혼인시키는 행사를 올렸다고 한다. 안녕을 기원할 때, 동남동녀의 옷을 지어 바치곤 하는데, 이때부터 동남동녀에게 바치는 옷을 어른 옷으로 준비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동남동녀의 신상(神像)은 1970년 9월 15일 봉안되었다. 경로당의 회원들이 울릉군으로부터 보조금 4만원과 어업조합에서 백미 1석을 받아 추진하였다. 봉안식은 저동의 보살이 경문을 읽는 등 불교 의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1978년 2월 성황당을 성하신당으로 바꾸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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