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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얽힌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D02020001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태하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호동

[태하리, 큰황토구미]

원래 이곳에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현포 쪽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자취가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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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마을의 유래가 된 황토구미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조 때는 이곳의 황토를 나라에 진상했다고 하며, 또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삼척영장을 이 섬에 순찰 보내어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개척 때 사람들이 이곳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라 하였던 것이다. 후에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할 때 대하(臺霞)라 하다가 다시 '태하(台霞)'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 군청소재지였으며 성하신당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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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감한 태하마을 전경

[대풍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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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에서 바라본 대풍령의 풍경

태하리에서 현포리로 배를 타고 가자면 등대 부근 바다 속에 하늘로 치솟아 있는 바위로, 밧줄을 꿰어서 맬 수 있을 만한 구멍이 있다. 고종 15년 개척령이 반포되기 이전 전라도 사람들은 울릉도에 많이 왕래하고 있었는데, 이는 고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를 만들기 위해서라 한다. 이 섬에는 배를 만들기에 알맞은 나무가 많이 있어 낡아빠진 배를 타고 이 섬에 와서는 새 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새 배가 완성되면 돛을 높이 달고 이 바위구멍에 닻줄을 메어 놓고 본토 쪽으로 불어대는 세찬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서 '대풍감'이라 불렀다. 바람을 기다리던 배는 마침 바람이 불어 돛이 휘어질 듯하면 도끼로 닻줄을 끊어 한달음에 본토까지 갔다고 한다.

[말바우]

'말바우'는 물칭칭이를 지나 높은 고개 너머에 있다. 생김새가 말이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물이 흘러내릴 때는 마치 말이 오줌을 누듯이 줄줄 떨어진다고 해서 '말바우'라 부른다고 한다.

[물래치기]

산 밑을 돌아가는 바닷가 부근으로, '물이 와서 파도가 되어 친다'는 의미로 '물래치기'라 부른다고 한다.

[산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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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우와 학포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산막

말바우학포의 중간지점에 있다. 개척 당시 이곳에는 괴목나무가 유난히도 많았다. 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막을 쳐 놓고 배를 만들기 위해 벌목을 했다고 해서 '산막'이라 했다고 한다. 또한 산삼을 캐기 위해 막을 쳤다고도 하고, 또 삼베옷을 만들기 위해서 이곳에 막을 쳐 놓고 삼을 많이 심었다고도 해서 '삼막골'이라고도 했다.

[서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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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에서 남양마을을 가는 쪽 골짜기 깊숙히 들어간 곳

태하리에서 남양리를 가기 위해서 골짜기를 깊숙히 들어가면 서들영이란 곳이 있다. 예전에 이곳에 서달(徐達)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해서 그 이름을 따서 '사달영'이라고 하였고, 지금은 '서들영'이라 부른다. 태하 1리에 속한다.

[윤하추(대밭추)]

태하리에서 남으로 가면 '윤하추'라는 곳이 있다. 이는 '윤하'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고, 대밭추라고 하는 것은 '대밭이 많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작은 황토구미, 학포]

태하리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황토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나, 태하리보다는 지역도 좁고 황토도 적다고 해서 '작은 황토구미(小黃坵尾)'라 불려졌다. 이규원 일기에도 마을 뒤편 학이 앉아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학포(鶴圃)'라 부르는데 1958년경 학의 부리 부분이 비바람에 떨어지고, 몸통만 남아 있다고 한다. 원래 북면에 속하였지만 1903년 이 섬이 3개의 면으로 편제됨에 따라 서면에 속하게 되었으며, 1914년 태하리에 병합되어 행정구역상 태하 2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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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황토구미라고 불린 학포

[향나무재, 향목령]

태하리에서 현포리 쪽에 '향나무재'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이규원 일기에는 향목구미[香木坵尾]이라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향나무가 별로 없지만, 개척 때에는 이 산등성이 일대에는 잡목이라고는 별로 없고, 오직 아름드리 향나무만이 꽉 차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 한다. 그런데 그렇게도 많던 향나무가 오늘날 없어진 것은 옛날 산불이 나서 석 달 열흘 동안을 두고 다 타버렸기 때문이라 한다. 그때 향나무 타는 냄새가 강원도까지 풍겨 그곳 사람들이 이 향기를 맡고 울릉도에 큰 불이 났음을 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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