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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445
한자 指令案
영어의미역 Directive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581-1[약수터길 90-17]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문서
관련인물 이규원|홍순목|박영효
발급자 태정대신(太政大臣)
수급자 내무경(內務卿)|사법경(司法卿)
발급일시 1883년 3월 1일연표보기
소장처 독도박물관
소장처 주소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581-1[약수터길 90-17]지도보기

[정의]

1883년 3월 1일 일본 태정대신이 발급한 일본인의 울릉도 도항을 금지하는 문서.

[개설]

일본에서 송도(松島)[竹島]라 부르고, 조선에서 울릉도(蔚陵島, 鬱陵島)라 부르는 곳에 일본인들의 도항(渡航)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각 지방관에게 하달(下達)하여 이를 준수토록 한 지령이다. 문서의 크기는 19.5×29.5㎝이다.

[제작발급경위]

1882년 4월 조선 정부는 울릉도검찰사(鬱陵島檢察使) 이규원(李圭遠)[1833~?]에게 울릉도 근방에 있는 우산도와 송도, 죽도에 대하여 특별히 잘 살피고, 울릉도에 고을을 설치하기 위해서 지도와 별도의 보고서를 상세히 작성해 올리도록 하였다. 이규원은 4월 30일 울릉도에 도착하여 5월 2일부터 10일까지 조사한 뒤 13일 평해 구산포로 돌아왔다. 6월 5일 이규원고종에게 울릉도 감찰 결과 본국인 140명과 일본인 78명이 있고, 고을을 설치하기에는 나리동(羅里洞)이 적합하다고 건의하였다. 조사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나무를 도벌(盜伐)하고, 표목(標木)을 세워 송도(松島)라고 일컫는 것을 적발하였으므로 이를 일본 공사와 외무성에 항의하기로 하였다.

6월 예조판서가 이규원의 보고에 따라 일본 외무성에 일본인의 쇄한(鎖韓)을 재차 요구하고, 8월 20일 영의정 홍순목(洪淳穆)의 계언(啓言)[관청이나 벼슬아치가 임금에게 올리는 말]에 따라 울릉도에 도장(島長)을 파견하기로 하였다. 이규원의 건의에 따라 울릉도에 거주하고 있던 함안인(咸安人) 전석규(全錫奎)가 도장에 임명되었다.

9월 12일 박영효가 제물포조약 비준 시에 일본 외무경에게 일본인의 울릉도 불법 침입과 벌채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10월에는 수신사로 가서 일본의 울릉도 벌목 금지를 촉구하였다. 그 결과 일본은 1883년(고종 20) 3월 1일 태정대신(太政大臣)의 이름으로 ‘울릉도 도항금지령’을 시달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지령안」은 일본인들의 불법 도항을 금하는 명령으로써 울릉도 개척 이후 울릉도 및 주위 도서에 대한 조선의 주권을 인정한 문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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