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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473
한자 台霞里古墳群
영어의미역 Tumuli in Taeha-ri
이칭/별칭 태하동 고분군,태하리 고분군1·2·3·4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 330|태하리 398|태하리 401-1|태하리 507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심현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석실분|횡구식 석실분
건립시기/연도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6~10세기]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 330 지도보기 |태하리 398지도보기|태하리 401-1지도보기|태하리 507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위치]

고분군은 네 곳으로 구분된다. 태하리 고분군1태하리 507번지 일대로 태하초등학교와 울릉우체국 태하분국 뒤편 산 사면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마을 북쪽의 향미봉[해발 297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이 해발 100~200m에서 단애면을 이루고, 이 단애 밑쪽 해발 50~80m 지점의 완사면에 위치한다. 이곳에서는 태하천 전체와 주변의 곡간 평지 및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태하리 고분군2태하리 398번지 일대로 태하초등학교 학포분교 우측 바다쪽으로 뻗은 해발 120~160m의 비교적 가파른 산 사면에 위치한다. 손모익과 우한수의 공가 앞쪽 약 60m 지점에 위치한 해주최씨묘 옆에 있는 큰 돌무지의 형태로 위치한다.

태하리 고분군3태하리 401-1번지 일대로 태하리 고분군2에서 북쪽으로 1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해발 180~230m의 산 사면에 위치한다. 이곳은 비교적 경사가 급한 지대를 개간하여 만든 밭으로 풀과 잡목이 우거져 있다. 이 고분군 앞쪽으로는 계곡과 바다가 한눈에 잘 조망된다. 양단 계곡을 사이에 두고 남북 약 250~300m, 동서 약 120~150m 범위에 고분으로 추정되는 40여 기의 적석군이 분포한다.

태하리 고분4는 태하리 330번지[울릉순환로 1870] 일대에 위치한다. 태하2리 산막에 있는 김영호의 집 옆에 고분 1기가 위치하는데, 이 고분 양편으로 험준한 능선이 바다쪽으로 이어지며, 이 능선 사이로 비교적 완만한 능선이 서쪽으로 뻗어 있다. 고분은 이 능선의 말단부인 해발 165m에 위치한다.

이 가운데 태하리 고분군1은 현재 행정 구역상 서면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 북면에 접하고 있기 때문에 현포 지역과 관련되는 유적으로 판단된다. 이곳은 태하천의 주변으로 평지가 잘 발달되어 있어 취락 형성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형태]

태하리 고분군1은 석실의 입구가 막힌 고분 2기가 조사되었으나, 1기는 밭을 개간하면서 없어지고 현재 1기만 남아 있다. 본래 석실의 입구가 개방되어 있었으나 주민들에 의해 폐쇄되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횡구식 석실분으로 추정된다.

태하리 고분군2는 적석 외형만 확인되고 석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손모익의 집 뒤편 일주도로 절개면과 그 위쪽 밭에서는 소라 껍데기와 적갈색 연질 토기편이 채집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이 일대는 능선 완사면으로 고분군과 연계된 취락지가 분포했을 가능성이 높다.

태하리 고분군 1·2에 많이 분포된 적석군은 고분군으로 추정되나, 현재의 외형만으로는 고분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석군의 주변에서 토기편이 많이 채집되었다. 태하리 고분군3은 석실 내부가 확인된 것이 6기 정도다. 고분은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여 한 줄에 2~5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열을 맞춰 정형성 있게 배치된 것도 있고, 2기의 묘역이 서로 맞대어 하나로 보이는 것도 있다. 열 간격은 약 10~20m 정도이다.

고분은 대개 경사가 급한 앞쪽에는 석축을 쌓고, 뒤쪽은 지면을 파서 석실의 바닥을 마련하였으며, 입구는 바다를 향하고 있다. 크기는 장축 7~8m, 단축 3~7m 정도이다. 석실 평면형은 장방형이고, 규모는 길이 약 4~5m, 너비 0.6~1.1m, 높이 0.5~0.9m이다. 석실 폭이 좁고 높이가 낮은 것이 특징이다. 석실 모서리는 모죽임으로 처리하였다. 측벽은 5~6단을 내경하게 쌓아 올린 후 개석을 덮었다. 개석 상부에 다시 적석을 하였으나 지금은 대부분 유실되고 일부만 남아 있다.

태하리 고분4는 경사가 급한 앞쪽과 계곡쪽인 오른쪽에 7~8단 정도 들여쌓기로 석축한 후 그 위에 석실을 축조하였다. 석실의 장축은 동서 방향이며, 입구는 바다가 잘 조망되는 서쪽으로 내었다. 석실 입구와 내부는 도굴로 함몰되어 흙과 할석이 채워져 있어 정확한 형태를 알기 어렵다. 노출된 석실의 상태로 보아 석실 평면형은 장방형이며, 앞쪽 석축과 석실 입구간 거리는 약 1.6m이다.

석실 규모는 길이 약 4m, 너비 약 0.5~0.6m이며, 장벽은 1~2단 정도만 확인된다. 석실 상부에는 길이 0.8~0.85m의 긴 판석을 개석으로 사용하여 3개가 뒤쪽에 덮여 있고, 앞쪽에도 3개의 개석이 방치되어 있다. 본래 개석 상부에 적석을 하였으나 대부분 유실되었다. 이러한 묘제는 울릉도에서만 확인되는 특이한 구조의 횡구식 석실분이다.

[출토유물]

유물은 고분군으로 추정되는 적석군의 주변에서 토기편이 많이 채집되었다. 특히, 태하리 고분군1의 적석부 또는 주변에서 병형(甁形) 토기와 호편(壺片) 등 도질 토기가 다수 채집되었으며, 이 가운데 적갈색의 연질 토기는 경도가 매우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태하리 고분군은 울릉군에 분포하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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