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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578
한자 安龍福
영어음역 An Yongbok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어부|민간외교가
출신지 동래부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대표관직 능로군

[정의]

조선 후기 어부이자 민간외교가.

[활동사항]

안용복은 동래부 출신으로 동래 수군으로 들어가 능로군(能櫓軍)으로 복무하면서 왜관에 자주 출입하여 일본 말을 잘하였다. 1693년(숙종 19)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이곳을 침입한 일본 어민을 힐책하다가 일본으로 잡혀갔다. 일본에서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강력히 주장하여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서계(書契)를 받아냈다. 이를 가지고 돌아오던 중 쓰시마도주[對馬島主]에게 빼앗겼는데 이때 죽도(竹島)는 일본 땅이므로 고기 잡는 것을 금지시켜 달라는 내용으로 서계가 위조되었다.

이에 조선에서는 울릉도는 조선의 땅임이 명백함을 밝히고 1694년 일본의 무례함을 힐책하는 예조의 서계를 전달하였다. 이후 안용복은 1696년(숙종 22) 박어둔(朴於屯)등과 다시 울릉도에 고기잡이 나갔다가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송도(松島)[독도]까지 추격하며 조선의 바다에 침범해 들어와 고기를 잡은 사실을 문책한 다음 울릉우산양도감세관(鬱陵于山兩道監稅官)이라고 자칭하고, 일본 호키주[伯耆州: 島根縣]에 가서 번주(藩主)에게 범경(犯境)의 사실을 항의하여, 사과를 받고 돌아왔다.

이듬해 일본 막부는 쓰시마도주를 통하여 공식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하고 일본의 출어 금지를 통보해 왔다. 안용복은 나라의 허락 없이 외국을 출입하여 국제문제를 야기했다는 이유로 조정에 압송되어 사형까지 논의되었으나 신여철(申汝哲) 등이 ‘나라에서 하지 못한 일을 그가 능히 하였으니 죄과와 공과가 서로 비슷하다’고 하여 귀양에 처해졌다. 이후 울릉도에 대한 분쟁이 없어지게 되었으므로 그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h********** 올래~~~~~~~~~~~ 2011.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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