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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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德良 |
영어음역 | Yi Deoky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상규 |
조선 전기 삼봉도[지금의 독도] 토벌 준비에 앞장선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이정간(李貞幹)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이지장(李智長), 어머니는 이승(李昇)의 딸이다.
1479년(성종 10) 8월 30일 영안도관찰사(永安道觀察使) 이덕양은 남도절도사(南道節度使) 이흠석(李欽石), 북도절도사(北道節度使) 신주(辛鑄)와 함께 본도(本道)에서 차역(差役)을 피해 몰래 삼봉도(三峯島)로 숨어든 수천 명의 인민을 토벌할 계획을 세웠다. 경차관(敬差官) 신중거(辛仲琚)의 명에 따라 초마선(哨麻船) 50척[艘]을 제조하고 대병(大兵)을 동원하여 국가를 배반하고 절도(絶島)에 투신한 인민들을 토벌하려 하였다. 신중거가 이르기를 “저들이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나오면 그 죄를 용서하고 중한 상(賞)을 내릴 것이되,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무찔러 없애버리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