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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복직과 100퍼센트 합격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A03060009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고경래

“무보수 봉사활동으로 5년에 가까운 세월을 고향 농촌의 부흥을 위하여 나름대로는 전력을 다하여 몸 바쳐 왔으나 나 개인을 위해서는 무의미한 생활이었다. 보수라고는 고작 농협에서 정해져 내려오는 생활필수품 그것도 이율이 0.5%도 되지 않는 그 이익금뿐이었다. 마침 이때 자격증을 가진 교사들의 순위고사를 본다는 연락을 받고 가족들과 수의를 해서 본래 뜻하였던 교직으로 되돌아 갈 것을 다짐하고 순위고사에 합격하고 복직명령을 받은 곳이 석포였다. 그 당시 울릉도의 초등학교 11개 학교 중 가장 벽지로서 누구 한 사람도 그곳을 희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복직의 발령이었기에 아무 불평 없이 부임하니 모두 50대의 노령교사들이고 나만이 30대였다.

학급 담임을 맡으니 5학년 18명, 6학년 18명 모두 36명의 복식학급 운영을 해야 했다. 당시는 중학교 입학이 입시제도인데 중학교 진학 희망자 조사를 하니 9명이나 되어 6학년의 반을 차지하였다. 나는 이때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범학교에서 초등교사로서의 충분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연수과 6개월 과정을 마치고 교단에 섰고, 교사 경력도 불과 3년 정도인데다가 약5년 가까이 휴직한 후 발령을 받은 상태이고 더구나 5,6학년 복식이라 과연 이 아이들을 중학교에 무난히 모두 합격시킬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며 또 어떤 방법으로 지도해야 할지 밤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며칠간 고심 끝에 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정과 수업 6시간은 5학년과 같이 복식수업을 하고, 그 후 해가 질 때까지 교실에서 6학년을 지도하고 날이 저물면 나의 자취방으로 아홉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문제를 풀게 하고 나는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는다. 밥이 다 되면 책을 한 쪽으로 밀치고 남포불 아래 9명의 어린이와 마주앉아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잠이 와서 못 견딜 때까지 아이들과 공부에 열중하다가 여학생 4명은 옆방에 잠재우고 남학생 5명은 나와 같이 한 방에 잠을 자면서 공부하기를 수개월 동안 하였다.

이렇게 매일같이 오직 공부에만 열중하다 보니 농촌의 학부형님들은 직접 우리들을 도울 방법은 없고 해서 나의 부엌에 간장이며 채소를 가져다 두었고, 수시로 반찬을 보내오기도 하였으며 어떤 때는 교실에서 저물어 들어오면 학모님들이 와서 저녁밥을 지어 놓고 가기도 하였다.

오직 중학교 합격에 온 힘을 쏟은 결과 희망하는 3개 중학교에 원하는 데로 모두 합격을 하게 되었다. 100%의 합격은 나에게 큰 자신감을 갖게 했고 '하면 된다'는 마음의 성취감과 희열감을 느끼게 하였다. 또 모든 것은 능력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재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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