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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턱에서 삶의 터전을 처음 잡고, 차츰 차츰 해안으로 내려오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C01020002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천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호동

천부에 정착한 개척민들은 처음에 본천부, 혹은 나리동 등의 산중에 터를 잡았고, 점차 해안가로 내려온 것으로 개척민들의 후손들은 증언하고 있다.

나리동에 개척 당시에 180세대 정도 살았어요. 바닷가에 사는 것들은 아랫것들 하며…….(웃음) 그때 뭐 동학난이가 뭐 그라고 어떤 사람들은 여 뭐 자기가 띠지면(경작하면) 다 자기 땅이다 해가 온 사람도 있고. 우리 할아버지도 처음엔 여(천부) 안 살고, 산 데가 여기서 한 3km정도 될 기라 산중이라.”(제보자:정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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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정착민들의 터전 나리

본천부에서도 한참 더 올라가는 곳, 한 25리 정도 될 꺼야. 그 높은 산, 거서 태어나가 5~6살 때 두 집이 살았어. 그때 바닷가로 내려왔어. 자꾸 발전이 되니 조금 더 내려오고 조금 더 내려오고 하다 보니. 바닷가에 내려왔지. 바닷가에 내려와서는 어업도 하고 오징어도 잡고. 밭농사도 짓고 했지.”(제보자:정상일)

“옛날 어른들 말 들어보면 바닷가에 노략질 비슷한 뭐 그런 게 있었는가 봐요. 바닷가 여 살며는 전라도에서도 오고 강원도에서도 오고 다른 곳 각각에서 왔기 때문에, 나선이 와가고 처음 오면 묵을 게 없어가지고, 그래서 좀 해롭게 한다든지. 나중에는 일본에서도 와가지고 해롭게도 하고. 개척은 전부 산중에. 본천부는 그래도 가까운 편이에요. 나리 알봉으로 해가 석포리도 거 위에 백운동이라는 데 그 위로 개척을 했는데…….” (제보자: 홍필흠)

개척민들이 처음 울릉도에 들어와 터를 잡은 곳은 본천부백운동, 혹은 홍문동과 같은 산중턱이었다. 대부분 본토에서 농업을 하던 사람들이 울릉도에 들어 왔고, 또 해안가는 해적이 출몰한다고 하여 산골짜기를 찾아 들어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인류학자 도리이 류우조[鳥居龍藏]가 울릉도를 견문하고 쓴 [人種,考古學上より觀たる鬱陵島](“日本周圍民族の原始宗敎-神話宗敎の人種學的硏究-”)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시대 지금의 천부에 면사무소 등의 행정관청이 만들어졌다. 조선인들도 점차 어업에 종사하면서 이곳에 사람이 몰려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천부의 중심이 지금의 천부로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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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의 중심 천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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