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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양조 기술로 집안 일으켜 세우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D03030002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태하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호동

“우리 아버지가 선대 여 앞에 양조장 및 어업을 했어요. 하다가 막걸리도 잘 안되고 해서 치우고, 어업을 했어요. 유지인데, 아버지가 성격이 와일드해가 내가 군대 있을 때, 오징어잡이 2년 해가 돈을 다 띠어 버렸다니깐. 10원도 못 받고, 그래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졌어요. 1년 사업해가 모아뒀다가 써야 되는데 그것을 한 푼도 못 받았으니, 그게 엄청났어요. 집이 어려워져서 어쩔 수 없이 제대하고 주저앉았죠.

제가 양조장을 계속 유지했어요. 양조장도 동네마다 골짝골짝 다 있었어요. 열심히 해가 많이 팔았어요. 쌀 가지고 하고, 정책으로 옥수수, 밀가루가루로도 하고, 고구마가루가지고도 했어요. 우리 조그만 할 때는 전부 쌀로 다 했지만……. 예전에는 여가 논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다 자급자족이 되었지. 모자랄 때는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래서 다른 지역보다는 경쟁력이 있었어요. 울릉도 같은 경우는 옛날에 나리동이나 골짝 같은 경우는 처녀가 쌀 한말 못 먹고 시집간다고 그랬어요. 옥수수와 감자뿐이니, 논농사가 없고 교통이 불편하고, 그리고 비싸서 못 먹고, 그랬지.

막걸리는 미생물 발효시켜가 하는데, 효모균을 증식만 많이 시키면 되요. 증식을 시키는 방법은 인위적인 조건만 잘 해주면 되요. 깨끗한 물, 쌀, 적절한 온도 등의 외부조건을 마련해주면 효모군이 많이 증식된다고요. 그러면 그게 죽어가 주정이 된다고요. 그러니깐, 번식을 많이 시키면 시킬수록 술이 좋아져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많이 배우고 이론적으로도 많이 연구하고 그랬어요. 대구 불로동에 가서도 배우고 그랬어요. 술이 좋았어요. 울릉도에서 한때는 날렸어요. 돈도 되더라고. 애들 공부도 다 시키고, 부자 되고 저축할 거는 없고. 그때 오징어 배 있던 거 정리하고 양조장을 다시 지어가 하다가 지금까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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