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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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參禮里 |
영어공식명칭 | Samrye-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성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삼례리는 전주군 오백조면(五百條面)의 지역으로 조선시대에 삼례도찰방이 있어 삼례역 또는 삼례라고 했다.
[형성 및 변천]
삼례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후리, 상후리, 서여리, 구주리, 상주리, 중주리, 만경동, 마천리, 안좌리, 신안리, 하백리, 가인리, 동여리, 서신리, 대천리, 구금리와 익산군 두촌면 하견리 각 일부를 병합해 삼례도찰방역의 이름을 따서 ‘삼례리’라 하고 삼례면에 편입되었다. 1956년 삼례면 삼례리에서 삼례읍 삼례리로 개편되었다.
삼례리는 조선 후기에 그려진 고지도에서 ‘삼례역(參禮驛)’이라는 지명이 나타나며, 『국역 여지도서』에는 삼례도찰방역의 규모가 약 1,000여 명의 역졸들과 역민들이 거주하던 대규모의 촌락이었음을 알려준다. 『구한말지형도』에는 삼례도찰방역 일대가 현재 지형도의 시가지처럼 연속된 지역으로 보이도록 빗금으로 표시된 것으로 미루어 촌락의 형태상 가촌(街村)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일대에는 덕류당이라는 찰방의 집무실을 포함한 7채의 아사(衙舍)들은 물론, 대장간, 마구간, 우물 등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삼례철도역이 삼례읍 후정리에 건설되면서 삼례리의 구심점이 삼례도찰방역에서 현재의 삼례로와 삼봉로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이동하였다. 이에 따라 삼례면사무소가 옛 삼례읍사무소 터에 조성되면서 그 주변 지역에는 삼례초등학교를 비롯해 경찰서, 보건소, 금융조합, 정미소 등이 세워졌다. 삼례리가 삼례읍의 도심지로 변모함으로써 일본식 가옥과 함께 조선인 주택도 많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정미소 가운데에는 일제가 지정한 정미소가 삼례리에 세 군데나 설치됨으로써 일제의 식량 수탈을 위한 거점으로 변모하였다. 광복 이후에도 삼례리는 여전히 장소의 관성 때문에 삼례읍의 도심의 지위를 계승했다. 하지만 농업이 경제활동의 주축으로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점차 인구가 감소하고, 현재는 지방 소도시에 머물고 있다. 그 후 우석대학교가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에 자리 잡으면서 삼례읍 삼례리의 황금동과 하서신 등지에도 대학생을 위한 하숙집이 생기면서 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에도 삼례리는 삼례로와 삼봉로가 교차하는 삼례읍의 중심지에 있다. 새 장소로 이전한 삼례읍 행정복지센터[옛 삼례읍사무소]를 비롯해 경찰서, 우체국, 농협, 한별고등학교, 버스터미널, 재래시장과 상설시장 등이 있어 그 중심성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환경]
삼례리 북서쪽은 낮은 구릉지, 동쪽과 남쪽은 평야 지대로 이루어진 곳에 있다. 삼례리는 완주군 삼례읍의 중심지로서 행정, 교육, 경제 활동 등과 관련된 다양한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평야지대는 대부분 논농사와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현황]
삼례리의 면적은 3.91㎢이며, 2018년 6월 30일 기준 현재 인구는 총 3,383세대에 7,204명[남 3,675명, 여 3,529명]이다. 삼례리는 교통의 요지로 거듭나고 있으나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이 같은 장소에 공존하면서 장날[3, 8장]에는 교통이 매우 혼잡해서 삼례농협 뒤편으로 시장을 이전해 2018년 7월 18일에 개장했다. 그리고 삼례중학교와 삼례여자중학교가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있어 삼례시장 인근의 평지로 옮기는 과정 중에 있다. 삼례리에 속한 자연마을로는 상서신, 중서신, 남서신, 하서신, 만경동, 황금동, 원후동[뒷멀, 구장터], 후동, 서여[남안말], 가인[가린멀, 비석리, 비선거리], 곰멀, 새터, 태평[제실뜸, 여수코빼기], 마천, 화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