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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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廣寺一柱門 |
영어공식명칭 | Ilju Gate of Songgwangsa Temple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55-16[대흥리 569-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서지은 |
이전 시기/일시 | 1814년 - 송광사일주문 조계교 부근으로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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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44년 - 송광사일주문 현 위치로 이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1년 12월 2일 - 송광사일주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7년 - 송광사일주문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7년 - 송광사일주문 해체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2년 - 송광사일주문 해체보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송광사일주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송광사일주문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55-16[대흥리 569-2] |
성격 | 문 |
양식 | 다포계 맞배집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송광사 |
관리자 | 송광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의 일주문.
[개설]
송광사일주문은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두 개의 기둥을 한 줄로 세워 그 위에 지붕을 얹은 형태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송광사 입구에 세워 속계와 불계의 경계 역할을 하는 상징물로 조선시대에 지은 것이다.
[위치]
송광사일주문은 송광사 경내에 진입하는 첫 건물로 송광사 가람배치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좌우로 담장이 연결되어 있다.
[변천]
송광사일주문은 현 위치에서 남쪽으로 약 3㎞ 되는 ‘나드리’[무주, 진안 방면 도로 입구]라는 곳에 서 있던 것을 송광사 경역이 축소되면서 1814년(순조 14) 정준(定俊)선사가 조계교 부근으로 옮겼다가 1944년 해광(海光)선사가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하나, 이와 관련된 사료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조선고적도보』[1933]에 실린 사진에는 보조기둥의 초석이 4각의 장초석으로 확인되고 있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송광사일주문은 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그리고 1987년 한 차례 보수 이후 1997년과 2002년 해체보수가 이루어졌다.
[형태]
송광사일주문은 1칸으로 구성된 문으로 다포를 올린 겹처마 건물이다.
[현황]
송광사일주문은 ‘종남산 송광사(終南山 松廣寺)’란 커다란 현판이 가로 걸린 건물이다. 송광사일주문은 기단은 조성하지 않았으며 자연석 초석 위에 지름 약 750㎜의 원형기둥 2개를 세워 1칸의 문을 구성했다. 건물의 비례를 고려해 처마를 길게 내고 기둥 앞뒤에 보조기둥을 세웠는데 이 보조기둥이 외목도리를 받치고 있어 구조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주간은 평방 위에 공간포를 1조만 배치했는데 공포와 공포 사이의 포벽을 터놓음으로써 복잡한 공포부의 구조가 노출되어 있다.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 총 3구를 배치했는데 내외 3출목 구조이다. 초제공은 용머리를 조각했고, 3제공 위를 용 꼬리 모양으로 장식해 용이 굽어져 내려오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살미는 앙곡이 크고 끝이 날카로운 수서[끝이 아래로 삐죽하게 처진 쇠서받침]와 앙서[끝이 위로 삐죽하게 휘어 오른 쇠서받침]로 되어 있는데 조선 후기의 시대적 경향을 보여준다. 처마는 겹처마로 구성된 맞배지붕으로 풍판을 구성했다.
[의의와 평가]
송광사일주문은 전체적인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단정하고 원숙한 비례감을 느끼게 하는 조선 후기의 일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