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844
한자 市場
영어공식명칭 Market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차동욱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공산품의 교환을 목적으로 개설된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전통시장.

[70년대 중반 산골 5일장의 풍경]

오늘은 장날이다! 새벽을 여는 장닭의 홰치는 소리를 들으며 아부지와 엄니는 5일장을 가시기 위해 부산 나게 움직이셨다, 엄니는 새벽밥을 지어 자식들을 먹이고 아부지는 장에서 팔 농산물을 광에서 꺼내셨다. 말린 고추, 참깨, 밤 등을 포대에 넣어 지게에 올려놓고 아침을 먹기 위해 방으로 들어오셨다. 식구들은 소반에 둘러 앉아 밥사발을 달그락거리며 연신 한입 크게 밥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아부지는 시간에 쫓긴 듯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 왜가리의 부리를 피하는 여울 속의 피라미처럼 호로록 빠르게 목구멍으로 넘기시고 토방 마루에 걸터앉으셨다. 봉초 담배를 말아 한 입 크게 빨아 뱉고 엄니를 재촉하셨다. “아직 멀었는가?” 엄니는 부산 나게 설거지를 끝내고 아부지를 따라 나설 채비를 챙기셨다. 나는 아부지를 졸라 5일장에 따라갔다. 아부지는 복어 배처럼 부풀은 커다란 지개 짐을 등에 지셨다. 엄니는 수건으로 꽈리를 틀어 머리에 얹고 그 위에 포대짐을 이고 집을 나섰다. 옆집 아재는 누렁이에 멍에를 씌워 연결한 달구지에 마른 고추를 한 짐 가득 실었다. 새벽어둠을 쫓으며 산허리 오솔길을 걸어 신작로로 나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부지와 옆집 아재는 알 수 없는 말들을 나누시며 웃으셨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아부지의 웃는 모습이다. 엄니는 딴청하며 뒤처지는 나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애야 힘드니?, 힘들면 엄마 손 잡아!” 하시며 햇빛 그을린 주름진 손을 내미셨다. 나는 힘들다고 하면 다음부터 장에 데려가지 않을까 봐 애써 외 면하며 “아니 엄니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렇게 이십 리 길을 어찌 왔는지 모르게 장터에 도착했다.

장터 안의 점포와 시장 길은 이미 사람들로 넘쳐나 어깨가 스칠 정도로 붐볐다. 나는 혹여 길을 잃을까봐 엄니 손을 꼭 잡고 신기한 듯 넘쳐나는 물건과 사람들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가져온 물건들을 싸전과 상인에게 넘기고 오랜만에 받은 돈을 엄니는 속옷 전대에 보물 다루듯 넣으셨다. 엄니는 오랜만에 미장원에서 파마를 하시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떠셨다. 아부지는 농협 대출금과 이자를 갚으시고 친구분을 만나러 가셨다. 엄니를 따라 시장 안에 있는 먹거리 장터를 찾았다. 국수가게, 팥죽가게, 돼지국밥집 그리고 짜장면가게 등이 들어서 있었다. 나는 엄니와 돼지국밥을 오랜만에 배불리 먹었다. 점심을 양껏 먹어 포만감을 느끼며, 엄니 손을 잡고 집에 가져갈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바둑판처럼 점포들이 줄을 서 있었다. 시장 길을 따라 오른쪽에는 몸빼바지 등을 파는 옷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엄니는 헤진 내 바지를 보고 나일론 바지를 사주셨다. 옆에 있는 신발가게에서는 검정 고무신을 샀다. 어시장에는 좌판에 얼음을 두른 고등어, 꽁치 등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엄니는 간고등어와 갈치를 사셨다. 그리고 옆 좌판에 있는 해삼을 사서 탱자나무 가시로 찔러 초장에 찍어 먹으니 오돌한 식감이 입안을 황홀하게 만든다. 정육점에는 돼지머리, 갈비, 목살 등이 쇠갈고리에 걸려 있었다. 엄니는 아부지 생신 때 고기국을 끓이기 위해 큰 맘 먹고 돼지고기 한 근을 사서 신문지에 말아 망태에 넣으셨다. 어디선가 음~메 하며 소 울음과 딸랑거리는 소 방울소리가 들린다. 관리사를 중심으로 소 말뚝마다 소들이 매여져 있었다. 앉아 건초를 먹는 소, 무심히 꼬리를 흔들며 파리를 쫓는 소, 한쪽에서는 소장수가 소를 구매하기 위해 소의 입을 벌려 이빨과 혀를 들여다보고 있다. 놀란 누런 소는 입에 흰 거품을 내며 하얀 눈자위를 드러내고 머리를 흔들면서 뒤로 내빼려 했다. 누런 소 주인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마 소장수의 흥정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장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서산에 해가 기울어 아부지를 찾아 나섰다. 아부지는 시장 대포집에서 친구들과 회포를 푸시느라 이미 많이 취하셨다. 엄니의 성화에 못이기시고 아쉽게 자리를 떨고 일어 나셨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취하신 아버지와 나는 아재의 소달구지에 앉아 누런 소의 쇠경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을 감았다. 소달구지는 어둠을 몰고 산속 오솔길을 갈랐다. 70년대 중반 내가 살았던 산골마을 5일장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옛날 5일장은 단순히 농산물과 생필품의 교환 장소에 그치지 않고 친구를 만나고 그리운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며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얻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러한 풍경이 우리의 전통 5일장의 모습이며, 우리 삶의 일부이기도 했다.

[완주군 전통시장의 기능]

1) 전통시장 기능의 의미

시장은 장이 열리는 날인 시간적 의미와 판매자인 상인과 수요자인 구매자 간의 재화와 서비스가 교환되는 장소적 의미가 있다. 5일장은 장터라는 일정한 공간에 5일마다 정기적으로 장이 열리는 것을 말한다. 현재와 같이 통신기술과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던 시기의 5일장은 단순히 물류 교환 장소의 의미를 떠나 사회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결합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5일장을 포함한 전통시장은 정보기능, 문화형성기능,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기능 등 세 가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2) 완주군 전통시장 기능의 특징

삼례시장은 다양한 기능을 제공했다. 먼저 정보제공 기능을 보면 고려 때부터 운영되던 역참제도가 있다. 삼례역참은 특히 삼남대로(三南大路)와 통영로(統營路)가 만나는 전라도의 최고 요충지로 국가 정보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문화형성 기능은 지역 내에 거주하는 주민들 간의 만남의 장소에 그치지 않고 외지 사람과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역할도 했다. 그 사례가 조선후기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의 집결지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18년 현재의 삼례시장은 과거의 정보 및 문화형성기능이 사라지고 단순히 지역농산물을 판매하는 교환기능에 그치고 있다. 봉동시장은 정보 및 문화형성 기능보다는 특산품인 생강을 중심으로 재화 및 서비스의 교환 기능이 강했다. 봉동 특산품인 생강과 관련된 기록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고려사』에는 1018년(현종 9)에 왕이 하사품으로 생강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읍의 사람들이 생강을 업으로 삼고 있다고 해서 전주[봉상]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와 같이 봉동생강은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봉동시장을 통해서 전라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교환되는 장소의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옛날과 같이 생강 시장이 활성화되지는 않고 있지만, 김장철을 전후해서 봉동시장을 중심으로 생강 판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고산미소시장은 옛날부터 주변 5개 면의 요충지로 이용되었다. 인근 지역 농산물의 집하와 분화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이용되어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고산미소시장을 중심으로 지역 특산물인 소고기의 판매와 식당이 운영되고 있으며, 체험을 상품화하는 문화형성기능이 활성화되고 있다. 운주시장은 동부 산간지역에 있으며 주위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교환기능이 강한 전통시장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완주군 내 다른 전통시장과는 달리 운주면 소재지의 크기와 차별화된 농산물이 없어 최근에는 전통시장의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전통시장의 역사와 완주군 전통시장의 변천]

1) 삼국시대의 전통시장

우리나라 시장의 역사는 해방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해방 이전에 관한 역사는 기록으로 볼 때 삼국시대에 관한 사항은 490년(소지왕 12)에 경주에 설치된 시전인 경시에 관한 기록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학자였던 문정창(文定昌)은 삼국시대 장이 서는 위치에 따라서 네 가지 구분했다. 촌락 밀집 지역에 서는 가로시(街路市), 삼국시대 78개 소읍 간에 서는 경계시(境界市), 읍 중심지에 형성된 성읍시(城邑市), 촌락 및 읍민의 공동제례 때 서는 제전시(祭典市)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이 삼국시대에도 많은 지역에 시장이 형성되었고 물류 교환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다.

2) 고려시대 전통시장

고려시대의 시장은 수도 개성에 국가가 개설한 관설시전(官設市廛)이 있었다. 개성의 광화문에서 부민관에 이르는 거리에는 공랑(公廊) 형식의 점포가 있었고, 주민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는 노상에 시장이 열렸다. 향시로는 인근 주민들이 이용하는 성읍시(城邑市)와 교통의 요충지에 주시(週市)가 열렸는데 포목을 화폐 대용으로 활용했다. 국가에서는 역참(驛站)을 두어 운영했다. 역참은 개성을 중심으로 전국의 요충지에 국가의 정책수행을 위한 동맥의 역할을 했다. 특히 국가 문서수발, 말의 징발, 보급업무인 군사 및 병참 기능과 유배자 이송 및 범죄자 압송과 같은 사법 기능 그리고 관물자의 운송 및 교역과 정보교류와 같은 시장기능을 했다. 역 주변에는 원(院)을 설치해 역참을 이용하는 관료의 숙박 시설로 운영했다. 원 주변에는 상점가가 형성되어 시장의 기능을 함으로써 군사적 역할뿐만 아니라 상업 중심의 역할을 했다.

3) 조선시대 전통시장

조선시대 시장은 관청의 허가를 받아 장사하고 대신 국가에서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상점으로 시전이 있었다. 지방에는 인구 밀집 지역에 형성된 향시가 대표적으로 있었다. 시전은 규모가 커서 국역을 부담하는 유분각전(有分各廛)과 이에 비해 규모가 작아 국역을 면제받은 무분각전(無分各廛)이 있었다. 시전상인들은 관에서 허가하는 상점을 운영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향시는 오늘날의 5일장의 형태로 하루에 왕복이 가능한 30리[약 11.78km]에서 40리[약 15.71km]마다 지역의 요충지에 형성되었다. 문헌상으로는 1470년(성종 1)에 흉년을 극복하기 위해서 전라도 주민이 장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지방의 장시는 삼남 지방에서 생겨나기 시작했고 지방에 따라 상당한 규모로 발전한 곳도 있었다. 완주군의 전통시장 중에서 삼례시장은 역사적으로 고려시대부터 발달해 온 삼례의 역참과 동학농민운동과 깊은 관계를 가지면서 발전해 왔다. 삼례는 조선시대 도성인 한양에서 그 남쪽인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인 삼남으로 가는 중요한 기간도로인 삼남대로와 전라도에서 경상도[전주부, 남원부, 운봉, 함양군, 산청현, 단성현, 진주목, 사천현, 통영]로 이어지는 간선도로 성격의 통영로와 만나는 전라도의 최대 역참이 있던 곳이다. 삼례는 역참과 원을 중심으로 지역의 중심적인 시장의 역할을 했다. 또한 삼례는 동학농민운동이 봉기한 곳으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삼례역참의 장소[현재 삼례동부교회]는 1892년 전라감사 이경직 등에게 동학 교조인 최제우의 사면과 교단의 자유를 요구하며 집회했던 1차 집회의 장소이다. 그리고 1894년 9월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며 4,000여 명의 동학농민군이 한 달 이상 농성하던 2차 집회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집결지로 이용되었던 삼례는 근대사에 있어 큰 의미가 있으며 민중봉기의 장소로 이용되었던 시장은 역사적 관점에서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4) 일제강점기의 전통시장

일제강점기의 시장은 식민지 수탈정책의 일환으로 1914년「시장규칙」을 제정해서 4개 형태의 시장으로 운영했다. 농산물과 생필품을 거래하는 정기시장인 전통시장, 약령시, 가축, 땔감 등을 거래하는 특수시장 등이 있었다. 주로 전통시장 중심의 시장을 1호 시장, 도시 주민들을 위해 20인 이상의 상인들이 공공기관 하나의 건물을 마련해서 운영했던 공설시장 형태의 2호 시장, 오늘날의 농수산물 도매시장과 같이 채소, 과일, 어류 등을 판매하는 시장인 수산·채소·과일 전문시장인 3호 시장, 쌀·콩·보리·조 등의 곡물 시장 중심의 4호 시장으로 구분해서 운영했다. 이와 같은 시장의 개설은 관의 허가를 받도록 해서 기존에 지방에 자생적으로 형성되었던 많은 전통시장이 약화되었다. 완주군 전통시장은 삼례장[3일, 8일], 봉동장[5일, 10일], 고산장[4일, 9일], 동산장[1일, 6일], 화평장[2일, 7일] 등 5개의 5일장이 개설되어 운영되었다. 2018년 현재 운주 5일장을 제외한 나머지 5일장은 일제강점기와 같은 날에 장이 서고 있다.

[해방 이후 시장 관련법의 제정에 따른 전통시장의 변화]

해방 이후의 변화는 시장 관련법의 신설과 개정 따라 크게 4시기로 구분해 그 변화를 고찰할 수 있다. 제1기는 1945 해방 이후, 제2기는 1960년대~1970년대, 제3기는 1980년대~1990년대, 제4기는 2000년 이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해방 이후 완주군 전통시장의 변화

제1기인 1945년 해방 이후의 완주군 전통시장은 삼례장, 봉동장, 고산장이 계속 운영되었으나 동산장은 폐쇄되고 화평장이 운주장(雲州場)으로 바뀌어 개장해서 2018년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완주군 전통시장의 운영은 지역에 점포를 가지고 있는 지역 상인과 5일장에만 참가하는 이동상인 등이 혼재되어 상품을 판매했다. 주요 품목은 곡물, 일반 생필품, 가금류 등이 매매되었고 우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이 시기에는 전통시장의 기능이 재화 및 서비스의 교환에 그치지 않았다. 교통과 통신이 아직 발달하지 못해서 전통시장을 통해 생활권에 있는 주민들 간에 교류가 이루어졌고, 필요한 소식을 주고받는 등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2) 1960년대~1970년대 완주군 전통시장의 변화

제2기인 1960년대~1970년대는 1961년 법률 704호로 제정된 「시장법」에 의해 처음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전통시장 관련법이 시행되어 전통시장의 기반이 조성되었다. 「시장법」은 시장의 형태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일정한 점포의 형태를 갖추고 주로 도심지에서 형성되어 매일 장이 서는 상설시장으로 전주의 경우 남부시장이나 중앙시장과 같은 시장을 말한다. 둘째 옛날부터 전통시장의 형태로 운영되던 5일장과 같은 정기시장이다. 셋째 20인 이상의 상인이 구성되어 동일한 건물 안에서 영업하는 것으로 상가나 백화점의 형태로 운영되는 시장을 말한다. 「시장법」의 시행으로 일제강점기에 제정된 「시장규칙」은 폐지되었고, 일반인도 도지사의 허가를 받으면 시장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해서 시장이 활성화되도록 했다. 완주군의 전통시장은 새로 제정된 「시장법」에 의해 1964년 12월 30일에 삼례시장, 봉동시장, 고산시장, 운주시장이 정기시장으로 개설되었다. 또한 가축시장도 개장되어 현재와 같은 현대화된 전통시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1966년에는 완주군 남부권역의 물류 활성화를 위해 구이시장이 새롭게 개설되었다. 이 시기에는 시장뿐만 아니라 물류 활성화를 위해 농업협동조합과 마을별로 구판장을 운영해서 시장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그 외 1973년에는 슈퍼마켓이 등장해서 오늘날의 대형 할인매장의 시초가 되었다. 완주군의 경우 1978년 삼례에 대원슈퍼마켓이 처음으로 운영되었다.

3) 1980년대~1990년대 완주군 전통시장의 변화

제3기는 1980년대~1990년대로 「시장법」 변화의 핵심 내용은 유통체계의 규모화와 개방화에 있다. 1961년도에 제정된 「시장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981년에는 「시장법」의 개정을 통해 소매시장과 연쇄점에 대한 정부지원과 재래시장의 건물 개·보수 및 주변 환경에 대한 정비작업을 통해 소매 및 유통기구의 근대화를 시도했다. 그 후 1986년 「도소매업 진흥법」을 제정하고 기존의 1981년에 개정된 「시장법」을 폐지했다. 「도소매업 진흥법」에서는 시장을 소규모 점포가 많이 있는 전통 상설시장, 전통 5일장과 같은 정기시장, 백화점, 쇼핑센터와 같은 대규모 소매점, 도매센터, 동종 소매점을 직영하는 연쇄점 사업, 일정 지역에 거리를 중심으로 많은 도소매업이 존재하는 상점 거리 그 외 통신 및 방문 판매와 같은 형태로 구분했다. 이 시기에 완주군의 시장 형태는 교통의 편리성과 슈퍼마켓과 같은 대형 판매점이 활성화되어 식음료와 일반 생필품의 구매가 이들 판매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가전제품 등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품은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판매점을 중심으로 유통되었다. 이와 같은 시장변화에 따라 완주군의 상설시장 기능이 위축되었고 5일장을 중심으로 전통재래시장의 명맥을 유지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사회 경제적으로 격변하는 시기에 속한다. 대형 할인매장의 출현, 개방화, 운송 및 통신기기의 발달 등은 물류 형태를 변화시켰다. 특히 통신기기의 보급과 교통의 발달은 전통시장의 기능인 정보와 인적교류 기능을 약화시켰다. 매장의 규모화는 가격, 상품의 다양성, 품질 등에 있어 전통시장의 물류 교환기능을 약화시켰다. 이와 같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완주군의 전통시장은 기능과 규모가 축소되었다. 마침내 1994년에는 구이시장이 폐쇄되어 완주군은 4개의 전통시장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4) 2000년 이후 완주군 전통시장의 변화

제4기인 2000년 이후 시장과 관련된 법률의 변화는 약칭 「전통시장법」에 의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통시장법」의 역사를 보면 2004년에 전통시장과 상점가의 시설 및 경영의 현대화를 통해 시장 정비를 촉진해 지역 상권의 활성화 및 유통산업의 균형 있는 성장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재래시장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 후 2006년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으로 변경되어 2016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던 특별법이 2013년 유효기간에 대한 부분이 삭제되어 영구법화 되었다. 「전통시장법」의 내용은 시장 시설과 관련된 하드웨어적인 부문과 시장운영의 효율성과 관련된 소프트웨어적인 부문을 내용으로 입법화되었다. 2000년 이후 시장 관련법의 제정에 따라 삼례시장은 현재 운영하고 전통시장 내에 2018년 7월 18일에 점포, 회의실, 정보 관련 시설, 화장실 등 현대식으로 운영 체계가 구축된 지상 2층 규모의 상가건물이 확충된다. 봉동시장은 2005년에 35개 점포에 부대시설로 화장실 1개소와 주차장 1개소를 포함해서 신축 개장했다. 고산시장은 기존에 있던 시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 2013년 ‘고산미소시장’이란 이름으로 상설장의 형태로 새롭게 개장했다. 고산시장은 시가지 도로를 중심으로 열리는 구 시장은 5일장의 정기장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고산미소시장은 상설장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고산미소시장은 공연장과 광장 등 하드웨어적인 시장 구성뿐만 아니라 체험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적인 문화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시장 개장 형태에 따른 완주군 전통시장의 특징]

시장의 형태는 개장 형태에 따라 상설시장, 정기시장,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을 병행하는 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상설시장은 주로 도시에서 운영되는 것으로 지역 주민을 수요자로 해서 연중 장이 서는 것으로 완주군의 경우 상설시장의 형태로만 운영되는 전통시장은 없다. 정기시장은 농산어촌 지역에 생활권, 경제권, 도로 및 행정구역 등을 기준으로 2개 면에서 5개 면을 단위로 해서 핵심지역에 개장되는 시장으로 5일 단위로 장이 운영되는 5일장이 있다. 완주군 전통시장의 경우 운주시장이 5일장인 정기시장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을 병행하는 시장은 주로 읍 지역에서 운영되는 형태이다. 전통시장의 위치가 읍에 있기 때문에 상설적으로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지역 주민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품목은 잡화나 철물점 등과 같이 상시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것을 기본으로 점포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상설시장에 5일마다 장터에서 정기적으로 장이 열리는 5일장을 병행해서 운영되는 것을 말한다. 완주군의 경우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을 병행하는 시장은 삼례시장, 봉동시장, 고산시장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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