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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038
한자 天主敎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집필자 정경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15년연표보기 - 영천에 천주교가 전파됨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개설]

천주교(天主敎)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소개된 것은 실학 운동의 선구자 지봉(芝峰) 이수광(李睟光)교산(蛟山) 허균(許筠)에 의해서이고,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중국 이외에 서양이란 나라가 존재하고 천주교라는 종교가 있음을 소개해 준 데서 비롯한다.

1784년(정조 8) 이승훈(李昇薰)이 북경에서 그라몽(Grammont) 신부로터 세례를 받은 날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천주교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는데, 천주교를 전파하는 데 혹독한 박해 시기를 거치면서 중앙에서 지방으로 쫓겨 오고, 지방에서는 다시 산간 벽지나 해안 지역으로 쫓겨났다.

현재 대구 대교구의 관할에 속하는 영천 지역의 천주교는 영천 본당으로 승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파되었으며, 본당으로 승격하는 데는 용평본당과 11개의 공소가 밑바탕이 되었다.

[영천 지역의 천주교 전래 및 변천]

영천 지방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1815년(순조 15) 청송 지방에서 화북면 용계동으로 파평 윤씨(坡平尹氏)·재령 이씨(載寧李氏), 정각동으로 김해 김씨(金海金氏) 등 세 가구가 이주한 것이 처음일 것으로 보이며, 같은 시기에 청도와 영천의 경계 지점인 구룡산골에 박해를 피해 살던 순교자의 후손들이 프랑스 신부를 모시고 공소 집회를 가졌다고 한다.

이곳 구룡산골에서 자인·대창·운문 등으로 전파되었고, 이어 영주·송포·괴연·신광·금호의 황정까지 확산되어 나갔다. 또한 화남면 금호리에서 옹기굴을 시작한 치명자의 후손들에 의해서도 전파된 것 같다.

이후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11년 대구 교구가 설정되면서 초대 교구장 안세화 ‘드망즈 주교’가 천주교회를 이끌면서부터이다. 이때 개인 집을 공소로 하여 교우들을 모으고 전파하였는데, 용평 공소가 영남 지방의 일곱 번째 본당으로 승격하면서 구룡 본소와 더불어 화산면 가상, 신녕면 매양, 임고면 황강, 군위군 고로면과 산성면 일대로 교세를 확장하여 영천 본당의 설립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다.

용평 본당의 사목 구역은 영천 지역 및 군위 고로면·산성면, 경산 하양읍·진량면·와촌면, 청도 운문면 정상동을 그 관할로 하였으며, 당시 용평 본당에 소속했던 공소로는 구룡 공소·황강 공소·괴연 공소·질구지 공소·지일 공소·하양 공소·가상 공소·신녕공소·자천 공소·선관 공소·과전동 공소 등이 있었다.

[영천 천주교 현황]

영천 지역 성당은 대구 대교구에 속하여 있으며, 대구광역시 동구·수성구, 청도군, 경산시와 함께 제2대리구에 속한다. 2012년 현재 영천 지역 성당으로는 금호 성당·신녕성당·영천 성당·임고 성당 등 네 개의 본당과 신광 공소·화산 공소·고경 공소·북안 공소·자천 공소·괴연 공소 등 여섯 개의 공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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