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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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處野堂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대의리 758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533년 - 처야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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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근대[1926년 이전] - 처야당 중수 및 중건 |
현 소재지 | 처야당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대의리 758번지 |
성격 | 누정 |
양식 | 소로수장|겹처마|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이언기가 건립한 정자.
[개설]
이언기(李彦基)[1499~1575]의 본관은 성산, 자는 성원(聖源), 호는 처야당(處野堂)이다. 조선 전기 중종 때 학자로 경학(經學)과 행의(行誼)로써 천거되어 영릉참봉(英陵參奉)을 지냈으나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후 중년에 처야당(處野堂)을 짓고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후학에 힘썼다. 묘소는 고경면 대성리에 있다.
[위치]
처야당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대의리 758번지에 있다. 영천 시내에서 포항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28호선을 따라 고경면소재지로 가다 보면 단포교를 지나 좌측에 단포초등학교가 나온다. 여기서 약 250m 가면 우측으로 대의리로 들어가는 도로가 나오고, 이 도로를 따라 가면 대의리 궁각단마을에 다다른다. 정자는 마을 맞은편 남쪽 의곡천 너머 사면에 있다.
[변천]
이언기는 살던 집[영천시 동부동의 조교동 일대로 추정] 동쪽에 1533년 처야당을 짓고 자연에 의탁해 평생토록 학문을 즐겼다. 이언기 사후 그의 후손 괴은(槐隱) 이한기(李漢基)[1868~1945]가 처야당을 중수 또는 중건했다. 정자 내부에는 이한기의 중수지(重修識)와 장석영(張錫英)[1851~1926]이 쓴 중건기가 남아 있어 최소 1926년 이전에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
[형태]
처야당은 경사진 대지에 방형의 토담을 두르고 있는데 정면의 솟을삼문[무첨문]을 들어서면 돌계단이 정자 앞까지 이어진다. 정자는 ‘一’자형으로 대지의 상부에 동향으로 독립 배치되어 있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중앙의 대청마루 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드린 뒤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이다.
건물 전체에 계자각 난간을 두른 헌함을 두었고 좌우 측면에 계단을 통해 진입한다. 창호는 청방 간과 퇴청 간에 사분합문을 두고 대청 뒤로는 쌍여닫이 판문[당판문]을 두었다. 방의 전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달았고 측면에는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았다.
기둥 상부에는 간결한 소로수장으로 꾸미고 오량가의 가구를 구성했다.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이엇다.
[현황]
처야당은 경사진 대지에 솟을삼문과 정자를 배치하고 마당에는 가운데 돌계단을 설치했다. 계단 양 옆은 빼곡히 조경이 되어 있다. 정자 정면 상부에는 ‘처야당(處野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내부에 중수지·중건기 등이 있다. 처야당 바로 좌측 남쪽에는 조선 성종 때 학자 이방(李芳)의 묘재인 봉성재(鳳城齋)가 있다.
[의의와 평가]
처야당은 건립 당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지붕을 겹처마로 하는 등 근대와 그 이후에 나타나는 기법이 보여 건축적 가치는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