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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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道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
집필자 | 전민욱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670년 - 김시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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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736년 - 김시영 사망 |
입향지 | 청도 김씨 입향지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 |
세거|집성지 | 청도 김씨 세거지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당지리·덕암리 |
세거|집성지 | 청도 김씨 세거지 - 경상북도 영천시 영천시 녹전동·청통면 일대 |
성씨 시조 | 김지대(金之岱) |
입향 시조 | 김시영(金是永) |
[정의]
김지대(金之岱)를 시조로 하고 김시영(金是永)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김지대[1190~1266]는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 고종(高宗) 때 문과(文科)에 장원(壯元)을 하여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원종(元宗) 때 수태부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고 오산군(鰲山君)[청도군의 옛 이름]에 책봉되어 청도 김씨(淸道金氏) 시조가 되었다.
영천에 세거하는 청도 김씨는 20세 김충신(金忠臣)이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로 옮겨 살게 됨에 따라 선조인 김한귀(金漢貴)를 파조로 하는 남하파(南河派)의 후예 김시영[1670~1736]이 하양에서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에 시거(始居)하였다.
[입향 경위]
김시영이 영천으로 입향한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입향한 곳이 영천에서도 가장 오지인 자양면 삼귀리인 것으로 보아 세태에 염증을 느끼고 은거하여 산천을 즐기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입향 이후 인물은 향지(鄕誌)인 『영양지(永陽誌)』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면, 효우(孝友)로 이름난 김시영, 참봉(參奉) 김재만(金再萬), 참봉 김문규(金汶奎),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석리(金錫履), 장릉참봉(章陵參奉) 김운규(金雲奎), 효행(孝行)으로 증(贈) 통정대부인 김상식(金象軾), 주사(主事) 김상현(金象鉉)이 있다.
영천 지역의 세거지를 보면 입향지는 영천댐 건설로 수몰이 되어 남아있지 않고, 공조참의를 지낸 김석리의 후손들이 화산면 당지리와 덕암리에 5호가 남아 세거하고 있고 나머지는 영천시내와 타향으로 이주했다.
자양면 삼귀리 입향조인 김시영과 별개로 김석리는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에서 영천시 화산면 당지리로 이거했다. 남하파 외의 다른 계통의 청도 김씨가 영천시 녹전동과 청통면 일원에 세거하고 있다. 영천에는 청도 김씨 관련 유적은 없는데 이는 영천댐 수몰로 인한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