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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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臺書院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과전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영화 |
건립 시기/일시 | 1697년 - 창대 서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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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86년 - 창대 서원에 정제 추향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창대 서원 훼철 |
이전 시기/일시 | 1955년 - 창대 서원,녹전동 창대마을에서 과전동으로 이전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창대 서원 복원 |
현 소재지 | 창대 서원 - 경상북도 영천시 과전동 10 |
원소재지 | 창대 서원 -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 |
성격 | 서원 |
양식 | 사우: 팔작지붕 겹처마|쌍전당: 팔작지붕 겹처마|동재: 맞배지붕 겹처마 |
정면 칸수 | 사우: 3칸|쌍전당: 4칸|동재: 3칸 |
측면 칸수 | 사우: 1.5칸|쌍전당: 1.5칸|동재: 1.5칸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과전동에 있는 정대임(鄭大任)과 정제(鄭梯)를 배향한 조선 후기 서원.
[개설]
정대임의 본관은 영일, 자는 중경(重卿), 호는 창대(昌臺)이며 1553년(명종 8) 6월 4일에 태어났다. 정대임은 임진왜란에 분기하여 일어나 일신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창의하여 적을 토벌하고, 왜군을 공격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정제의 자는 가승(可升), 호는 남창(南窓)이며, 1689년(숙종 15) 8월 2일에 영천시 명산동(鳴山洞)에서 태어나 1765년(영조 41) 1월 4일에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창대 서원은 1697년 정대임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고 후에 정제를 추향하였다.
[위치]
창대 서원(昌臺書院)은 영천 시내 중앙 사거리 근처에 있으며, 금호강을 바라보고 있다.
[변천]
창대 서원은 1697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대임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천시 녹전동에 건립된 후, 1786년(정조 10)에 정제를 추향하였다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55년 영천시 녹전동 창대마을에서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 뒤 20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복원하였다.
[형태]
창대 서원 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신문(神門)·쌍전당(雙全堂)·동재·문간채 등이 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이다. 정대임과 정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쌍전당은 강당으로, 누각형 건물로서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로 평면의 구성은 전면 반 칸을 툇마루로 꾸미고 뒤쪽 3칸 모두를 온돌방을 두었다. 툇마루의 전면과 측면에 난간을 둘렀다.
동재(東齋)는 강당의 측면에 직각으로 축을 틀어 대문채 뒤편에 두었다. 정면 3칸, 측면 1.5칸의 맞배지붕 겹처마 건물로서 평면은 강당과 마찬가지로 전면 반 칸을 툇마루로 꾸미고 뒤쪽 3칸 모두를 온돌방을 두었다.
[현황]
창대 서원에서는 매년 3월 중정(中丁)[두번째 정일(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7변(籩)7두(豆)이다. 유물로는 은환도(銀丸刀)·옥각대(玉角帶)·지도·전투복 등이 있으며, 재산으로는 전답 8,000평·임야 150정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