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2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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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千年水-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집필자 | 김지숙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6년 - 「천년수의 전설」 영천시에서 발간한 『충효의 고장』에 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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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팔공산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36 |
관련 지명 | 신녕면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
관련 지명 | 천년수 - 경북 영천시 신녕면 |
성격 | 설화|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홍씨 내외|자매|학 |
모티프 유형 | 천년수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에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천년수의 전설」은 천년수라는 약수터에 관한 이야기로, 이 물을 마시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신앙적 요소가 들어 있다.
[채록/수집 상황]
영천시에서 발간한 『충효의 고장』에 「천년수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경북나드리’, ‘지역정보포털 사이트’에도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영천시와 접해 있는 팔공산의 동봉에서 신녕 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풍수지리설에 따라 산세가 좋아 큰 인물이 배출된다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지맥을 끊었다는 ‘절도바위’가 있고, 조금 더 내려오면 ‘천년수’라는 약수터가 있다.
지금은 물이 마른 채 흔적만 남아 있지만, 옛날에는 이곳에서 백일 동안 기도를 드리면 마른 땅에서 물이 나오고, 그 물을 마시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왔다. 이러한 전설이 있게 된 동기는 아주 오랜 옛날 홍씨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이 아랫마을에 살게 된 후부터이다.
홍씨는 가난하여 머슴살이로 전전하였지만 마음이 착하고 부지런하여 그가 일을 해주는 집은 모두 복이 굴러들어 왔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과년한 딸 자매만 있을 뿐 대를 이을 후사가 없었다. 3대를 외동으로 지내온 그가 자기 대에서 후사가 없다는 것은 조상에게 크나큰 죄를 짓는 것 같아 항상 마음 아파했다.
두 딸의 걱정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쉰 살이 넘은 부모가 이제 자식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고, 또 아버지의 기력도 쇠잔하였으니 더 이상 머슴살이를 하기도 힘들 것이었다. 결국 궁리 끝에 화전이라도 일궈야 먹고살 것이라는 생각으로 동네를 떠나 천년수가 있는 부근으로 이주를 하였다.
하지만 홍씨 내외는 또 다른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들이 없는 것은 팔자라 치더라도 과년한 두 딸을 출가시켜야 할 터인데,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무뿐이고 들리는 것은 새소리뿐이니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마을에 있을 때에는 설마 처녀로 늙으란 법은 없겠지 하고 스스로 달래 왔으나 깊은 산속까지 왔으니 걱정은 더해만 갔다.
그러던 가운데 두 딸은 어느덧 농군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근처의 풀밭을 일구어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해오는 등 손발에 돌덩이처럼 못이 박히었다. 두 내외는 참다못하여 그날부터 치성을 드리게 되었다. 두 딸에게 배필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혹은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아들이 되게 해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빈 것이다.
효성이 지극한 두 딸은 그러한 부모의 행동에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마치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자기들의 잘못처럼 생각되었다. 또 부모님이 병이라도 얻으신다면 더없는 불효가 될 것이니 만류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홍씨 내외는 듣지 않았다.
백일이 되는 날, 새벽에 집을 나선 부모님이 해가 지고 다시 밤이 늦어도 귀가 하지 않았다. 전 같으면 자정이 못 되어 들어오시곤 했는데, 무슨 변을 당한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 두 딸은 뜬 눈으로 밤을 샜다.
그리고 새벽 이슬을 밟으며 부모님이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가을바람만 불고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라곤 없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온몸을 조여 왔다.
이미 제 정신이 아닌 두 딸은 미친 듯이 주위를 헤매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부모님은 보이지 않고 학 두 마리가 치성을 드리던 바위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두 딸은 이상한 예감이 들어 가까이 가 보았다. 긴 목을 휘젓는 학의 자태는 마치 신선이 하강한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학은 갈 길이 바쁜 듯 몇 번인가 날개를 움츠렸다가 어디론가 훨훨 날아 가버렸다.
두 딸은 동시에 부모를 부르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틀림없이 부모님의 치성에 감읍하여 천세를 구가하는 학이 된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려오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다.
오래도록 목이 메어 울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두 딸이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신기하게도 학이 앉았던 곳에서 맑은 샘물이 펑펑 솟아오르고 있었다. 한참 울고 난 터라 목도 칼칼하여 두 딸은 아무런 생각 없이 엎드려 물을 마셨다. 청량한 물맛은 온몸을 주무르듯 상쾌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지 한 달이 지났다. 슬픈 기억도 차츰 잊어가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두 딸은 태기(胎氣)를 느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남자라고는 얼굴도 본 일이 없는데 이 무슨 해괴한 일인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모진 것이 목숨이라 그럴 수는 없고 날이 갈수록 무심하게 배만 불러왔다. 자매는 서로가 눈치를 보며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처녀의 몸으로 수태를 하였으니 아무리 언니 동생 사이이지만 부끄러워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침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만삭이 가까워 오면서 드디어 말을 하게 되었고, 언니와 동생은 서로 같은 상황에 있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서로 끌어안고 오래도록 울기만 했다.
드디어 날이 차서 자매는 아들을 순산하였다. 각각 어머니는 다르지만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났음인지 아이들은 쌍둥이처럼 닮았고 무럭무럭 자랐다. 3살이 되던 해부터 학문을 익히기 시작했고, 5살이 되면서는 도를 터득하기 시작하여 인간의 전·후생을 거울 들여다보듯 예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자 인근 사람들은 물론 천 리 밖의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자식을 얻기 위해 천년수 앞에서 백일기도를 하기도 했고, 앞날을 묻기도 했다.
훗날 두 아들은 큰 스님이 되었으며 하늘의 은혜로 태어난 사람들이라 하여 ‘천혜사(天惠寺)’란 암자를 지어 기거하였는데, 학 두 마리가 그림자처럼 암자 주위를 맴돌았다 한다.
또 두 자매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천수를 다하였는데, 죽은 후에 시체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학이 네 마리로 늘어났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천혜사는 풍우로 허물어지고 조금 아래쪽에 ‘수도사’란 이름으로 재건하였으며, 지금도 가끔씩 학이 날아 노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천년수의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천년수’이다. 천년수라는 약수터에 관한 이야기로 이 물을 마시면 후사를 얻을 수 있다는 신앙적 요소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