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556 |
---|---|
한자 | 坡平尹氏 |
영어공식명칭 | Papyeong-You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기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404년 - 윤황 출생 |
---|---|
본관 | 파평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
입향지 | 입향지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각리리 |
세거|집성지 | 집성촌 -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대지리 |매일리 |
성씨 시조 | 윤신달(尹莘達) |
입향 시조 | 윤황(尹堭)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황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개설]
파평윤씨(坡平尹氏)는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고 윤황(尹堭)[1404~?]을 입향조로 하는 성씨이다.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매일리·대지리·주응리·덕산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연원]
파평윤씨는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개국공신이 된 윤신달을 시조로 한다. 윤신달의 5세손 윤관(尹瓘)[?~1111] 장군이 여진 정벌과 동북 9성을 개척한 공으로 벼슬이 문하시중에 이르고 영평현 개국백(鈴平縣開國伯)[영평은 파평의 옛 지명]에 봉해져 후손들이 파평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입향 경위]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1425] 영덕현(盈德縣) 편의 성씨 조에 윤씨가 금진촌의 촌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본관은 알 수 없다. 현재 강구면 금진리에는 윤씨가 한 가구도 거주하지 않는다. 『단양부지(丹陽府誌)』[1813] 성씨조에는 영해부에 파평윤씨가 세거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 부마였던 야성군(野城君) 윤혁(尹赫)이 달산면 매화동[매화리]을 개척했다고 하나, 그 후손들의 행적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조선시대에 입향한 이는 호조판서를 지낸 명은(溟隱) 윤황이다. 윤황은 단종복위 사건 때 병곡면 각리리로 피신와서 은거하다가 단종의 승하 소식을 듣고 칠보산 속에 단종의 위패를 모시고 3년을 복상(服喪)했다고 한다. 윤황의 후손들은 한때 청송 지역으로 이거하였다가 18세기 중·후기에 다시 돌아왔다. 11세손인 윤치삼(尹致三)[1722~1777]은 달산면 대지리, 13세손 광산(光山) 윤의형(尹義衡)[1747~1838]은 매일리에 정착하였다.
[현황]
달산면 매일1리[매화리]에는 윤의형의 후손들이 세거하며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그 외에도 대지리·주응리·덕산리 등지에 파평윤씨가 거주하고 있다. 2015년 인구통계에 영덕군 관내에 거주하는 파평윤씨는 754명으로 집계되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 마을 앞에 윤황의 신도비가 있다. 달산면 매화리에는 재실 보본재(報本齋)[1897년 건립]와 누정인 매오정(梅塢亭)[1895년 건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