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리 무안박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73
한자 元邱里務安朴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Single-Clan Village of Muan-Park Clan in Wongu-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22가구[2014년 기준]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무안 박씨 집성촌.

[개설]

무안박씨는 전라남도 무안군을 관향으로 하고, 박진승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원구리 무안박씨는 1500년대 초 박양기(朴良基), 박영기(朴榮基) 형제가 처음 입촌한 이후 박영기의 사남 경수당(慶壽堂) 박세순(朴世淳)[1539~1612]의 후손들이 세거하여 영양남씨, 대흥백씨와 함께 세 성씨가 나란히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입지]

영해면 소재지에서 영양 방면으로 통하는 지방도 제918호선의 2㎞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울티재에서 발원하여 송천강의 주류를 이루는 서천과 대동에서 발원하여 마을 앞을 돌아 송천강으로 합류하는 남천 사이의 삼각 지점에 중구봉을 등지고 자리 잡고 있다. 두 하천 주변에 펼쳐진 넓고 비옥한 농경지들이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 되고 있다.

[명칭 유래]

원구(元邱)는 원래 으뜸 거북이란 뜻으로 원구(元龜), 둔덕진 곳에 있는 들이라 해서 원두들, 으뜸 언덕이란 뜻으로 원고(元皐, 元鼓), 넓은 들이라는 뜻으로 원파(元坡) 등으로 불렸다. 1895년 관제 개편 때 영해군 묘곡면 원구동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영덕군 영해면에 편입되었다.

[형성 및 변천]

원구마을은 조선 중기 이후 무안박씨, 영양남씨, 대흥백씨가 나란히 세거하는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안박씨로 원구에 처음 입촌한 인물은 영덕군 입향조 박지몽(朴之蒙)의 차남 박양기와 삼남 박영기 형제로, 1500년대 초에 창수면 인량리에서 원구마을로 이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양기의 후손들은 일찍이 마을을 떠났고, 박영기의 아들 5형제 중 사남 경수당 박세순의 자손들이 대를 이어 세거하고 있다. 박세순은 임진왜란 때 사재 800석을 군량미로 조달하여 승전에 크게 기여한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고,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추증되었다.

[현황]

원구리에는 조선 중기 이후 500년 가까이 세 성씨가 나란히 세거하고 있는 전통이 근세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1930년에는 영양남씨 40호, 무안박씨 45호, 대흥백씨 31호, 기타 타성 35호로 세 성씨가 공존하고 있으며, 2014년 5월 기준 총 97호 중 영양남씨 23호, 무안박씨 22호, 대흥백씨 22호, 기타 성씨 30호로 나타나고 있다. 원구마을에 있는 경수당종택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경수당 경내에 있는 영해경수당향나무는 경상북도 지정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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