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10
한자 朴世通
영어공식명칭 Park Set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187년연표보기 - 박세통 출생
활동 시기/일시 1228년 - 박세통 병부상서 승진
몰년 시기/일시 1263년연표보기 - 박세통 사망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영해
대표 관직 병부상서

[정의]

고려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개설]

박세통(朴世通)[1187~1263]은 1217년(고종 4)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을 방어하였으며, 관직은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올랐다. 용왕의 음덕으로 3대가 음덕을 받았다는 설화가 고향 영해에 전한다.

[가계]

박세통의 본관은 영해이다. 최씨 무인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왕에게 돌리는데 공을 세운 박송비(朴松庇)와 한 가문이다. 아들은 밀직사(密直使)를 역임한 박홍무(朴洪茂)이며, 손자 박감(朴瑊)은 복야(僕射)를 지냈다.

[활동 사항]

박세통은 1217년(고종 4) 5월 거란유종이 양광도(楊廣道)를 침입하였을 때 5령군(五領軍)을 통솔하여 이들의 남진을 막았다. 1228년에는 병부상서에 올랐다. 영해에는 박세통과 거북이의 관련 전설이 전한다. 이야기에 따르면 한 어부가 거북 한 마리를 잡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 거북에게 짓궂은 장난을 계속하였다. 마침 경상도안렴사로서 이곳을 지나던 박세통이 거북이를 자세히 보니 등에 ‘왕(王)’자가 새겨져 있었다. 박세통은 거북을 잡은 어부에게 곡식을 후하게 주고 바다로 돌려보내 주었다.

그날 밤 박세통의 꿈에 백발을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였다. “나는 동해용왕이오. 오늘 내 아들이 나들이 나갔다가 뭇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죽을 뻔했었는데 공이 구해주었소. 무엇으로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용궁(龍宮)에 있으므로 공의 집안에 대대로 영광을 베풀도록 하겠소.”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 일이 있은 후 박세통의 집안에 경사가 겹쳤으며, 임금의 총애가 더욱 깊어 높은 관직에 올랐다.

[상훈과 추모]

박세통과 아들, 손자 3대가 모두 높은 벼슬에 올라 마을이 부역을 면제받았다. 이로 인해 거북이 전설이 전하는 마을을 거무역리(居無役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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