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71
한자 金善兼
영어공식명칭 Kim Seongyeom
이칭/별칭 달경(達敬),만귀(晩歸)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737년 - 김선겸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38년 - 김선겸 무겸(武兼)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55년 - 김선겸 윤지의 난 진압
활동 시기/일시 1755년 - 김선겸 사천현감 부임
추모 시기/일시 1834년 - 김선겸 좌승지 증직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부임|활동지 사천현 - 경상남도 사천시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일선
대표 관직 사천현감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개설]

김선겸(金善兼)[?~?]은 1737년(영조 13)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755년 나주에서 일어난 벽서사건(壁書事件)을 무마하였다.

[가계]

김선겸의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달경(達敬), 호는 만귀(晩歸)이다. 5대조 할아버지 김귀지(金貴祉) 대에 수원(水原)에서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로 이거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효남(金孝南), 할아버지는 증(贈) 공조참판(工曹參判) 김천길(金天吉), 아버지는 선전관(宣傳官) 김익중(金益重), 어머니는 영해박씨(寧海朴氏)이다. 아들 김종현(金宗鉉)과 손자 김장억(金長億)도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로써 김익중 이래로 4대가 무과에 급제하였다.

[활동 사항]

어릴 적 조칭도(趙稱道)에게 수학하였다. 1737년 무과에 급제하여, 통화문 수문장이 되었다. 이듬해 부친의 음보로 무겸(武兼)이 되어 선전관 및 어모장군을 역임하였다. 1755년 나주에서 벽서사건이 발생하자, 영조는 특별히 김선겸을 별장으로 뽑아서 교시하기를 “너의 부친은 진위의 적을 생포하였는데, 이제 너도 적을 사로잡는다면 임금에 충성하고 부친에게 효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결국 벽서사건의 주범이었던 윤지(尹志)와 윤지의 아들 윤광철(尹光哲), 나주목사 이하징(李夏徵) 등을 거사 직전 사로잡아서 국왕에게 바쳤다. 이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급되고, 사천현감(泗川縣監)에 제수되었다. 1755년(영조 31) 7월 사천현감에 부임한 후 선정을 베풀어 귀향할 때에는 사천의 백성들이 김선겸의 공덕을 칭송하며 동비(銅碑)를 세웠다.

[상훈과 추모]

1834년(순조 34) 좌승지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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